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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 에스트라다(Erica Estrada), 200만명이 이용하는 8달러짜리 태양광 전구를 만들다

전기가 없는 곳에 빛을 공급하는 회사, d.light

스탠포드 MBA에 오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혁신(innovation)을 실제 경험할 수 있는, 진짜 무엇인가를 만들어보는 수업을 듣고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탠포드의 디자인 스쿨 (Stanford D school) 이 있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면 알겠지만 소위 디자인을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문제를 찾고 재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공부하고 실제 적용해보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2쿼터 동안 실제로 저개발국의 특정 단체,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앞서 이야기한 디자인 사고방식(Design solution)으로 문제를 해결해서 바로 임팩트를 미치는 수업인 Design for Extreme Affordability 는 정말 말만 들어도 꿈만 같았다. 그러다가 나와 같은 1학년 학생 중에 그 수업을 듣고 성공적인 기업을 만든 후, 나중에 그 수업을 몇년간 가르쳤던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를 찾는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스탠포드에서 학부, 석사, 대학원 강의 등으로 약 10년가까이 시간을 보냈던 차라, 모든 수업과 이벤트에 다 참석하려고 여기저기 다니는 필자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정돈된 삶을 살고 있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필자의 궁금증을 조금씩 해소해주긴 했지만 정작 그녀에 대해서 정말 잘 알 수 있게 된 것은 봄방학때 같이 남아프리카 공아국으로 떠난 약 1주일 남짓의 교육 (Education) 테마의 학교 여행에서부터였다. 난 그녀의 삶의 여정이, 특히나 어떻게 그녀가 태양광으로 벌써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빛을 공급한 D light라는 회사의 창업자가 되고, 스탠포드 D school에서 강의를 하고, 혁신과 창의성으로 넘치는 길을 가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었다. 그녀의 삶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놀라웠던건 그렇게 빛나는 그녀도 내가 한국에서 보고 느끼고 접한 사람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사람이란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같이 고민해 봤으면 한다. 자신의 삶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선뜻 공유해준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날씨좋은 오후, 어렵게 그녀의 시간을 뺏은 후에 미국애들은 절대로 잘 안하는 점심+커피사기로 그녀의 환심을 살짝 사고 나서 본격적으로 용건에 들어갔다. 산 – 본인 소개를 간단히 해주시겠어요? 성장배경 같은 것 중심으로요.

(성장 배경을 빼놓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난 꼭 이 질문부터 한다. )

저희 아버지는 멕시코 출신의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교사셨어요. 사실 제 출생 비밀이 있는데, 저 한국에서 임신됐고 한국에서 태어날 뻔했어요. 아버지께서 대우와 프로젝트를 하느라 한국에서 3~4년간 있었는데 그 당시에 제가 생겼거든요. 작은 섬에서 살았다고 하시는데 섬 이름은 기억이 안나요. 태어나기 직전에 마침 한국에서의 일이 마무리가 되서 전 1983년에 캘리폴니아에서 세상의 빛을 봤죠. 그리고 나서는 대학 가기전까지 텍사스 주의 휴스턴에서 자랐어요.

어린 시절 저희 가족의 삶은 교육/음악/운동 이 세가지를 빼놓고는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어요. 교육에 대해서 항상 강조하셨죠. 음악으로 따지자면 전 피아노를 쳤고 아버지는 항상 노래를 흥얼거리셨죠. 집에서 음악이 끊이는 날이 없었어요. 매주 일요일에 가족 다같이 교회에 가서 노래를 부르곤 했죠. 운동은 저희 가족 모두가 즐겼는데, 전 기계체조(Gymnastic)을 했고 남동생 (3살연하) 는 축구를 했어요. 운동은 약간은 숫기 없었던 저와 제 동생 모두에게 사회성을 기르는데 정말 큰 도움을 줬어요.

