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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코 이머징 기술 그룹의 사업 개발 매니저, FounderSoup의 공동창업자 노범준

노범준 (Ron Bumjoon Ro)

시스코의 이머징 기술 그룹 (Emerging Technologies Group, ETG)에서 사업 개발 매니저(Business Development Manager)로 일하는 노범준씨(영어 이름 Ronald Ro.  LinkedIn, Twitter)는 요즘 바쁘다. 지금 맡은 사업부가 $100M (약 천억원)의 매출을 낼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스탠포드 대학에서 처음 시작한, 공동 창업자들을 만나게 해주는 FounderSoup이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FounderSoup은 최근 TechCrunch에서 기사화된 바 있다)

스탠포드에서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서로 만나는 가장 큰 모임, FounderSoup (출처: TechCrunch)

이머징 기술 그룹이란 시스코의 내부 창업 그룹에 해당하는데, 시스코의 미래를 먹여 살릴 Billion Dollar Business (1조원 규모 사업)를 찾아내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스코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렵고 MBA 졸업자들이 문을 가장 많이 두드리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많은 회사에서 도입해서 사용하고 있는 시스코의 원격 화상 회의 시스템(Cisco Telepresence)이 바로 이 그룹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그룹은 화상 회의 시스템을 개발한 노르웨이의 탠버그(Tandberg)를 인수하며 업계의 일인자로서 기술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시스코의 화상 회의 시스템

노범준씨는 ETG 그룹 내의 미디어 경험 및 분석 비즈니스 유닛(Media Experience and Analytics Business Unit)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 사업부는 시스코가 요즘 힘을 많이 쏟고 있는 비디오 분야 사업을 위한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시스코는 어제 약 4조 4천억원을 주고 비디오 기술 회사인 NDS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그가 시스코와 인연을 맺기 전의 과정이 재미있다. 대학교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한 그는 원래 그는 보잉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제품 기획에서 출시까지의 사이클이 너무 길다는 것을 알고 이내 관심을 잃었다고 한다.

처음 노이즈 컨트롤 부서의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그런데 2001년 당시 디자인을 시작한 드림라이너 787 모델이 지금 출시됐어요. 무려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죠. 보잉에 있는 동안 SCM(Supply Chain Management)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이 분야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졌고 박사 학위를 받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미시건 대학 산업 공학 석/박사 통합 과정에 진학했다. 거기서 그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미시건에 가서, 처음 1년은 창업을 한다며 공대 친구들 뿐 아니라 남쪽 캠퍼스에 있는 경영대 및 인문대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그러다가 프랭클 펀드 (Frankel Commercialization Fund)라는 스타트업 투자 펀드에 대해 알게 됐죠. 그 때 우리가 새로운 통계학 소프트웨어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피치했거든요. 그 일을 하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 결과로, 박사 진학 시험을 볼 준비를 하나도 못하는 바람에 박사 진학을 포기했어요. (웃음)

결국 석사만 마치고 그는 학교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국으로 간다. 삼성 SDS에서 일을 시작했다. 시스템 통합(SI) 부서에서 삼성 계열사들의 경영시스템 개발업무를 맡았는데, 이내 적성에 맞지 않는데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부서를 옮기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기술 전략팀이다. 여기서 그는 또 하나의 일을 벌인다.

저의 골은 딱 하나였어요. ‘가장 삼성이 하기에는 힘들면서 내가 재미있게 일을 해볼 수 있는 것을 만들자.’ 그래서 생각한 게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에 삼성 아일랜드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2007년에 처음 세컨드 라이프를 접하고, IBM, 오라클 등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당시 삼성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지만 한 번 추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 당시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에버랜드, 호텔신라, 삼성 전자 모바일 사업부, 디지털미디어 사업부, 제일기획 등을 돌아다니며 삼성아일랜드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3차원 인터넷 가상세계 활동’들에 대해서 발표를 했다.

