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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네트웍의 중심, 하이디로즌이 들려주는 인간관계이야기

* 아래 글 읽기에 앞서 저의 글을 처음 접하시는 분은 부디 제 홈페이지에의 공지사항 에 있는 글들을 읽어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에서 이런 글들을 쓰고 있고 제게 연락주시고 싶은 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은지 제 생각 정리해 봤습니다. 특히나 이번 글은 조금은 개인적이고 논란의 소지가 될 수도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이런 부분들을 커뮤니케이션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 Why I am writing this 

이 글은 밸리 인사이드에 내가 네번째로 올리는 글이다. 이 글을 쓸까 말까 상당히 망설였던 이유가 몇가지 있다. 첫번째는 또다시 여성의 이야기라는 것(남성들이여 분발합시다). 두번째는 마치 내가 실리콘밸리의 엄청난 사람을 알게된 것을 자랑하는 것처럼 비출수 있다는 것. 세번째는 그래서 사람들이 더욱 더 자기보다 더 사회적, 직업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때로는 무리하게 접근해 물의를 밎는 사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것. 이런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게된 것은 다음의 이유에서다. 첫번째로 정말 인간관계의 구루로 알려진 사람의 삶,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맺고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사는지 순수히 알리고 싶었다. 둘째로 내게도 멘토가 되어달라고, 또는 사람들과 관계맺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접근하는 사람이 정말 많은데 내 개인적인 예를 보여주고 싶었다. 셋째로는 이건 나에게도 정말 너무 재미있는 주제이다. 앞으로도 계속 연구해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 생각을 정리해보고 알리고 싶었다.

멘토십. 특히나 자신과 별 관련이 없으며 자신보다 훨씬 사회적, 직업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콜드 콜(Cold call)해서 멘토가 되어 달라고 하는건 정말 예의에 어긋나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만큼 어느 누구와 의미있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누구를 동경한다고 해서 관계가 생길 수 없다. 하나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나도 이렇게 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건 극히 드문 케이스라는 것이다. 지금껏 살면서 손꼽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에게 이렇게 적극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래 소개하겠지만 1) 그녀의 삶의 철학이 내가 너무도 닮고 싶어하는 것이었고, 즉 나에겐 그녀가 영웅이고 스타였고 2) 지금 후배이자 학생신분으로 조금은 부담없이 누군가에게 접근할 수 있는 내 상황과 접근하는 사람에게 항상 따뜻하게 응대해주는 그녀의 일관된 자세가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계속 받아왔고 3) 알면알수록 그녀가 그냥 사람으로서 너무 좋았고 4) 접근하는 것 자체가 그 스스로 내게 많은 자극을 주고 있으며 5) 앞으로도 무리한 부탁이나 불합리한 요구같은게 아닌 정말 순수한 마음과 일관된 자세로 계속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있는 것 등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찌보면 불가능처럼 보였던 그녀와 나 사이에도 조금씩의 신뢰와 정이 쌓여가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은 내 삶에서 그녀를 알게된지 거의 1년째 되는 날이다. 아래 나와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들려주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2. Who is Heidi Roizen

하이디 로즌

하이디 로즌(Heidi Roizen), 그녀의 위키피디아 정보는 여기에, 개인 웹사이트는 여기에, 링크딘 프로파일은 여기에 있다.

하이디 로즌은 실리콘밸리에서 쭉 자란  기업가(serial entrepreneur), 벤처캐피털리스트(VC), 네트워킹 구루, 인간관계의 중심이다. 현재 DFJ 벤처캐피털의 파트너이자 기업가정신(Spirit of Entrepreneurship)이라는 강의를 스탠포드에서 하고 있다. 수많은 회사의 사외이사직을 겸직하고 있고 IT분야 전미 여성 연합과 스프링보드 엔터프라이즈의 자문위원(Board of Advisors of the National Center for Women in Information Technology, and of Springboard Enterprises)직도 수행중이다. 이전 경력으로는 다양한 기업의 사외이사, 8년간 모비우스 벤처캐피털(Mobius Venture Capital)의 매니징 디렉터(MD), 전미 벤처캐피털 연합 이사, 두개의 기업 창업 및 엑싯(이중 한 기업은 13년간 운영), 애플의 Vice president 등을 거쳤다. 학부는 스탠포드 영문학을 전공했고 스탠포드에서 MBA를 마쳤다. (83년 졸업) 수많은 자선단체에 관여하고 경영현장에서 여권신장에 대해서도 계속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의 특기(Specialties)에 대해 “나는 기업가(Entrepreneurs) 및 경영진(executives) 같이 일하며 멋진 회사를 만들어가는걸 사랑합니다. 난 창조적 정신으로 일하는 것을 사랑합니다. 난 기업 경영(corporate governance) 일을 정말 즐기고 계속해갈 것입니다. “라고 소개한다.

요약하자면 혀를 내두를 만한 경력과 도저히 인간미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삶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는 네트워크, 인간관계(Human Relationship)을 깊이있게 이해하고 그 자체로 즐기는 사람이다. Fortune 500회사의 CEO 대부분과 관계를 맺고 있고 그녀 스스로 전세계 10대 부자 중 7명과 큰 허물없는 친구(특히 워린버핏, 빌게이츠 등) 라고도 이야기할 정도로. 그리고 아래 소개하겠지만 그녀의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 케이스로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녀의 삶에 대해 좀더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뜯어보고 싶은 사람은 이글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녀가 소프트뱅크 VC에 근무하던 수년전에 쓰여진 글이지만 그녀의 삶에 대해 정말 잘 분석해 놓았다. 보면 도저히 인간미라고 느껴지지 않았던 온라인 상의 그녀의 삶에 강한 공감대와 연민(empathy), 존경심을 품게될 것이다. 다시한번 소개하자면

 “어린시절 : 그녀는 실리콘밸리에서 기술과 엔트리프리너십(technology and entrepreneurship)에 둘러쌓여 자랐다. 스탠포드에서 영문학, 창조적 작문(creative writing)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약혼자가 불연사하면서 다시는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거나 의존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졸업후 탄뎀 컴퓨터의 뉴스레터 에디터로 경력을 시작한다. 탄뎁(Tandem)에서 그녀는  처음 경영진의 미팅에 다 참석하게 되는데 이때 좋은 관계를 맺은 것이 후에 스탠포드 MBA에 진학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MBA졸업후, PC의 얼리 어댑터로서 그녀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그녀 동생과 테이블 메이커(Table Maker)라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회사를 창업하기로 결정한다.  외부의 자금유입없이 회사 내부 자금으로만 운영했는데 수익창출을 위해 자신의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사용, 발전시켜 갔다. 그녀는 유명하고 힘있는 사람들보다는 그녀가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똑똑하고 재미있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데 주력했고 이들 중 상당수가 후에 실리콘밸리와 전세계의 아이콘이 된다. 테이블 메이커는 84년에 애플에 성공적으로 인수되었으며 96년까지 그녀는 CEO로 재직한다.

96년 그녀는 애플의 전세계 만 이천여명의 개발자 관계 VP(VP of worldwide developer)로 일하기 시작한다. 이떄 그녀는 애플이 떨어지는 시장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비전을 심어주는데 주력했다. 그녀는 인간관계에서 일관성(“consistency”)과 퍼포먼스(“performance”)를 관계의 빈도보다 훨씬 강조하면서 계속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온다.

사내 정치, 기술 이슈 등에 지친 하이디는 97년 애플을 떠나 스스로의 인간관계와 노하우로 각종 자문을 해주는 1인기업, “mentor capitalist”  로 일하기로 결정한다. (그 와중에 수많은 기업의 사외이사 등을 겸직하기도 한다.) 그녀는 다른 벤처캐피털이나 투자자처럼 자본을 제공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투자하고 회사 지분을 받았다. 그녀는 이 때 자신의 인간관계를 적극 활용한다. 그녀의 원칙은 위에 소개한 일관성, 퍼포먼스 외에도 반드시 Win-win시나리오 상황에서만 네트워크를 활용할것, 반복되는 관계인 점을 명심할것, 이메일 등 커뮤니케이션 테크닉을 적극 활용할 것 등이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 약 10명정도의 사람을 초대해서 하는 소규모 저녁식사를 즐겼는데 초대시 5명정도는 이미 아는 사람, 5명은 새로운 사람으로 배분해서 안락함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동시에 주고자 했다. 개인적, 그리고 직업적으로 잘 알고 존경하는 사람들만 초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의 가장 큰 무기는 진실하고 겸손하며 부담없는 그녀의 성격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정말 사랑했다.

그리고 그녀는 99년에 소프트뱅크 벤처의 파트너 파트타임직을 맡는다. (이 시기에도 계속 사외의사, 자문 일은 수행하고 있었다.) 이 직업을 택하면서 그녀는 1인 기업으로 일하는 것이 팀워크에서의 효율성과 서로 끌어주는데서 나오는 시너지에 비해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기업가에 대한 강한 연민과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그녀는 하루에 10개가 넘는 비지니스 플랜을 받으면서도 꼭 모두에게 답을 해주었는데, 이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그녀와 잘 안다는 착각을 하게 이른다. 이 시기에 그녀는 네트워크의 정점에 있어서 그분야 사람들을 다 아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네크워크와는 무관히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보통사람”과 더욱더 깊은 관계를 맺기로 결정한다.