참고로 미국 교육에선 정말 운동을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모두가 자신의 주 종목 운동을 하나 둘 씩 가지고 있고, 아이비리그에 가는 학생들 상당수도 운동 특기가 입학에 기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학교에서도 운동을 통해 체력, 사회성, 리더십, 경쟁심, 에너지 등을 기른다. 정말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자 다시 그녀의 인생이야기로 돌아가자.

저희 가정에는 몇 가지 꼭 지켜지는 가치(Value)들이 있었어요. 첫째는 열심히 일하고 사는 것이에요 (Working hard). 둘째는 발전에 대한 믿음과 갈망(Desire)이에요. 스페인어로는 GANAS라고 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중에 “Stand and Deliver“라는 영화가 있는데 빈민가 학교에서 한 교사가 학생들을 정말 잘 동기부여해서 도저히 믿기 힘든 수학 성적을 거두게 되는 이야기에요. 여기서 “꼭 바래야해. 그래야 할 수 있어. (You have to desire)”라는 이야기가 나오죠. 저희 집의 가치가 바로 그거였어요. 항상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자신감을 갖고 바라고 그렇게 교육받고 자연스럽게 체화해서 살아왔어요.

자라면서 다른 나라와 다른 세계를 많이 접한 것도 제 성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죠. 저희 아버지는 항상 정말 열심히 사셨어요. 제가 5학년일 때 아버지는 Bachtel 이라는 엔지니어 중심의 회사의 정규 사원이었고, 로스쿨 학생이었으며, 두아이와 아내를 가진 가장이었죠. 출장도 정말 잦았는데 제가 6학년때는 1년간 아버지가 있는 베네수엘라에 가서 국제 학교에 다녔어요. 이때 참 많이 성장했죠. 모든게 새로웠고, 스페인어도 익숙치 않았고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만만치 않았지만 그만큼 많이 겪고 배웠어요. 진짜 가난이 어떤건지도 처음 접하고 느끼게 됐죠. 적응하고 나서는 농구도 열심히 하고 정말 재밌게 지냈어요. 이 경험 이후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따라다녔죠, 방학때마다 남미에 갔던 것 같아요. 새로운 환경을 보고 접하고 시야를 넓히고 하는 것들이 어느새 아주 자연스러워 졌어요.

산 – 참 멋진 성장 환경이네요. 안봐도 대충 얼마나 재밌게, 생생하게 자랐을지 짐작할 것 같아요. 대학교 때는 어떠셨어요?

스탠포드는 제게 꿈의 학교였죠. 전 기계공학(Mechanical Engineering)을 전공했어요. 사실 대학시절은 상당히 힘들었어요. 학교 수업 따라가는게 정말 만만치 않았죠. 주위에 너무 우수한 친구들이 많았고요. 학교 수업이 솔직히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공부는 그리 열심히 안하고, 열심히 놀았죠. (웃음) 완벽주의를 포기하고 좀더 여유있는 성격을 기르는 시간들이었요. 이 때 파티도 많이 다니고, 지금의 제 남편도 만나고, 염색도 하고, 상당히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어요. 아 한국에도 저랑 비슷한 분들이 많다고요? (웃음)

그러다가 3학년때 제조와 디자인(Manufacturing and Design)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이 수업에서 내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꼈어요. 아 그래. 무언가 만들고, 디자인하고, 하는게 내가 평생할 일이구나. 이런 느낌을 가졌죠. 졸업이 다가오자 더 공부가 하고 싶어졌어요. 기계공학 석사를 하면서 이런 수업을 더 듣고 연구해보고 싶고 그랬죠. 사실 제가 학점이 너무 안좋아서 도저히 못갈 줄 알았는데 교수님들이 절 좋게 봐주셔서 그런지 다행히 대학원으로 진학할 수 있었어요.