전략기획실 가서 발표를 했어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요. 당시 한 임원이 발표를 듣더니, “노범준씨는 가상 세계를 믿나요?”하셨어요. 속으로 생각했죠, ‘아, 역시 안되는건가…’ 그러더니 그 분이 이내 하는 말씀이 “나는 환상 세계를 믿습니다. 한 번 해보세요.” 하시는거에요. 하하하.

곧 기획과 개발을 할 수 있는 팀원들을 모았고 세컨드 라이프에 섬을 30여개를 샀다. 거기에 유저들이 아바타로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에버랜드의 차세대 가상 라이드, 휴대폰 모양의 전시장 등을 지었다. 파격적인 프로젝트였다. 삼성 4년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고 한다.

삼성에서의 병특이 끝나면서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됐어요. 미시건에서 같이 창업했던 친구들이 프랭클 펀드의 지원을 받아 잘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프랭클 펀드 생각이 나서 그 곳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에게 연락을 했어요. 거기서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일단 MBA에 진학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미시건 겨울의 추위와 다섯달 동안 녹지 않는 생각나 고민이 됐죠. 미시건을 또 가야 하는가 (웃음).

그는 미시건 MBA에 진학했고, 이내 프랭클 펀드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스코 ETG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거기서 MBA 1학년 후 여름 인턴십을 시작했다. 인턴하는 동안 지금의 팀을 만났고, MBA 졸업 후에 시스코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시건 MBA에 있는 동안 그는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동기였을까?

제가 농구를 좋아해서 MBA에 진학할 때 저는 인생을 네 개의 쿼터로 나눠봤어요. 많은 경우 세 번째와 네 번째 쿼터에서의 크고 작은 플레이들이 승부를 결정하죠. 그리고 하프타임 때 얼마나 팀이 전략적, 체력적, 정신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느냐에 따라 후반전을 잘 시작할 수 있고 그 탄력으로 결국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지가 결정되니까요. 저는 MBA 진학을 인생의 하프타임이라고 봤고, 이 시기 동안의 제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글로 남기니까 알았던 것도 더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구요.

프랭클 펀드에서 그가 한 일은 초기 단계의 회사들을 발굴하고 투자를 심사하는 것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이었을까? 한 번은 한 팀이, “우리는 아이들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아이폰 앱을 만드는 팀입니다” 라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2008년의 일이었다.

제가 팀 리더였는데, 그 발표를 듣고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시장이 너무 작다’, ‘시장이 한계가 있다’ 였어요. 하하하. 모두 다 동의했어요. 아이폰 유저 숫자가 작았고, 그 가운데 아이가 있는 사람을 추려내면 시장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돌려보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인사이트가 부족해서 생긴 부끄러운 일이죠.

그 때 두 가지를 크게 느꼈다고 한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것,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자는 것. 그러면, 창업을 꿈꾸는 스탠포드 학생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파운더 숩(Foundersoup)은 어떻게 해서 시작했을까? 그는 항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 시스코의 그가 있던 그룹에 마이크 도시(Mike Dorsey)라는 스탠포드 MBA 학생이 인턴을 하러 왔다. 둘은 이야기하다가 ‘사람들을 연결해주자’는 비전이 일치하는 것을 느꼈고, 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다른 스탠포드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엔젤 투자자인 론 콘웨이(Ron Conway)의 아들, 로니 콘웨이(Ronny Conway)도 합류했다. 그 결과가 바로 Founder Soup이다. 지금까지 여러 번의 행사를 거치며 스탠포드의 창업 열기를 한층 더 불러왔고, 그 안에서 팀도 여럿 탄생했고, 테크크런치의 주목을 받아 기사화되기도 하였다.

스탠포드에 인큐베이터(incubator)나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는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정의하는 이그나이터(igniter)는 없었어요. 즉, 벤처캐피털에 피치하는 것이 아닌, 재능을 가진 사람들(talent)에게 하는 것이죠. 일단 스탠포드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는 더 큰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스탠포드에서 파운더숩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면서 배운 노하우를 통해 그의 비전을 미국 내 다른 학교들과 다른 나라들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근 StartWave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그의 생각을 공감하고 함께 일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꿈은 꿈으로 그치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 그가 가진 큰 비전이 현실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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