2008년 그녀는 불어난 몸무게를 줄이고 싶다는 개인적 동기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빠지는 음악(Skinny song)이라는 회사를 창업한다. 본인이 가진 역량과 네트워크로 음악 비지니스에서 어렵게 회사를 성장시키다가 그녀는 지금은 DFJ벤처캐피털의 파트너이자 수많은 기업의 사외이사, 대학교에 막 들어가는 두 딸의 엄마로 살고 있다. “

3. 나와 그녀의 스토리의 시작

내가 그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이맘때 쯤이다. 1학년 수업시간에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어갈 것이냐에 대한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 케이스(유감이지만 유료이다. 그러나 카페베네 빙수보다 싼 가격으로 충분히 사볼 가치가 있으니 적극 권하고 싶다.)를 다루면서 부터이다. 위에 대부분 다 소개되어 있지만 이 케이스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 그리고 인간관계를 만들어간 것이 그녀의 삶에서 어떤 의미였고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절대 혼자밥먹지 마라(Never Eat Alone – 케이슨피라지)의 책을 읽었을 때 든 머리를 망치로 맞은 느낌이 다시 들었다. 어떻게 한 기업의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것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간 이야기가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에 나온다는 말인가. 그녀에게 인간관계는 절대 수단이나 도구가 아닌 그 자체로 즐거움이고 행복이고 열정이었다. 내가 늘 생각하던 개념을 정말 실천하고 그게 맞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너무 큰 위안이었다. 케이스의 주요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1. 그녀에게 인간관계는 절대로 수단이나 방법이 아닌 그 자체로 순수한 그녀의 삶이었다. 그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주기를 즐겼다.

2. 그녀는 “일관성(Consistency)”을 매우 강조했다. 즉 사람들이 그녀에게 접근할 때 어떤 상황에서는 응대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하지 않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응대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일관된 메세지를 보였고 사람들은 그녀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3. 또 “퍼포먼스(Performance)”를 빈도 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겼다. 즉 몇 달에 한번, 또는 오랜 친구와 몇 년만에 한번 연락이 닿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도울 수 있는 모든것을 동원해서 도왔고 그 순간에 집중했다. 그래서 자주 연락을 못하는 사람도 항상 그녀의 진실성을 느낄 수 있었다.

4. 항상 Win Win을 만들었다. 즉 일방적으로 어떤 한쪽만 도움이 되는 상황에서는 절대로 무리해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정말 멋있다. 참 만나보고 싶다. 만나서 좀더 가까워지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순수한 존경심이었지 결코 그녀와 관계를 맺어서 뭐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였다. 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나섰다. 뒤에 알게된 일이지만 MBA생 400명이 같은날 같은 시간에 케이스를 읽었고,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케이스를 읽었지만, 실제로 그녀에게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접근해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역시 한국인의 저력, 열번찍어 안되면 열한번찍기 정신이다.) 난 주위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그녀를 아는 사람을 찾았고, 성공적 기업가인 내 MBA친구중 한명이 그녀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래서 이메일로 소개를 받고 진심어린 장문의 이메일(내가 누구고 왜 이 이메일을 쓰고 왜 당신을 만나고 싶은지, 정말 나에게 인간관계란 신성어린 영역이다. 내게 당신은 수영선수라면 박태환 펠프스, 농구선수라면 마이클 조단, 배우라면 브래드피트 같은 존재이다. 정말 만나고 싶다.) 이렇게 보냈다. 놀랍게도 하루만에 답장이 왔다. 알게되어 반갑고 영광이며 한달 후 쯤 자기가 스탠포드에 강의하러 오는 날 공강시간에 30분시간이 나니 그리로 오면 자기를 만날수 있다는 것이었다. 달나라도 달려갈 준비가 되있었던 나에겐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다.

상당히 흥분되고 고무돼 있었던 나는 이 30분을 정말 잘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인터넷 조사를 다 했다. 또 2학년 선배중에 그녀를 만났다는 사람이 있어서 미리 만나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이 30분동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이런걸 미리 알아보고 정리했다. 만나기 전날에는 그녀에게 다시한번 내가 누구인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건지 메일보냈다. 머리속이 온통 커리어 관련 생각이었던 지라 목차 잡아서 어떤 일 하고싶은지 왜 하고 싶은지 써봤다. (거의 재경부 보고서 스타일로 그다지 잘 쓴 이메일은 아니라고 본다.) 괜히 어줍짢게 부탁을 하고 싶은게 아니었다. 막 실리콘밸리로 건너온 내게 큰 거시적인 차원의 조언을 해주는 생각의 동반자(thought partner)가 되줄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으면서 메일을 마쳤고 매우 부끄럽지만 참고가 될까 해서 그떄의 이메일을 문법틀린 영문까지 다듬지 않고 그냥 올려본다.

Subject : 11/7 Meeting topic (SanBAEK)

Dear Heidi,

I am so excited for our meeting tomorrow. To make a truly beneficial time, here is some more information that I want you to know.

1. My School life

1) General

As I told you, I am enjoying my Stanford life more than anyone else. I feel like I am at home right now in Stanford.

As a person who loves to be with people, outdoor sports, and lots of events, this place is a heaven. I already organized several groups, including groups who worked or interested in non-profit sector. I made a spread sheet with everyone’s information and printed out, carrying it every place to get to know people better.

2) Part-time work

I am starting to work with other classmates for a nonprofit startup incubator + micro finance organization in Nigeria. It is mainly targeting unemployable youth into local economies and co-creating businesses across the urban developing world.

3) Other Activity

I will apply to take a leadership role (called Arbukle leadership fellows) and currently applying for Talk Coach. (Talk is a session that a person delivers his life story for like an hour, and coach is the one who helps him with the speech.)

2. My career passion

What are my criteria in finding professional career 1) Something meaningful, visionary, hopefully global. 2) Entrepreneurship level. Have good culture, positive energy.

My strength

I find myself who is energetic, collaborative, and always people driven. I have a strong believe on people and connecting people is something that I love the most.

So what kind of job I am looking for?
1) Consulting (US, hopefully Bay Area)
– Reason : Great Trajectory, Safe option since I am an international, who has no previous experience in US private business area. I love travel.
– Concern : My lack of english communication skill.

2) Start ups Good tech company
– Reason : Good culture, great motivation, Bay area.
– Concern : I have no idea on Tech business.

3) Impact Investment or nonprofit consulting – (Acumen, Ashoka, Endeavor,…)- Reason : Meaningful + Good culture. I can make myself more useful, even as an international.
– Concern : Can I find a work-life balance? Will trajectory be good?

Again, Thank you so much for your time. I’m not asking you to give all the answer in our first meeting nor I think it’s possible. I’m not asking you to be my mentor now. I just thought that your small input can go a far way for me at this critical moment and I wanted to engage you as a thought partner since I truly respect your life and passion on human relationship. Your presence itself is inspiring me everyday! Hope I didn’t overwhelmed you.

All the best,

San Baek

다행으로 이런 내가 귀엽게 보였나보다. 커피숍에서 만난 그녀는 인터넷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네트워킹의 구루답게 엄청난 자기관리와 모델 뺨치는 매력을 자랑할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매우 인간적(?)인 외모, 말도 상당히 많고 첫 만남에서 허술한 푼수끼를 드러내는 인간미, 자기가 바쁘지는 마음은 항상 열려있으며 특히나 열심히 연락하는 스탠포드 MBA후배들은 너무 귀엽다는 솔직한 이야기, 계속 연락하며 관계 맺어가자는 격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걸 하되 실리콘밸리에 있어봐라. 컨설팅 보다는 직접 책임지는 일을 해라. (이건 순수히 그녀의 사견이자 표현입니다.) 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오랜 팬이 스타를 만난 느낌이랄까. 내겐 그녀가 아이돌 스타였다. 내가 그녀에게 부탁한 것은 단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이 부탁을 가끔 내가 존경하는 사람 만나면 하곤 한다.) 내가 가끔 이메일을 보내도 되겠냐는 거였다. 절대 부탁하는 이메일이 아니라 안부를 여쭙고 내 삶을 말씀드리고 그 자체로 내겐 영감을 주고 큰 공부가 되니 부담이 안된다면 굳이 답 주실필요 없으니 그저 가끔 이메일만 드리게 해주세요 – 뭐 이런 거였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흔쾌히 “얼마든지” 라는 대답을 얻어냈고 바로 밤에 오자마자 아래 이메일을 보냈다. 간단히 그녀에게 어떤 점에서 감사한지 매우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그녀의 인풋이 어떻게 내 삶을 변화시킬지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거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돕고 싶었다. 이메일 전문, 역시 매우 부끄럽지만 그대로 첨부한다. 참고로 이제와서 이야긴데 맨 마지막에 From a happy man~~ 이거는 절대 참고하시지 않았으면 한다. 미국에서 이메일 쓸때는 맞지 않는 접근방법이라는걸 이제는 깨달았다. (맨 밑에 그녀의 짧은 답장도 첨부한다. 역시 깜짝 놀랍게도 몇시간만에 왔고 이모티콘까지 붙어 있었다. 두줄 밑에 내 질문 관련해서 그녀가 몇마디 더 답을 해줬고 내가 다시 답장 했지만 그 부분은 크게 관련없는 것 같다고 판단해서 첨부하지 않는다. )

Subject: Thank you

Dear Heidi,

Thank you so much for your precious time today. It was truly epic moment.
Here are a couple of things that from our meeting.