제게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2006년 봄이었어요. 스탠포드 다자인 스쿨의 공개 소개 세션(Info session)에 갔다가 Jim Patell 이라는 Design for Extreme Affordability의 교수님을 만났고, 강한 인상을 받아서 지원했어요. 무언지 모르겠지만 저를 좋게봐주신 그분 덕분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그 수업을 들을 수 있었죠. 너무나 재밌었어요. 특히나 팀원과 교수님이 너무나 맘에 들었어요. 교수님은 저를 정말 많이 응원해줬어요. “너는 정말 특별한 애야. 분명 뭔가 해낼거야.” 이런 교수님의 응원에 너무도 신나서 정말 집중해서 수업을 듣고 연구하고 했죠. 저희 팀의 프로젝트는 미얀마의 극심한 가난에 빠져있는 빈곤층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었어요. 5명이 뽑혀서 방학중에 미얀마로 갔는데 제가 또 뽑혔죠. 그는 정말 멋진 멘토였어요.

산- 아 그 수업을 통해서 그 유명한 D light가 만들어진거네요. D light 탄생 배경 이야기를 좀더 해주시겠어요?

태양광을 이용한 전구

같은 제품, 불을 켠 상태

 

 

 

 

 

 

 

 

 

 

 

참고로 D light 는  태양광을 이용해 빛을 공급해주는 태양광 발전 전구를 만드는 회사다. (때로는 전등을 꽂을 수 있는 발전장치를 만들기도 한다.) 가장 싼 제품은 불과 개당 미화 8달러이며 이미 전기가 없어 밤이 되면 촛불에 의존하거나 빛이 없이 살았던 전세계의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빛을 공급했다. 극빈층(Bottom of the pyramid)을 대상으로 실제 돈을 버는 비지니스를 하면서 사회적 목적도 달성해 가는 선두기업 중 하나이며 Acumen Fund, Calvert등 다양한 Impact investing(사회적 목적의 투자)회사로부터 투자받았다.

아. 미얀마의 저희 파트너 회사가 바로 처음부터 저희와 같이 태양광 패널로 빛을 공급하는 방법을 연구한 것은 아니였어요. 처음에는 깨끗한 물을 공급해줄 수 있는 제품을 원했죠. 그러나 우리 팀은 태양광 빛에서 기회를 발견했고 그쪽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기본적 아이디어는 태양광을 이용해서 낮에 전기를 만들어서 밤에 전기가 없는 지역에 빛을 공급하는 제품을 만드는 거였어요. 두 쿼터의 수업이 끝났을 때는 아직 제품은 없고 그냥 이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작은 제품 시안만이 있었죠. 뭔가 너무 아쉬웠어요. 그때 저희 팀이 총 5명이었는데 저 말고 다른 기계공학과 대학원생 1명과 스탠포드 MBA 출신 3명이었어요 (다섯 명중 세 명은 중간에 떠났죠). 여름 방학이 끝나고 2006년 가을학기가 시작될 때 MBA에 다니는 Sam이 팀을 모았어요. 그리고 이야기했죠. “우리 해보자. 여기서 멈추긴 너무 아깝잖아. 분명 우리 제대로된걸 만들 수 있을거야. ”

Dlight 창업팀 5인, 2007년 창업당시

이 때부터는 사실 창업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과정을 겪었어요. 가족, 친지들 부터 시작해서 돈을 조금씩 모았어요. 사람들이 저희 제품을 좋아하고 응원해줬고, 팀원들도 모두 너무나 열정을 갖고 애정을 갖고 임했어요. 그러다가 벤처 캐피털에서 하는 공모전에서 우승을 하게 됐어요. 2007년 초였죠. DFJ 벤처캐피털에서 25만 달러(한화 약 3억원)를 받았어요. 이 돈은 지분 투자 이런게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상금으로 받은 것이었죠. 이쯤 되자 더이상 적당히 할 수는 없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어요. 심각한 대화가 오갔죠. 그리고 오직 100%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만이 남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전자공학과 대학원생 한명이 더해서 5명 팀으로 정식 출범했어요. 2007년 6월 법인 설립을 하고 시드 머니로 160만 달러(약 20억원)를 투자 받았어요.

