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왜 강할까

미국은 왜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을까? 실리콘밸리에 살면 누구나 이런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도대체 이 곳에서 어떤 비밀이 숨어 있길래 매일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기반 기술이 생겨나고, 또 그것이 큰 산업으로 성장하는 것일까? 앞서 블로그에서 몇 번 언급했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쾌적한 날씨와 환경, 그리고 인재들이 모이는 곳

이 곳에는 인재가 많고, 인도, 중국,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인재들이 끝없이 몰려온다. 스탠포드, 버클리 대학에 미국 전 지역, 세계 각 나라의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고, 그들 중 다수가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는다. 매우 쾌적한 기후를 가진 동시에 사람들의 학력 수준과 생활 수준이 높고,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세상을 바꾸는 회사들이 모인 곳, 인재들이 이런 곳을 마다할 리가 없다. 결국, 우수한 사람들 주변에 우수한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의 천국

엔지니어에게 실리콘밸리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는 것 같다. 이 곳에는 엔지니어들이 존경을 받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 글래스도어(Glassdoor.com)에 가면 각 회사별로 엔지니어들의 연봉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데, 중견기업에서 일할 경우 대개 초임이 7, 8만달러에서 시작하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곧 10만달러(약 1억 천만원)가 넘어간다. 물론 살인적인 물가와 높은 세금과 의료보험료를 생각하면 10만달러가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높은 연봉은 아니지만, 스톡 옵션, 주식 등으로 훗날 벌 수 있는 돈과 주 40~50시간이면 충분한 근무 조건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한 때 샌디에고에서는 “퀼리어네어 (Quillanair) 라는 말이 유행했다. 샌디에고에 본사를 둔 퀄컴(Qualcomm)이 주식을 상장하면서 부자가 된 직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대부분은 엔지니어다. 미국에서는 입사할 때 많은 경우 주식을 받고, 회사 다니는 동안에도 계속 스톱 옵션을 받기 때문에 회사가 좋은 가격에 상장되면 대부분 큰 부자가 된다. 구글이 상장할 때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수십억, 수백억원의 돈을 벌었다.

물론, 해고의 위험도 있다. 2009, 2010년, 경기가 좋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해고를 당했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많은 경우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실력이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회사에서 다시 자리를 잡고 또 다시 많은 인재들이 외국에서 몰려온다.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한 강한 처벌

미국은 기본적으로 지적 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철저한 곳이다. 법으로 보호가 잘 되어서이기도 하지만, 미국 교육 시스템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만든 저작물을 무단으로 복사하면 안된다고 철저히 가르치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적 재산을 귀하게 여긴다. 따라서 대기업이고, 자원이 많다고 해서 섣불리 다른 작은 회사가 만든 것을 무단으로 똑같이 만들지 않는다.

복제할 수 있다 해도 이를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있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 오라클은 지적 재산권 침해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어서, 어떤 사람이 만든 코드라도 함부로 가져다 쓰거나 복제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확인하고 있다. 회사가 도덕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침해 사실이 밝혀 지면 만인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을 뿐더러 소송이라도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중국의 가짜 애플스토어에 대한 이야기가 월스트리트 저널 첫 지면에 나오면서 미국인들한테 엄청난 웃음거리가 된 사건이 있었다 [주: WSJ].

갑을 관계는 분명히 존재, 그러나 파트너십에 가까움

한국에는 SI(시스템 통합) 사업이 많고, 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철저히 ‘을’에 해당하는 SI업체에서 일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엔지니어가 탄생하기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도 그런 갑을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돈을 주는 쪽은 무조건 갑이고 돈을 받는 쪽은 을이다. 그래서 을 입장에서 계약을 따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대접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면 수직적 갑을 관계라기보다는 파트너십에 가깝다. 제품, 서비스와 돈을 교환하는 관계일 뿐인 것이다.

인터넷, 모바일 창업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출구(exit)가 있기 때문

왜 실리콘밸리에서 인터넷, 모바일 관련 창업이 많이 일어나고 그 중 많은 회사들이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할까? 그 이유는 출구(엑싯:exit)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엑싯(exit)이란, 회사가 성장해서 매각되거나 주식 시장에 상장되는 사건을 의미한다. 회사를 판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엑싯이 일어나면 창업자를 비롯한 초기 멤버들은 큰 돈을 벌 수 있고, 이는 다른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앞다투어 창업을 하도록 하는 동기가 된다.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에서는 인수 합병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대기업들이 작은 회사들을 큰 프리미엄을 주며 한 달이 멀다하고 인수한다. 그러한 기술을 만들 줄 몰라서가 아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다른 회사가 만든 기술을 인력 투입이나 자본 투입으로 복제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공채 제도가 없고, 직원들의 회사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회사들이 1년 내내 인재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회사 인수를 하면 정말 우수한 인재들을 회사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베테랑 투자가들의 뒷받침