1. My career path 
Thank you for your direct, considerate advice. A lot of things became so clear to me. I was quite stressed out with all of a sudden wave from management consulting recruiting. Thanks to your encouragement, I can be more self-confident, balanced, and long-term oriented. I will try harder to get into a good tech company in Bay area. What is important to me is to work with good, fun, and motivated people in a good culture. Also, this is more long-term oriented and brave decision to learn how to do the real business.

2. Undergraduate entrepreneurship network
As I told you, I am about to start working with a program called “Founder Soup” during my time in GSB, a matching event of pitcher, engineer, and designer. This is definitely the kind of activity that I have been looking for. If you can connect me to undergraduate network interested in starting business, it would be truly helpful.

3. Occasional email and personal touch
Since you are living a life that I always dreamed of, I already designated you as my lifelong mentor. With that says, thank you for letting me to email you occasionally. (You really don’t have to email me back. I insist. I know how busy you are.) If there is anything I can do for you, I would more than happy to do that. Please give me a chance to be more personal with you. I can cook some Korean food for you at least. I know that you are kind and busy enough to outsource some to motivated GSB 1 who is trying to follow your path.

Thank you again Heidi. Have a great day.

From a happy man who met his lifelong mentor,
San

Re : Thank you

San, it was my pleasure! Remember right now to take advantage of the opportunities, relax, and keep your options open! Don’t stress too much :-) Heidi

그리고 나서 나는 가끔 그녀에게 안부성 이메일을 보냈다. 아래는 내가 2011년 말 크리스마스 직전에 그녀에게 보낸 이메일과 그녀의 답장이다. 하나 참고 할 것은 내가 부디 답하지 말아달라고 여러번 이야기한 점이다. 절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고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티안나게 내가 누구누구를 만나서 이런쪽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그녀의 사람소개나 조언에 대해서도 기대를 거는 머리도(?) 굴렸다. 역시 그녀는 몇시간 만에 엄청나게 짧은 이메일 답변을 보내왔다.

Subject : Greeting from San Baek

Dear Heidi,

How’s it going Heidi. this is San. How’s it going. Hope you have a great holiday season.

This is just an email to let you know about my personal journey, so please don’t reply. I know that you are packed with so many emails, especially in this times of the year. Don’t want to add a burden on you. So how I have been,

1) Always with people

As I told you, I really feel like at home right now with this ‘touch-feely’, warm and positive culture. I knew that GSB is going to be best thing ever happened in my life, but actually it is even beyond my imagination. I’ve been to as many events as possible. I always tried to meet people with sincere and considerate manners, trying to be open and be curios. I made a spread sheet with every one’s information and printed out, and studied it every single time that I have.
As a result, I think I am doing my best job ever in terms of social life. One example that I want to share with you is Movember auction. I auctioned off at Movember date auction benefiting charity with the highest bidding money. (More than $1,000 per date.) Another example is that my section has made section T shirt based on my comment in one class. I feel so great with being with all the awesome people around. Classmates are definitely the most amazing part of GSB for me.

2) Reaching out to people

I made several alumni mentors by keep reaching out to people. One is a VP in Cisco, GSB class of 85. After consistent email from me that I started to write after her BBL(Brown Bag Lunch) on GSB, she finally became my mentor. It was really amazing experience that she connected me with someone else that they thought might be most helpful for me, after having a deep conversation with me.

3) Career seeking

I am applying both Tech companies and some consulting in U.S. Following your advice, I am trying my best to get into those Tech company around here. Consulting can be my back up or another options. I am applying to mainly big companies, such as Amazon, Apple, Google, and MS. I also wanted to apply Linkedin but they don’t sponsor Visa for international students. I had a chance to have conversation with Dan Shapero, a GSB alum working at Linkedin, and he introduced me a man who runs marketing in APAC, John Eng. I emailed him but still haven’t heard from him, so planning to email him again, just giving it a try. I made my door open to startup worlds.

Once again, thank you so much Heidi. In the future, if you are interested, I am happy to organize an event with you and some small groups of current GSB students who are highly interested in you. I will contact to Alumni center to come up with some good program that can make this most fruitful, Just let me know if you have any thoughts on this.

Hope you have a great holiday season!. I will comeback from my winter Global Study Trip to India on 7th Jan. Happy new year in advance.!

All the best,
San

Re :

happy holidays, happy to do something with students next quarter. – Heidi

4. White party auction

GSB의 연중 가장 큰 자선경매행사 포스터

매년 2월이 되면 GSB에서 하는 가장 큰 자선 경매 행사가 있다. 별의 별 아이템이 다 경매로 팔려가는데 예를 들면 “백산과 함께하는 강남스타일 댄스교실” 이런 것 지금상황이라면 수백달러에 팔려갈 수 있다. 모든 경매 기금은 자선목적에 기부되는데 상당수는 학교 동급생들이 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나 프로젝트로 투자된다. 매년 수억 단위의 엄청난 기금이 모인다. 나도 아시아 애들 모아서 Giant Asian Empire 이런 것도 내고 Rice Cake Prom 이라는 두개의 경매 아이템을 내서 총 천만원 이상의 돈을 모았다. (물론 열명 넘는 우리팀이 같이 모은 돈이지만). 그 와중에 에릭 슈미스와의 점심식사, 팀 쿡과의 커피 데이트 이런 아이템들도 있었다. 그런 영향력 있는 인물과 개인적 관계를 가지고 있던 친구들이 만들어 오는 아이템이었다. 문득 하이디가 작년 말에 다음 쿼터에 학생들과 뭔가 하고 싶다고 했던게 기억났다. 올커니. 그러나 너무 정신없었던 나날이었던지라 차마 메일을 보내지 못하고 있더라 마감 하루 전날 밤, 예의에 어긋나는 이런 이메일을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언제나처럼 다음날 아침에 바로 답장을 보내줬다. ‘얼마든지’ 라고. 아직도 나는 그때 혼자 Gym에서 운동하다가 말고 너무 좋아서 소리질렀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Subject: [Urgent]_White Party Donation Request_Lunch with Heidi Roizen

Dear Heidi,

Hi, how’s it going. Sorry for not getting back to you for while. It’s been quite busy. I am writing this email to ask if you are interested in donating White Party auction item to GSB fellows : Lunch with Heidi Roizen

1) How does it works

As you can see from the attached file, there are lots of donation items of ” Lunch with Someone. ” To give you some example : Condoleezza Rice, Reic Schmidt, Doug Leone, and etc…

Item #10 Big Hitters : Lunch with Dr. Condoleezza Rice

A once in a lifetime opportunity to have a small group lunch with former Secretary of State Condoleezza Rice. Number of Participants: 6 Donor Name: Condoleezza Rice GSB Contact: Sam Epstein Opening Bid: $250

2) Logistics

1) Time line : If you are interested, please let me know by tomorrow 12pm. I am really sorry for the last minute notice. I really wanted to organize some events with you and GSB but really quite busy. (No excuse.) 2) Lunch/Dinner : Your choice 3) Number of participant :

3) What will happen

Let’s say it’s 6 people, lunch, and 6 people won the auction. Then you should give us an available time and we can have good meal and talk together.

Again, apologize on last minute notice. Would love to organize similar thing later on if it doesn’t work out this time. Thank you so much!!

All the best,
San Baek

Re : 

Sure happy to do lunch for six at my house – Heidi

결국 나의 이 아이템은 500개가 넘었던 그해의 자선경매 아이템중 가장 마지막에 등재된 특별 아이템으로 올라갔고 그녀의 유명세 덕분에 150만원 가까운 가격에 돈많은 아저씨에게 팔려갔다. 이 사건으로 갑자기 동급생 사이에서 ‘가장 네트워킹을 잘하는 사람’ 이런 상(?)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주선자 명목으로 그로부터 몇달 후 그녀의 집에서 소규모의 오붓한 브런치를 가지는 사치를 누리게 됐다.

5. Brunch with her at her place –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녀 집 앞에 붙어있는 현판

그녀의 집은 학교에서 자전거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풀장딸린 널찍한 마당에서 그녀가 직접 요리한 샐러드와 음식, 샴페인을 곁들이며 우리는 인생과 행복에 대해 약 세시간가까이 말그대로 썰을 풀었다. 그녀는 연신 “아 그만마셔야 되는데” 라고 말하며 샴페인을 상당히 많이 마셨다. 브런치 자리는 그녀가 일방적으로 말하고 우리가 듣는 자리라기 보다는 다 같이 많이 웃고 많이 말하며 그냥 순간을 즐기는 편안하고 부담없는 자리었다. 나 말고 4명이 더 갔는데 3명은 슬론이라고 직장경력 10년정도 되어서 1년짜리 프로그램에 와있는 아저씨 뻘이었고 한명은 내 동급생, 나랑 코드 잘 맞는 여자애였다. 아래는 우리가 주로 나눈 대화 내용이다.