2007년 여름에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이때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사실 그때 전 Lockheed Martin이라는 방어 무기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어요. 방어 무기에도 워낙 관심이 많았던 처라 참 고민이 많이 됐죠. 회사에 몇 개월만 있다가 간다고 여러번 연기하다가 결국 정식으로 못간다고 하고 D light에서 계속 일하게 됐던 순간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네요.

그렇게 그녀는 매출 50조에 달하는 우주기술, 방어기술의 첨단을 연구하는 대기업에서의 기회를 접고, D light라는 작은 신생기업에 몸을 싣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제품이 계속 발전해갔죠. 전 제품을 테스트하고 발전시키는 책임을 맡았어요. 저희 팀 전체에서 제가 이 쪽 일은 전담했죠.

우리는 미얀마를 떠나 인도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미얀마와 미국간의 통상장벽이 높아서 워낙 시장 불확실성이 크다는 투자자들의 주장이 주 이유였죠. 인도시장에 약 절반, 나머지 세계 시장에 약 절반 정도 무게를 뒀어요. 인도와 실리콘밸리를 오가며 수없이 많은 미팅을 잡고 제품을 계속 연구했죠. 다른 팀원들 몇명은 중국에 가서 제품 생산라인을 뚫는데 전력을 다했어요. 저희 제품의 핵심은 극빈층이 지불할 수 있는 낮은 가격이었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생산라인 확보는 절대적이었죠. 이건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결국 2008년 봄에 처음 제대로 된 제품이 나왔어요. 약 미화 35달러 정도 하는 제품이었죠.

인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힘들었어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죠. 인도, 캄보디아, 미얀마, 정말 전기가 안들어오는 극빈층 구석구석을 다녔어요. 그곳 사람들과 정말 하나가 되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런 과정은 너무도 보람됐지만 여자로서 힘든 점도 정말 많았어요. 지금의 남편과 장거리 연애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요. 아직도 기억나요. 인도의 한 시골지역에서 지낼 때였는데 휴지를 구할 수가 없었어요. 화장실가는게 가장 고역이었죠. 그때 결심했던것 같아요. “그래. 내가 할 역할은 했어.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2008년 5월, 약 2년간 제 모든 것을 쏟았던 D light를 그만뒀어요. 결정은 정말 힘들었어요. 가족같은 팀원들에게 도저히 이야기할 엄두가 안났죠. 그러나 결심은 확고했어요. 전 아직 어렸어요. 그리고 이미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기에, 기계공학도인 저로서는 제 역할을 어느 정도는 다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제 필요한 건 세일즈팀이지 저같은 제품 디자이너가 아니였어요. 그리고 팀은 제가 인도에 가기를 원했지만 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죠. 그래서 그만뒀어요. 예… 힘들었어요…

그리고 그녀는 스탠포드로 돌아온다. 그리고 스탠포드 디자인 스쿨의 펠로우(Fellow)로서 3년간 Design for extreme affordability를 가르친다.

D school의 한 발표대회

D school의 Fellow는 정말 매력적인 기회였어요. 약 50%의 시간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수업을 진행하는데 쓰고, 나머지 50%는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드는 데 써요. 해마다 수는 다른데 통상 약 4~5명이 Fellow가 되죠. 전 사회적 목적의 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분야를 3년간 연구했어요. 그리고 Extreme affordability 수업을 약 3년간 가르쳤어요.