회사 초기에 입사해서, 주식 상장을 통해 큰 돈을 번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플로리다에 집을 하나씩 사서 여생을 즐기고 있을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 투자자로 변신했다. 그 중 한 명이 크리스 사카(Chris Sacca)이다. 자신이 번 돈과, 다른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2009년에 투자 회사를 만들었고 그 이후 트위터, 고왈라, 인스타그램 등을 포함하여 34개의 쟁쟁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주: CrunchBase]. 법학을 전공했고, 기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그야말로 베테랑 투자가이다. 바로 앞에서 설명했듯, 이 곳에서는 엑싯(exit)이 많이 일어나므로 투자한 돈이 투자가들에게 되돌아올 기회가 많다는 것도 스타트업 투자가 활성화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에서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정부 자금 지원 등의 일차원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거나 현재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만을 흉내내려 한다면 실리콘밸리의 시스템을 절대로 복제하지 못할 것이다. 설사 그렇게 해서 일시적으로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난다 하더라도, 결국은 부실한 회사들만 잔뜩 생겨나고 그 회사들이 제대로 성장을 못해서 결국 국민의 세금만 낭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매일경제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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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Sungmoon Cho

Principal Product Manager at Oracle / Co-President at Bay Area K Group / (ex) Gamevil / Blogger / Advisor & Angel Investor / SNU EE / UCLA Anderson MBA / 서울대에서 전자공학과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게임빌 창업멤버로 조인해서 7년간 회사 성장과 함께하다가 2007년 미국으로 와 UCLA에서 MBA를 마쳤습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거주하고 오라클에서 Principal Product Manager로 일하고 있으며 글쓰기와 여행, 분석하기를 좋아합니다.
  • http://hestory.net HE

    실리콘밸리의 경쟁력이 선순환 고리임을 보여주는 좋은 글인 것 같습니다.

    제가 실리콘밸리 1세대의 자서전을 보고 있어서 일까요? 선망의 일터로 보입니다.

    포스트를 읽다보니 짐 콜린스가 이야기한 “플리이휠” 이 생각납니다. 정말 사람이 플라이휠을 제대로 돌릴 수 있는 환경으로 생각됩니다.

    *짐 콜린스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의 플라이휠 : 사람과 회사양쪽의 축적과 돌파하는 사이클을 명사화 한 단어로써 플라이휠은 외적인 것이(수익의 급상승이) 아니라 내적인(근면한 규율의 문화의) 사이클이며 이 사이클을 점차 빠르게 돌릴 수 있게 될 때 위대한 회사가 된다고 한다. 즉 어떤 환경요소(시장의 소비형태의 이동)로 운 좋게 한방에 크게 떠오르는 회사는 있을 수 있으나 위대한 회사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플라이휠이란 규율 있는 사람들이 규율 속에서 고슴도치 컨셉에 맞게 버스가 향하는 방향으로 올곧게 묵묵히 나아갈 에너지를 축적하고 나아가는 것과 같은 하나의 사이클이며 이 사이클이 처음에는 엄청 더딜지언정 그 다음 바퀴 그 다음바퀴에서는 점점 더 적은 힘으로 플라이휠을 돌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이런 시간적인, 사람적인 구성원 하나하나의 지속적인 축적과 돌파라는 단계를 만들어내며 이 누적적인 성과가 새로운 성과의 밑거름이 되는 영속하는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는 근간이라는 것이다.

  • Phil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지적재산권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은 저 지적재산권의 엄청난 중요성을 영영 인식하지 못한다면 사회도 발전되고 진화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지를 해야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글이 나올때마다 가끔 이런 생각들을 합니다.

    결국에는 모든 해결책은 개개인의 인식의 수준에 달려있는데,

    그걸 깨기 위해서는 스스로 깨어나던지(드물죠…) 아니면 교육적으로 먼저 진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참…. 솔직히 말해서 좀 앞이 잘 안보입니다.

    제가 미국에만 있을때는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한국에 와서 피부로 느껴보니 생각보다도 너무나 갇혀있더군요.

    예전에 안철수씨의 강연중에 이런 부분에 대해 언급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저의 사견을 보태서 얘기해보자면,

    한국에 말만이 아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려면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사람이 누구도 예상 못한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요.

    엘리트 길을 걸어온 명문대 생이 창업하는 페이스북이 아니라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지방대 생이 일궈낸 페이스북을 보기를 간절히 희망한다더군요.

    그래서 박경철씨랑 둘이 꾸준히 지방대 강연을 돌아다녔더랬죠.

    아직도 한국인의 성공스토리에는 서울대,카이스트,연고대가 들어가 있는 걸보면 어쩌면 나머지 지방대생들이 머리가 나쁘고 창의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사회에서 주는 기회가 얼마나 되는지가 먼저 의심이 갑니다.

    과거도 미래도 없는 매 순간을 살고 있는데 이제는 갇힌 틀에서 벗어나서 넓고 여유롭게 바라보며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후진국 소리를 듣더라도 행복한 한국인들이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