1. 그녀 자신의 인생이야기

여러 회사를 차리고 인수되고 사외이사가 되고 또 등등. 다양한게 참 재밌었는데 특히나 스티브 잡스랑 일하는게 만만치 않았어. 같이일 안해보면 몰라… 휴. 이젠 고인이지만 참 같이 일 안할때 훨씬 더 정감가는 사람이야. ^^

2. 의미있는 인간관계를 만드는게 왜 중요한지 

우리는 100년은 살거고 계속 일할거야. 그럴려면 인간관계가 필수적이야. 새로운 도전이 하고 싶을 때 너 주위에 있는 사람이 도와줄거야.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내가 다음에 무엇을 할 지 조언해주고 도와주고 영향을 미칠거야. 꼭 개인적 인간관계와 직업적 인간관계(Personal and professional relationship) 을 나눌 필요는 없다고 봐. 특히나 산, 니가 40대 50대가 될 때 쯤이면 평생직업뿐 아니라 국적이란 것도 의미가 많이 퇴색될거야. 우리의 아이덴티니는 여러가지가 될거야. 직업적으로나 위치적으로나.

3. 어떻게 그 많은 인간관계를 다 유지하시나요? 

별거없어. 아주 간단해. 이메일이야. 난 이메일을 매일 깨끗이 비워. 즉 하루에 200개 정도 오는 이메일을 아침, 저녁, 낮에 몇시간 정도씩 시간을 아예 미리 막아두고 이메일을 쓰지. 중요한건 얼마나 일관성 있느냐야. 난 절대로 Hi ABC, How’s it going. 이런거 안써. 그런거 쓸 시간있으면 이메일을 한통 더 쓰지. 매번 나한테 그런 이메일 받다보면 사람들이 적응해. 익숙해져. 하이디는 바쁘니까 짧게 용건만 쓰지만 항상 바로바로 답은 준다 이런 식으로. 그리고 꼭 상호 win win을 만들어내지 어느 한쪽만 관심있는 연결은 절대 시켜주지 않아. 꾸준히 부지런하고 절도있게(discipline) 하면돼. 이렇게 기본을 지키고 꾸준한 사람 정말 많지 않아.

또하나 정말 중요한데 사람들이 자꾸 간과하는건 내가 얼마만큼 저 사람의 시간을 뺐을 수 있는지, 어느정도의 부탁을 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한 객관적인 감이야. 그걸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인간관계를 잘 할 수 있다고 봐. 난 평소에 꼭 꾸준히 관계를 만들어놔. 선물도 보내고 괜찮은 기사가 있으면 보내고 꼭 답 보낼 필요 없다고 제목에도 명시해. 그래서 상대방도 부담안느끼게, 나한테서 연락오면 기분좋고 뭐든 들어주고 싶게 만들도록 하는게 몸에 배어있지.

4. 실리콘 밸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테크 버블이라는 발도 있잖아요? 

난 83년에 MBA에 졸업했고, 뭐 그 전부터도 이쪽에 쭉 살았으니 지난 거의 40~50년간 수많은 흥망성쇄를 봐왔다고 할 수 있지. 버블이란 말은 항상 있었어. 위험에 대해 관대한 문화, 열려있는 성과주의(Open Meritocracy) 이런 것들이 기반이 된 기회의 땅이지. 그래서 전세계 40%에 가까운 벤처 파이낸싱이 캘리포니아에서 이뤄지고 있고 각 국가마다 또 서로 소규모 네트웍을 이루고 많은걸 만들어 가고 있는걸로 알고 있어. 미국인이 아닌 다른나라에서 태어난 엔트리프리너도 1/4정도는 될거야. 캘리포니아의 경제규모는 전 세계 8번째 정도에 달하지. 실리콘밸리를 복사하거나 배끼려는 시도는 정말 많았지만 정말 어렵다고 봐. 중요한것은 실리콘밸리가 좀더 관대한 이민 정책으로 전세계의 탤런트를 계속 유입해야 겠지. 난 이부분에도 관심이 있어서 꽤 관여하고 있어. 너네처럼 훌륭한 사람들이 비자 때문에 여기를 떠난다는건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특히 백산, 너 처럼 미국 생활 경험이 없고 IT쪽에서 일하다 오지도 않은 경우는 적응하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지. 그래도 내가 볼 때 문제없어. 일단 너는 태도가 됐고 (웃음) 거기다가 멋진 학교를 다녀서 주위에서 다 너를 이끌어줄거야. 문제는 니가 얼마나 열심히 하기 나름이야. 이곳은 옛날 금광캐는 걸로 시작한 곳이야. 모두가 꿈을 꾸고 그것에 열려있지. 절대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지마.

5. 자녀교육관 

우리 부모님은 참 가난했어. 그래서 내가 더 열심히 살 수 있었지. (That made me driven.) 나는 내 두 딸에게도 비슷한 가정교육을 해주고 싶어. 성인이 되면 줄려고 자녀당 신용 펀드를 하나씩 만들었고 첫째한테는 이미 줬어. 즉 대학 등록금보다 약간 더 되는 돈을 주면서 “이게 엄마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돈이야. 알아서 관리해. 이 이후에는 절대로 그냥 돈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야. ” 라고 확실히 이야기해놨지.

6. 행복,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

(나는 그녀의 버킷리스트가 참 궁금했다. 그녀 정도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름으로 된 펀드 설립과 같은 멋진 계획이 아마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난 매년, 또는 매 수년마다 인생의 모토를 다시 정하곤 해. 지금 내 모토는 “현재를 살자.” 야. 내가 좋아하고 즐길 것, 그 순간을 살 수 있는 것들을 계속 해 나갈거야. 장기적 계획은  없어. 뭔가를 이루는게 목적이 아니라 그 순간 열심히, 충실히, 묵묵히 사는 것이 목적이지. 난 열심히(Driven) 살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계속 나 자신을 채찍질할거야.(Keep pushing myself)

난  절대 남이 내 인생의 주도권을 쥐게 하지 않을거야. 내 남편, 내 부모님, 내 자식이 내 삶과 행복을 결정하는 상황이 되길 원하지 않아. 난 내 인생과 행복에 책임감을 갖고 싶어.

7. 돈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돈은 물론 중요하지. 돈에 속박되면 자유가 없어져. 즉 어느 정도는 있어야 자유를 얻을 수 있지. 필요조건이랄까.

그러나 절대로 성공이나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야. 오히려 일정수준 이상이 되면 반비례하기도 해. 난 정말 수많은 ‘불행한’ 백만장자를 봤어.

난 매년 내가 쓰는 돈보다 많은 돈을 벌고 싶어. 그러나 돈이 절대 내 인생의 우선순위나 무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중요한 조건은 아니야. 내가 매우 부자로 보일 수 있지만 내 친구들에 비하면 난 평균 이하지. 그래도 괜찮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은 있지만 난 내게 더 큰 의미와 즐거움 주는 선택을 계속 해 나갈거야.

8. 행복에 대하여

몇년전에 개인적으로 꽤 아픈 일을 겪었어. 그리고 나서 행복에 대해 정말 더 많은 생각을 하게됐지. 오죽했으면 딸들이 “엄마, 제발 행복이 어쩌고 저쩌고 책좀 그만봐. 궁상맞어!” 라고 맨날 나를 구박했다니까 ^^

‘행복의 가정(Happiness Hypothesis)’이라는 책의 이야기가 그 중 가장 와 닿았어. 행복은 의미있는 일과 의미있는 인간관계(Meaningful work, Meaningful Relationship)에서 온다고 그 책은 이야기하고 있어. 난 너무 맞다고 봐.

난 매일아침 일어나서 일하러 가는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일을 찾아서 하고 살거야. 그리고 결국엔 다 사람이야. 주위를 둘어봐봐. 어떤 사람 다섯명이 너를 가장 의미있께 만들어주지? 난 항상 생각해.

난 계속 사람들을 알아갈거야. (I will keep collecting people). 나이나 인종, 성별 이런건 중요하지 않아. 얼마나 서로 의미가 있느냐, 서로에게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느냐. 이런게 중요해. 내 시간은 항상 열려있고 내 이메일도 항상 열려있어. 예를 들면 난 거의 매일아침에 우리집 개를 데리고 산책을 가는데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그 시간을 항상 열어놔. 그 시간을 통해 한달에 새로운 사람 다섯에서 열명은 만나게 되지. 스탠포드에서 수업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정말 멋진 학생들을 만나기 위함이야. 이백명 가까운 학생중에 매학기 한 다섯명 정도 남는거 같아. 정말 꾸준히 연락하고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그만큼 열심히 사는 친구는 생각보다 그다지 많지 않아. 나한테 꾸준히 예의를 갖춰서 진심으로 이메일쓰고 접근하고 (백산 너처럼 ^^) 그런 사람도 생각보다 많지 않아. 생각보다 그게 참 어려운 일임을 내가 너무 잘 알기에 그런 사람을 절대로 모른 척 할 수 없어. 줄 수 있는 합당한 도움은 항상 주려고 노력하지. 나로서도 고마운 일이야. 그런게 내 행복이지.