Design for extreme affordability 수업은 정말 특별해요. 2쿼터간 진행되는 프로젝트 기반의 코스죠. 이제 거의 10년이 됐고  약 300명의 스탠포드 학생들이 각기 다른 분야에서 들어와 팀을 만들고 수업을 들어요. 약 11개국의 18개 파트너와 70개의 프로젝트가 지금까지 진행됐죠. 저와 교수진들은 정말 멋지고 혁신적인 파트너를 찾는데 전력을 다하죠. 정말 엄선된 파트너와 10년간 축적된 노하우, 그리고 다양한 스탠포드 학생들의 혁신적 협업이 다름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요. 약 5명이 한 팀으로 구성되고 그중 약 반 정도가 봄방학때 실제로 그 현장에 방문해요. 수업에서 경비는 다 제공해주죠. 수업이 끝난후에도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20여개 돼요. 인큐베이터가 없거나 비용을 감당히지 못해서 죽어가는 수많은 미숙아 문제를 연구하는 한 프로젝트는, 기존의 인큐베이터를 바꾸는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작은 보온 담요를 만들어서 전세계 수백만명의 미숙아의 목숨을 구했죠. Embrace가 바로 그거예요. 그 외에도 수많은 프로젝트 들이 있어요.

이 수업을 가르치는 3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세계의 가난을 체험했고 수없이 많은 창조적 혁신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봤죠. 그리고 전 가르치는걸 너무 좋아했어요. 학생들과 교감하는 것도 너무나 행복했죠. 꿈 같았던 시간들이에요.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가난을 해결하는 기업을 일으키는게, 테크놀러지 쪽에서 창업하는 것보다 쉬울까 어려울까? 그녀의 대답을 들어보자.

흠. 쉽다 어렵다 이야기하긴 어려운거 같아요. 양면이 다 있죠. 절대 쉽지만은 않아요. 그러나 이 수업에서 만들어진 약 70개의 프로젝트 중에 1/3에 달하는 20여개의 프로젝트가 기업이 되거나 계속 운영되고 있는걸 보면 또 절대 불가능한걸로 보이지도 않아요.

첫번째 비결은 서로 보완되는 능력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에요. 5명이 한 팀이 되는데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 교수진과 Teaching team이 정말 많이 고민하죠. 그리고 수업이 2쿼터간, 정말 추리고 추린 파트너와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서 이루어져요. 방학중엔 직접 그 곳에 가구요. 태생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그 니즈(Needs)에서 부터 시작하죠. 테크 스타트업 보다 어떻게 보면 훨씬 더 소비자의 진정한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에요. 그러나 정말 어려운 부분은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거죠. 돈을 벌 수 있느냐,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인데 이게 너무 어려워요. 빈곤층에 제품을 팔려면 정말 저렴하고 또 그들의 필요를 제대로 충족시켜 줘야 하거든요. 몇몇 재단에서 공여(Grant)를 받을 수 있긴하지만 결국 비지니스를 만들지 못하면 사라지고 말아요.

분명 이러한 시도는 계속 커 나갈 거예요. 지금은 MIT와 스탠포드 등 몇몇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문제는 너무 많거든요. 예. 정말 세상엔 해결해야할, 해결할 수 있는, 복받고 좀더 가진 사람들의 도움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

Extreme 수업의 장면들

Extreme 수업의 프로젝트

 

 

 

 

 

 

 

 

 

 

 

 

 

 

이쯤되자 과연 초 사이언같은 전투력을 가진 그녀와 막 무공술을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내가 왜 같은 스탠포드 MBA의 1학년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업을 듣고 있는지 영 궁금해졌다. 뭐가 부족해서 뭘 더 공부하고 싶어서 그녀는 MBA에 왔을까.

가르치는게 너무 즐거웠지만 또 제대로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수없이 많은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비즈니스를 만들어갈지 학생들과 고민하다 보니 이쪽을 좀 더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비즈니스 스쿨에 갈 결심을 했어요. 아? 백산씨 같은 친구도 사귀고 너무 멋진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냐고요? 예예. 그럼요 ㅎㅎ 제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어요.

이제 그녀는 미국의 교육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보려 하고있다. 이번 여름에는 Goalbook 이라는 Education Tech분야의 벤처기업에서 인턴십을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 이제 미국 내의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어요. 미국에도 수많은 문제가 있죠. 결혼도 했고 솔직히 계속 여행하면서 살 자신도 없고요.