6. 그녀가 육성으로 들려주는 인간관계 이야기

상당부분은 위에 이미 소개되어 있는 이야기와 겹치지만 그녀의 얼굴이 궁금하고 육성이 궁금한 사람을 위해 아래 그녀가 스탠포드 MBA에 수년전에 와서 직접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동영상, 그리고 주요 내용을 첨부한다. 참고로 이당시 그녀는 살빠지는 음악(Skinny songs)의 창업자이자 CEO였다.

그녀는 한없이 멋있고 높아보이다가도 또 만나면 옆집 아줌마 같다. 자신의 아픔과 어려움을 솔직하게 공유할 줄 알고,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길을 열어놓으며, 진심과 따뜻함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면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 곁에 있는게 아닐까. 앞으로도 간혹 안부를 여쭈며, 재밌는 기사거리가 있거나, 내가 드릴 수 있는게 있으면 뭐든 드리며 정과 관계를 쌓아가고 싶다. 그러다가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여쭈면 또 몇시간만에 겉치장이라곤 하나 없는 짧은 이메일로 내게 답을 줄것을 안다. 그게 그녀의 일관성(consistency)이고 퍼포먼스(performance)이며 나와 세상을 향한 사랑임을 알기에 나에겐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도 소중하다.

 

1. 네트워크의 구루로 알려져 있는데요, 실제로 그렇게 쌓인 네트워크가 성공에 도움이 되던가요?

내 딸이 이야기하는데 내게는 두가지 일이 있죠. 가짜 일과 진짜 일. (웃음) 가짜일은 지금 하고 있는 살빠지는 음악(skinny song) 회사 일이에요. 여기서 내 네트워크는 다른거 보다 나의 신용을 이용해서 자금을 조달하고 이런쪽에서 도움이 됐죠. 진짜일은 수개 기업의 사외이사직을 겸직하고 있는데 이 직업을 가진 것과 역할을 수행하는데에는 네트워크가 정말 절대적이었죠. 기업 사외이사를 하고 싶다고 맘먹고 나서 이메일을 150통을 썼다니까요. 나 여기 있다고. 나 그런일 하고 싶고 할 수 있다고. 참 공부 많이하고 진심어린 접근을 했어요. 그게 통한듯 해요.

2. 네트워킹이 특히나 어려운 내성적인 학생들, 후배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나 확실히 이야기하고 싶은건 나라고 그게 항상 즐겁고 쉬운건 아니라는 거에요. 나는 분명 말하는거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갑자기 어디 이벤트가서 모르는 사람을 다 알고 오는게 즐거움이고 목적이고 그런 이상한 사람은 아니에요. 나도 어떤 직업적인 걸 떠나서 진짜 친구 많이 있어요. (웃음).중요한 것은 모두를 만나는게 아니라 의미있는 관계를 만드는 거고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는 거죠. 그럴려면 숙제를 해야되요.

생각해봐요. 작게는 어디 밥먹으로 갈때 부터 크게는 어디 컨퍼런스를 갈 때, 미리 누가 오는지 알아보고 그 중 누가 나랑 이야기하면 서로 좋을지 재밌을지 연구해서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주제로 접근한다면 누가 싫어하겠어요. 스토킹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공부, 숙제, 이건 정말 필수적인 거예요.

시대는 인터넷 시대고 관계를 맺는 방법은 정말 무궁무진해요. 이메일을 쓸 수도 있고 쪽지를 보낼 수도 있고 쿠폰을 선물할 수도 있죠. 꼭 얼굴보고 말 잘해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는건 아니라고 봐요.

마지막으로 의미있는 관계는 무언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같이 노력하는 과정에서 가장 잘 생겨날 수 있다고 봐요. 그냥 어디가서 펜팔을 맺자고 하거나, 명함을 주고 받거나, 페이스북 친구가 되자고 하거나 이런건 정말 의미없고 바보같은 거예요. 서로 바쁜사람끼리 그런 식으로 무슨 할말이 있겠어요. 갑자기 쉽게 관계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착각이에요.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고 스토킹하는 것도 정말 금물이에요. 어떤 공동의 목표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저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그런걸 생각해서 같이 노력하다보면 관계가 자연스레 쌓여가는 거라고 봐요.

3. 멘토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

난 멘토십을 두가지 방법으로 찾고 만들어가요. 첫째는 일을 통해서예요. 서로 신뢰와 존경을 쌓아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멘토-멘티 관계가 생겨나죠. 둘째는 어떤 접점이 될 수 있는 조직의 장이나 연락담당 역할 같은걸 맡으면서 부터예요. 이런 일은 거의 대부분 정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돈은 안되고 힘이 들죠. 그러나 정말 많은 관계, 네트워크를 제공해줘요. 당신의 존재(presence)가 당신이 어떤 회사에 속해있을 때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크게 알려질 거예요.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훨씬 잘 알 수 있죠. 적극 권장해요.

4. MBA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학교다닐때 같은 때가 없어요. 학생때는 누구에게나 접근할 수 있고 누구나 여러분의 이메일에 답해줄 거예요. 십분 활용하세요. 또 특히 주위 친구, 선후배들에게 잘하세요. 그런 사람들이 없어요. 평생 가는 사람들이에요.

5. 이메일 쓰는 노하우가 있으신지요?

난 이메일 쓰는 것 진짜 좋아해요. 사실 너무 중독성이 강해서 이메일을 어느 시간을 정해놓고 그때만 쓰고 보려고 노력중이에요.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이런건 안해요.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 하기로 결정했어요. 다른 소셜 미디어는 도저히 다 관리할 여력이 안되요.

6. 케이스에서 일관성과 퍼포먼스를 강조했는데 실제로도 그러신가요?

예, 일관성(consistency) 이란 내게 있어서 갑작스러움(no randomness) 없이 순수하고 진실(genuine)하게 한결같이 커뮤니케이션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 알게되죠. 그게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데 도움을 줘요. 즉 이제는 사람들이 제가 아무 인사없이 용건만 써도 충분히 저를 이해하는 거죠. 빌게이츠같은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전 절대로 그 누구, 어떤 회사도 게이츠한테 개인적으로 부탁하지 않아요. 그냥 절대로 무조건 안해요. 그리고 저 자신도 저랑 같이 일해본 사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지 않는것을 원칙으로 해요. 이런 원칙들을 지켜가는건 제 삶도 훨씬 쉽게 만들어주고 저의 브랜드를 만들어주죠. 인간관계에서 지킬 것을 지키지 않으면 신뢰가 무너지는건 순식간이에요.

퍼포먼스도 정말 중요하죠. 전 뭔가 엄청난걸 해줄 것처럼 했다가 발을 빼기 보다는 항상 상대방의 기대치보다 조금 더 도움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7.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난 사람들끼리 연결시켜주고 흥미롭고 재밌는 사람을 만나는걸 진심으로 즐겨요. 인간관계는 노력이 필요해요. 미리 숙제를 하고 공부를 가서 뭔가 할 말(agenda)을 가지고 접근할 때 정말 관계가 쌓일 수 있죠. 이건 절대 어디가지 않아요. 직업을 구할때도 마찬가지에요. 아무리 서로 궁합이 잘맞고 해도 소용없어요. 회사에 접근하면서 기업공개 보고서나 연간 보고서한번 안 읽고 가거나 누군가와 만날 때 그사람 이름과 어떤 데 관심있는지 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절대 관계를 만들 수 없죠. 명심하세요. 아무리 잘났다고 사람들과 진심어린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는걸. “Don’t assume your talent can carry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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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롤링(Carl Rohling)에게 듣는 인터넷 라디오 TuneIn의 성공 스토리

인터넷 라디오 TuneIn(튠인). 지난 8월 6일, General Catalyst Partners가 리드하는 $16M(약 180억원)의 펀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매달 4천만명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번 펀딩에는 구글 벤처스 및 저명한 실리콘밸리 벤처 캐피털인 시콰이어 캐피털(Sequoia Capital)도 참여했는데, 시콰이어 캐피털은 이전 라운드에서 이미 $6M의 투자를 한 바 있다. 그 덕분인지 요즘 TuneIn 광고가 많이 보인다. 고속도로 101(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를 잇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도로)을 타고 가다 보면 길가에서 TuneIn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지난 7월 24일에는 테슬라의 새로운 모델인 Model S에 튠인을 탑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인터넷 라디오, TuneIn(튠인)

TuneIn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약 1년 반 전부터였다. 원래 지인을 통해 처음 들었는데, 작년 여름에는 이 회사에서 거의 매달 BBQ를 주최하길래 거기 갔다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처음엔 인터넷 라디오라길래 사실 좀 시시하게 생각했다. 5년 전 Winamp가 MP3 플레이어 중 가장 있기있었던 시절에 인기가 있던 게 인터넷 라디오였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iTunes에서 음악을 사고 Pandora Radio로 개인 취향에 최적화된 음악을 들으며 Spotify로 친구들이 듣는 음악을 발견하는 시대에 라디오라니? 시대를 역행하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누가 과연 스마트폰으로 라디오를 듣나 했다.

그러던 중  몇 달 전의 일이다. 미국 NBA계에 제레미 린이 등장했다. 당시에 열심히 경기를 따라가던 때라 제레미 린이 뉴욕에서 경기하는 것을 중계로 듣고 싶었으나 지역 라디오에서는 중계하는 곳이 없었다. TuneIn에서 Jeremy Lin이라고 검색해 봤다. 그랬더니 즉시 뉴욕 지역 라디오에서 뉴욕 닉스의 경기를 중계하는 라디오 스테이션이 나타났다. 이를 클릭했더니 바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스포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앱이 상당히 유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TuneIn에서 Jeremy Lin을 검색한 결과

현재 뉴욕에 거주중인 TuneIn의 사업 개발 총 책임자, Carl Rohling(LinkedIn)이 마침 팔로 알토 본사에 방문했기에 그를 만나러 갔다. 하수 배관 회사(Plumbing & Heating)를 그대로 쓰고 있는 사무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앞에서 봐서는 아주 작은 규모인가보다 했는데 안쪽으로 꽤 큰 공간이 있었다.

팔로 알토에 위치한 TuneIn 본사. 원래 하수 & 배관 회사(Plumbing)였던 사무실을 쓰고 있다.

TuneIn 사무실 내부

칼 롤링 (Carl Rohling), TuneIn에서 사업 개발 및 제휴를 담당하고 있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이다.

Sungmoon: 간략하게 지금까지 온 길을 소개해주세요.

Carl: 법대를 졸업하고 1996년에 변호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이 되자, 수많은 Tech 회사들이 IPO를 하기 시작하더군요. 정신 없는 시기였죠. 재미있었어요. 하루 아침에 벼락 부자가 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다가 Tech 회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러던 중 제가 맡았던 회사 중 하나인 Portal Wave에서 저를 사업 개발 담당자로 고용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로펌에서 일하다가 기업으로 옮긴다는 것은 진로를 역행하는 결정이었고, 게다가 대기업도 아닌 스타트업인지라 연봉도 많이 희생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어보여서 한 번 해보기로 했지요. 그것이 전환점이 되었어요. 그 이후에 Sonicblue, Creative Labs, PassAlong Networks 등의 테크놀러지 회사에서 사업 개발 이사로 경험을 쌓다가 RadioTime(훗날 TuneIn으로 이름이 바뀜)의 창업자인 Bill Moore를 만났습니다. Bill의 아이디어는 라디오를 위한 Tivo(주: TV에서 방송되는 내용을 예약 녹화하고, 일시 정지시킬 수 있게 해주는 기기)였어요. Tivo가 성공하는 것을 목격했고, 이런 것이 라디오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재미있었어요. TV는 언제 어떤 프로그램이 시작되는지 알 수 있는데 라디오는 그런 게 없잖아요? 라디오를 위한 프로그램 가이드, 그래서 원하는 방송을 검색할 수 있고, 예약 녹음도 할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곧 팀에 합류했고 그 이후 여기까지 왔습니다.

Sungmoon: 본사는 팔로 알토에 있는데 뉴욕에서 일하고 있네요?

Carl: 사실 캘리포니아에서 잠시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뉴욕이 좋아 다시 뉴욕으로 옮겼어요. 뉴욕엔 다양성이 있어요. 물론 이 곳에도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지만, 뉴욕에 비교할 수 없죠. 뉴욕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쯤은 들르는 곳이에요. 특히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일로 방문하는 곳이지요. 카페에 앉아 있기만 해도 다른 나라와 도시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요. 한 번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가 친해졌는데, 몇 달 후에 그 사람이 프랑스로 돌아간 이후에 파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저희 가족을 초대했어요. 그런 일이 수없이 일어나는 곳이 뉴욕이고, 저는 그런 뉴욕이 좋습니다.

Sungmoon: TuneIn 이야기를 해 보죠. 이걸 써보면서 어떻게 구현했는지 궁금했어요.

Carl: 사실 라디오 스트리밍이 핵심 기술은 아니에요. 요즘은 대부분의 방송국에서 스트리밍용 URL을 제공해요. 그런 것을 모두 모아서 제공하는 서비스들도 있지요. 라디오 프로그램을 데이터베이스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검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희 기술의 핵심이죠. 예를 들어, Rhianna의 노래를 듣고 싶으면 그 이름으로 검색하면 됩니다. 그러면 지금 그 가수의 노래가 막 시작된 라디오 방송국을 찾아줍니다. 최신곡을 듣고 싶을 때 특히 유용해요. 최신곡의 경우 수많은 방송국에서 계속해서 틀어주거든요.

Sungmoon: 저는 사실 회사의 역사가 이렇게 길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2, 3년쯤 된 스타트업이겠거니 했거든요.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죠? 회사의 전환기라고 하면 언제인가요?

Carl: 앞서 말씀드렸듯, 원래 회사 이름은 RadioTime이었습니다. 2002년에 회사가 설립됐어요. 제가 합류한 것은 2006년이었구요.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기 훨씬 전이지요. 저희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고, 각 방송사와 계약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에 하드웨어 회사와 계약해서 ‘인터넷 라디오’가 세상에 나오도록 하는 것이 사업 모델이었습니다. 여러 오디오 회사와 계약했죠. 인터넷 라디오가 팔릴 때마다 저희에게 로열티를 주는 모델이었어요. 어느 정도 사업 모델은 되었지만 큰 돈이 될 정도는 아니었죠.

TuneIn의 전신인 RadioTime의 기술이 탑재된 인터넷 라디오들

인터넷 라디오이므로 이와 같이 랜선을 꽂아야 한다.

라디오, DVD 플레이어, 텔레비젼 등 수많은 기기에 저희 기술이 탑재되었지만 큰 히트를 친 제품은 많지 않았어요. 한 두가지 제품은 히트를 쳤지요.

그러다가, 저희가 가진 API를 무료로 오픈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개발자들이 저희 API를 이용해서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한 개발자가 만든 TuneIn Radio이라는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이 앱스토어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을 목격했어요. 그 회사를 인수했죠. 그것이 저희 회사의 전환점이었어요.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등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용자가 급격히 늘었어요. TuneIn Radio를 처음 만들었던 개발자는 1년여 정도 있다가 회사를 나가 또 다른 것을 만들고 있구요.

지금은 많은 방송국과 파트너십을 맺었고, 전 세계의 방송을 검색하고 들을 수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 자국의 라디오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 다른 도시에 가서 자신의 도시에 있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장거리 운전을 하는 사람들 등에게 TuneIn은 매우 적합한 서비스죠. 지금도 TuneIn에 새로운 기능을 계속해서 추가하고 있어요. TuneIn의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 흥분됩니다.

TuenIn 을 이용하면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한국 라디오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

인터넷 라디오 TuneIn, 이제 나도 고객이 되었다. 1월 20일에 3천만명의 유저가 사용하고 있다고 발표한 후 불과 반년만에 4천만명이 사용하는 서비스가 되었고, 이 숫자는 1년 전 이용자 수의 두 배가 넘는다. 사용자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포착한 것이다.

유투브, 판도라 등 인터넷 기반 서비스의 인기와 함께 사실 많은 라디오 방송국들은 힘을 잃었다. TuneIn의 등장이 그것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한 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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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먼 펀드의 창업자 재클린 노보그라츠가 들려주는 삶의 의미

스탠포드 MBA 지원 에세이에서, 내 인생의 멘토이며,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언급한 사람이 둘 있다. (물론 멘토는 정말 많지만 짧은 에세이 안에 언급할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한 분은 내게 추천서를 써준 현 OECD의 허경욱 대사님이며, 그리고 다른 한 분은 아큐먼 펀드(Acumen Fund)의 창업자이자 현 대표인 재클린 노보그라츠(Jacqueline Novogratz)이다. 정말 놀랍게도 내게 직접 스탠포드 MBA로 오라며 메일을 주기도 했고, 학교에서도 두 번 만난 이후, 가끔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인생의 지혜를 여쭙고 있다. 지금은 비록 내가 직접적으로 관련된 길을 가지는 않지만 그저 사시는 모습만으로도 내겐 항상 영감과 감동을 주는, 내 마음속의 영원한 멘토 중 한 명이다.

재클린이 내게 준 감동의 깜짝 이메일들, 내 인생의 보물과도 같다.

얼마 전에 재클린이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을 방문해서 학생들과 대담을 나누며 영리와 비영리, 사조직과 공조직 중 어느 곳을 가야하는지,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 지와 같은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는데, 내 인생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데에 큰 영감을 주었기에 그 감동을 나누고자 이 글을 시작한다.