제가 주목하는 분야는 교육 + IT, 즉 Ed Tech 쪽이에요. 미국은 이쪽 시장이 정말 빠르게 성장하고 있죠. 크게 보면 각종 교육 자료를 만들고 나누는 컨텐트 쪽, 서로 도와가며 더 쉽게 교육받고 더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돕는 서비스 분야, 그리고 선생님들과 학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각종  툴 Tool 들, 이렇게 나뉘는것 같아요.

그리고 증명해보이고 싶어요. 지금 디자인 하면 그냥 제품을 디자인한다는 쪽으로만 생각하잖아요. 전 그게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는 방법,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 증명해보이고 싶어요. 새롭게 문제를 보고, 혁신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보임으로써요.

한국 독자들에게 한마디요? 뭔가 원하는게 있으면 바로 하세요. 인생은 너무 짧고, 정말 어떻게 될 지 몰라요. 대학교때 염색하고 파티다니고 학교에서 어찌보면 문제아였던 제가 대학원가고, 수업에 너무 빠져들고, 실제 기업을 만들고, 다시 학교에와서 가르치고, 이런것들 하나하나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들이에요. 그냥 저는 그 순간 순간 가장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왔어요. 스스로를 믿으세요. 순간을 사세요. 한국은 그게 훨씬 힘들다고요? 힘내세요. 전세계를 돌며 수없이 많은 문제와 고통, 그리고 희망의 가능성을 보면, 세상이 얼마나 여러분들의 진정한 열정을 필요로 하는지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김우중 선생님이 남긴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라는 격언을 되새기며, 난 다시 한 번 내 친구, 나랑 동갑이지만 나보다 수십갑자 내공이 깊어보이는 이 에리카Erica란 친구의 삶을 곱씹어 본다. 열심히 일하는 부모님 밑에서 운동하며, 노래하며, 남미를 오가며 자란 어린시절. 수줍었던 소녀에서 순수하게 운동과 삶을 즐기는 청소년으로 성장하기. 대학교에 와서 진로고민, 학점고민에 머리를 싸매기 보다는 때로는 놀고 즐기며,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아기. 그리고 그걸 발견하고 그녀를 알아봐준 멘토 밑에서, 정말 집중하고 즐기고 흠뻑 빠져서 만들어낸 D light 라는 혁신적 기업. 그 경험을 전수하고 전 세계의 문제들을 접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창조적 방법을 고민하며 학생들과 교류해온 지난 3년의 시간, 그리고 새로운 분야에 새롭게 도전하며 남편과, 친구들과, 매주 토요일 오후면 자전거를 타고, 한국에서 온 호기심 많은 친구한테 인터뷰 시간도 내주고 좋은 사람도 소개해주며 지내는 나날들. 그녀는 예뻐지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거나 성형수술을 하지도 않고, 값비싼 백이나 옷에 관심을 갖지도 않고, 멋진 직장에서 많은 돈을 벌 계획을 세우지도 않고, 은퇴하고 뭐할지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세상에 있는 수많은 문제들에 어떻게 더 기여해가며 삶을 충만하게 살지를 고민하고 준비한다. 여전히 그녀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갈망 (Ganas, Desire)을 간직한채 꿈꾸며 사는 어린시절 그모습 그대로의 소녀이다. 앞으로 어떤 가치를 갖고, 어떤 삶을 살고 싶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첫째로 가족, 행복한 가족을 꾸리고 싶어요. 제겐 가족이 무엇보다도 최우선이에요. 둘째로, 항상 제가 가진 수많은 사랑과 행복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과 교류하며 살거예요. 내가 얼마나 복받았는지, 내가 얼마나 하루하루를 즐기고 살고 있는지, 그걸 끊임없이 느끼고 그로부터 삶의 의미를 얻어가는 것이 제겐 너무나 소중해요.

무슨 말이 더 필요 있겠는가. 그녀의 삶이 너무도 기대된다.

인터뷰를 마치고 에리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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