“여성과 경영” 클럽에서 주관한 재클린과의 대담

아큐먼 펀드(Acumen Fund)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극빈층 이웃들을 상대로 건강관리 서비스, 깨끗한 물,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모기장, 주택 등을 공급하는 기업들에 투자하는 사회적 목적을 위한 투자, 즉 임팩트 인베스팅(Impact Investing)을 일으킨 선두주자 중 하나이다. 단순히 극빈층 지역의 문제를 도와주는데 그치는 원조 공여와는 달리, 아큐먼 펀드를 비롯한 임팩트 인베스팅 모델은 지역주민이 중심이 된 기업에 투자하면서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실제로 이들 기업이 실질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경영기법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그녀는 2008년 포춘지가 선정한 아름다운 얼굴 8인 중 혁신가로 선정되었고, 2011년에는 세상을 구하는 혁신이라는 제목으로 포브스(Forbes)지의 표지모델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 분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블루 스웨터(The Blue Sweater)라는 책이 있는데, 지인의 추천을 통해 읽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고 감동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내게 스탠포드 MBA에 진학하고 싶다는 강한 꿈도 심어줬다.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갈구하는 분이라면 정말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나와 있고 원문은 아마존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다. (난 둘 다 읽었고, MBA 에세이를 쓰는 데에도 큰 참고가 되었다. 영어 원문도 워낙 쉽고 와닿게 써 있어서 영어책이 어려우신 분들께도 도전을 권하고 싶다. 역시 잘쓴 글은 어려운 단어나 표현으로 포장한 글이 아니라는걸 다시한번 느꼈다.)

The Blue Sweater 책 표지

책 제목이 ‘블루 스웨터’인 이유가 재미있다. 재클린이 15살 때 파란색 스웨터 셔츠를 자선 단체에 기부했었는데, 10년 후에 르완다에 있을 때 자신의 파란 스웨터를 입은 아이를 만났다고 한다. 그 스웨터에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은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확인한다.
                                           [블루 스웨터 책 제목의 배경에 대해 재클린이 들려주는 이야기]

책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1부: 재클린, 아프리카로 떠나다.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학(UVA)을 졸업하고 체이스 맨해튼 은행에서 국제은행가로 근무하다가, 어릴때부터 생각해오던, 개발도상국에 도움을 주는 뭔가 뜻있는 일을 하기 위해 스물다섯에 돌연 르완다라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로 향한다. 처음에는 남미를 생각했던 그녀였다. 은행에서 브라질 출장을 다니면서 브라질에서 마이크로크레딧과 같은 비지니스를 꿈꿨지만 결국 그녀에게 찾아온 첫번째 기회는 르완다였다. 그렇게 그녀는 가족과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프리카로 향한다.

2부 첫번째 좌절, AFDB(Africa Development Bank)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살아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성공 스토리는 처음부터 없다. 순수했던 의도와는 달리 그녀는 배척당한다. 아프리카의 지식인과 미리 정착한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방식이 있었고, 갑자기 낙하산처럼 날라온 잘난 백인여성은 그들에게는 요람속에서 자란 고까운 공주님일 뿐이었다. 결국 그녀의 첫번째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그녀도 저으기 좌절한다. 주위에서는 “거봐 내가 뭐랬어” 라며 그녀에게 어서 돌아오라고 손짓한다.

3부 비영리소액대출기구 “두테렘베레”와 가난한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운 “블루 베이커리”

그러나 그녀는 좌절하지 않는다. 그녀는 르완다에 가서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고 관찰하면서 깊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르완다 여성 지도자들과 수많은 고민과 토론 끝에,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소액융자은행, “두테렘베레”를 만든다. 처음에는 르완다의 여성 지도자들이 이 아이디어가 말도 되지 않는다며 괘나 강하게 반대했지만 불굴의 노력으로 조금씩 성공 사례가 나오고 열매를 거두어간다. 그러나 내부 갈등으로 끝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더불어 “블루베이커리”라는 빵집도 만들었다. 르완다의 여성들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수줍어하거나 사업 감각이 없어 가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아주 상식적인 사업 아이디어(빵을 앉아서 파는게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배달해주고 나중에 베이커리를 만드는 것)와 훈련으로 수많은 여성들을 경영자와 사업가로 만들어 그들을 경제적으로 자립시키고 독립심을 선사한다. 책의 원문을 곱씹어보자.

The Story of the bakery was one of the human transformation that comes with being seen, being held accountable, succeeding. I had the privilege of watching the women acquire a sense of dignity once they were given tools for self-sufficiency, and I learned that language is perhaps only half the equation of how people communicate with one another. I discovered the power of creating a business with real accountability. And I learned to be myself and to laugh at myself, to share in the women’s’ success, and maybe most importantly, to listen with my heart and not just my head.

블루베이커리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사회에 나오고, 인정받고, 보살핌 받고, 그러면서 성공해가는 하나의 휴먼 드라마입니다. 전 삶의 희망을 잃고 하루하루 살아가던 이곳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자존감을 형성해 가는지 그 전 과정을 바로 옆에서 보는 특권을 누렸죠. 또 저는 언어는 사람과 사람이 의사소통하고 교감하는데 단지 절반정도에 불과하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전 진정한 책임감을 가진 비즈니스를 일으키는게 얼마나 의미있고 강력한 일인지 배웠죠. 전 항상 진정한 제 자신일 수 있는 법과, 그 여성들의 성공을 보며 저 스스로를 보고 웃는 법도 배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머리가 아닌 가슴에 귀기울일 수 있는 용기를 길렀어요.

4부 스탠포드 MBA와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

그녀는 더 체계적으로 가난을 접하고 경영을 이해하기 위해 스탠포드 MBA 프로그램에 진학한다. 스탠포드 MBA 시절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가 너무 흥미롭다.

I suddenly found myself with people who spoke my language, came to meetings on time, and made things happen. I loved the ease of it all and had never felt more privileged in my entire life.

Still, I longed for the colors of Africa, the smells of cooking over an open fire early in the morning the sight of the purple rain marching across the land. I missed the simple way that people embraced one another. I missed bargaining for everything. I missed finding beauty in everyday things. Most of all, I missed FEELING USEFUL.

전 갑자기 저와 같은 언어를 구사하고, 제 시간에 미팅에 참석하고, 일을 되게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하게 됐죠. 전 그 여유와 편안함을 사랑했고 그만큼 저 스스로가 복받았다고 느꼈던 적이 없어요.

그러나, 전 아프리카가 늘 그리웠어요. 보라색 비가 내리는 지평선을 보면서 불을 지피며 아침을 여는 그 냄새가 그리웠죠. 아프리카 사람들이 서로 껴앉고 인사하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너무 그리웠어요. 모든 물건 살때 흥정하는게 그리웠죠.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도 그리웠고요. 무엇보다도 전 스스로가 “필요로 하게 여겨지는” 그 느낌이 너무 그리웠어요.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멘토로부터 이 조언을 듣고 미국 내에서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으로 향한다.

You should focus on being more interested than interesting.

넌 “흥미있어” 지는 것 보다 스스로 더 “흥미를 느끼는” 것에 집중해야돼.

 5부 르완다 대학살이 남긴 것들, 그리고 아큐먼 펀드를 시작하다. 

그녀의 평화로운 미국생활을 종식시킨것은 “르완다 대학살” 이었다. 르완다로 돌아간 그녀는, 같이 많은 일을 했고 삶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고, 죽임을 당한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막기 위한 방법을 계속 고민한다.

2001년, 그녀는  가난을 조금 더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하게 해결하기 위해 아큐먼 펀드를 설립한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발굴한 후 참을성있는 자본 (Patient Fund) 을 투자해서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는 모델이다.
                                                                       [지난 10년간 아큐먼 펀드가 걸어온 길]

아큐먼 펀드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위 비디오를 보시고 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시기 바란다. 지난 10년간 아큐먼 펀드는 전세계 65개의 기업에 약$73 million (약 900억원)을 투자했고, 그 결과 8,600여만명의 사람의 목숨을 구하거나 도왔으며 55,000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아큐먼 펀드는 큰 재단이나 국제기구, 기업의 사회공헌 자금 등으로부터 돈을 모아 전세계 가난한 극빈지역의 중소기업 –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고 혁신적인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 – 에 투자하여 그 수익을 다시 투자자에게 환원하거나 재투자하는, 비영리 사회적 목적을 지닌 사모투자캐피털, 다시 말해 임팩트 인베스팅(Impact Investing)의 대표주자이다. 즉 사회적 목적을 이루면서도 결코 자선행사나 기부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투자를 해서 경제적인 소득(Return)을 거둔다는 이 새로운 투자의 한 줄기를 쓰고 있는 회사이다.

지난 10년간 아큐먼펀드가 이룬 성과

                                             [아큐먼 펀드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비디오]

재클린이 학생들과의 대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여기에 공유하고 싶다. 워낙 한마디 한마디가 곱씹어 볼만한 통찰력 넘치는 이야기라 원문 그대로를 한 번 느껴보기를 추천드린다. (영문 스크립트는 내가 대담자리 즉석에서 적은 것이라 문법도 많이 틀리고 문장도 완벽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다.) 한편, 그녀의 남편인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은 2001년 TED를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는 큐레이터(Curator)인데, 이들 부부는 정말 파워 커플의 삶을 살고 있지만 워낙 바쁜 관계로 둘 사이에는 아직 자녀가 없고 결혼도 상당히 늦게 했다. 아니 아마 그녀에게는 자신의 삶에서 구한 8,600만명의 사람이 모두 가족이고 자녀가 아닐까. 이런 그녀의 삶이 일과 가정의 양립, 특히 결혼과 동시에 프로페셔널 라이프의 상당부분을 포기해야 하는데에서 고민하고 있는 우리세대 여성분들께 힘이 되었으면 한다.

1. 스탠포드 MBA시절, 학업과 진로고민 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고 어떻게 인생 계획을 세우셨는지요?

I did Micro finance bank from Rwanada, I knew clearly what I want. I wasn’t the most typical student. 전 르완다에서 마이크로 파이낸스, 즉 소액 융자사업을 하다가 왔어요. 그런 일에서 이미 의미를 찾고 인생의 목표를 정해 놓은 상태였죠. 전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상당히 알고 있었어요. 다른 학생들과는 조금 달랐다고나 할까요.

2. 어떻게 에너지를 얻고 스스로를 동기부여(Motivate) 시키시는지요?

I’ve never felt successful – It drived my motivation. I’m self critical – never felt perfectly successful.  Joy of life is you feel never arrived. We’re just learning. 전 한번도 제 자신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해본적 없어요. 전 스스로에게 상당히 엄격한 편이에요. 이게 제게 계속 나아갈 힘을 줘요. 삶의 기쁨 중 하나는 절대로 도달하지 못했고 갈길이 멀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배워나가는 것일 뿐이지요.

3. 앞으로 사회에 좋은 일을 하려는 기업가-모험가에게 (social entrepreneur) – 어떤 기회가 있을까요?

Good news is everything is broken. Your age is so exciting – the best timing ever. Commercialism/Energy/Climate change/Sanitation everything is broken. This is so exiting moment. This is the moment in history for real change. 좋은 소식은, 모든게 엉망이고 망가져 있다는 거예요. 자본주의도 망가지고 있죠. 에너지 이슈도 점점 부각되고 있어요. 기후 변화, 지구 온난화 문제도 해결해야 하죠. 전세계 곳곳에 물부족, 하수 부족, 청결 문제로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문제 투성이에요. 할 수 있는게 너무 많죠. 여러분 세대는 정말 신나는 세대예요. 세상이 엉망일 수록 할 수 있는게 많은데 신나지 않아요? 최고의 타이밍이에요 인류 역사상.

4. 참을성 있는 자본(Patient capital)과 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한 투자(Impact investing) 분야가 지난 수년간 많이 발전했다고 봐요. 이쪽 분야에서 아직 어떤 도전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나요?

Now 200 firms in this area. Jp Morgan spent $4 billion. However, there are definitely challenge. 1st challenge is language. 2nd false idealism – Kauffman – strict venture 0% – it’s even hard to make money – we need patient capital 처음 10년 전엔 거의 저 혼자 시작했어요. 이제는 200여개의 기업이 있죠. JP모간은 얼마전에 자기들만 이쪽 분야에 4조원 정도를 썼다고 하는데 잘 안 믿기지만 상당히 발전했다는걸 보여주는 숫자죠.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는 너무 많아요 정말. 첫번쨰 문제는 언어 장벽이에요. 이걸 해결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죠. 두번째는 거짓된 이상주의죠. 얼마 전에 카우프만(Kauffman) 그룹은 지난 수십년간의 벤처 투자 수익률을 총괄해보면 0%라는 결과를 발표했어요. 사회적 목적 분야는 수익을 올리기가 더 어려운 분야죠. 우리는 정말 참을성 있는 자본이 필요해요.

5. 리더십에 대해서 한말씀 해주시겠어요? 아큐먼 펀드 등으로 이쪽 분야에서 리더의 길을 걷고 계신걸로 보이는데요. 

Acumen felt responsibility to build a path in leadership. We’ve learned so much about poor people and local real life insights on that. I feel great sense of responsibility. I want to build acumen as a leadership factory. 아큐먼은 리더의 길을 만들어 가야 된다는데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우리는 가난한 사람의 삶, 그 세계 로컬 사람들의 삶에 대해 정말 많은 인사이트와 지혜를 지난 10년 남짓 넘게 쌓아왔죠. 전 정말 큰 책임감을 느껴요. 그래서 전 아큐먼 펀드가 이쪽 분야의 리더를 양성하는 사관학교가 되었으면 해요. 1년 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해보고 1년 후에 정직원이 될지, 다른 곳으로 갈지 고민 해보는 Fellow Program을 운영한지도 수년이 되었어요. 그중 상당수가 여러분의 선후배죠. 이런 사람 한명 한명을 양성해 내는게 큰 보람이고 기쁨이에요.

6. 새로 기업을 만들고 일으켜 온 기업가신데 그 여정에서 느끼신 교훈을 공유해 주실수 있으신지요?

Pretty dangerous field, We need who love it. and knows one’s strength. It will take up 24 hours of your life. Make sure you have Passion – mission, and calling.  If you choose, then just start. Everything you think you know might not be true. 창업이란 상당히 무서운 분야에요. 정말 이걸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해요. 자신을 알아야 해요. 자신의 강점을. 아무나 할 수는 없다고 봐요. 그리고 하루의 24시간을 몽땅 먹어버리는 무서운 존재죠. 꼭 열정(Passion)과 미션, 콜링(Mission, calling)이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보세요. 만약에 하기로 결정했다면, 일단 그냥 시작하세요. 안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이 아닐지 몰라요.

7. 무엇이 계속 힘과 의지를 줬나요?

Age 30s was so tough. – find balance and figure out where to invest your life. But luckily, I had mentor, I had moral and work ethics. I heard from my mentor “You’ve put in your whole life there. Don’t give that up. ” – he was right. If you stay on the path, it will become your platform. KEEP WALKING. 30대는 힘든 시간이었어요. 특히나 여자로서는요. 삶의 균형을 찾고, 삶을 어디에 투자할 지 찾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죠. 그러나 전 운이 좋았어요. 제겐 멘토가 있었죠. 그리고 제겐 일과 삶에서 지켜가는 가치, 기준들이 있었어요. 제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제 멘토분이 말씀해주셨죠. “넌 니 삶 전부를 거기 쏟아왔잖아. 포기하지마. 너무 아깝잖아”. 그분이 옳았어요. 여러분 본인의 여정을 계속 하신다면, 그게 여러분의 플랫폼이 될거예요. 계속 가세요.

8. 비영리와 영리분야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주실 수 있나요? 영리분야에서 먼저 일을 배우고 비영리 분야로 가는게 맞을까요?

Knowing yourself. Where you learn the most? Stanford GSB over estimate risk. You will succeed.   여러분 스스로를 먼저 들여다 보고 잘 알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디에서 가장 내가 많이 배우고 느끼는지. 여러분은 스탠포드 MBA학생이에요. 곧잘 겁먹고 위험을 과대 평가하지만 여러분은 성공할 거예요. 그러니 어디로 가면 성공할지 걱정마시고 어디에 가면 내가 더 나다울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제가 사람을 뽑을때 정말 많이 보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실제로 만들었느냐예요. 그게 그 사람이 커리어를 위해 만든건지, 아님 정말 열정이 있어 만든것인지. 전 진정한 열정을 갖고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며 사는 사람을 찾아요. 영리 기업인 유니레버는 정말 많은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죠. 영리냐 비영리냐가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제 그 차이는 정말 희미해 졌어요.

If I were you, I will follow leader and mentor. Where I build myself, learn the most, and meet the best people. Ask yourself, Where do I shine? I don’t believe that after going through 5 years of hardship, you can certainly becomes a great people. We so often live provisionally. We will make it work and so on and on. Only true moment is now. Live in the moment, be confident, you’ll be just fine. 제가 여러분이라면, 전 그냥 리더와 멘토를 따라 가겠어요. 어디에서 내가 가장 많이 배우고, 나를 성장시키고, 최고의 사람들을 만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어디에서 내가 가장 빛나는가. 전 5년쯤 힘든 시간을 겪고 마늘 쑥 먹고 나서 갑자기 멋진 사람이 되는 그런 이야기를 믿지 않아요. 우리는 정말 즉흥적으로 사는 경우가 많죠. 우리는 결국 그 순간순간 문제를 해결해가며 앞으로 나아갈 거예요. 정말 의미있는 순간은 지금 뿐이에요. 순간을 사세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여러분은 정말 괜찮을 거예요.

 9. 어떻게 의미있는 삶, 스스로 책임을 다하는 삶을 계속 사시나요? 

Meaning and commitment is not about what you do. It’s not about doing non-profit. How do you be in the world. Are you taking time to be kind? Hold the door? We are too complex human being. You should be thinking about it. Challenging everything you take on, committing to something bigger than yourself. 의미는 결코 ‘무엇’을 하냐에서 꼭 오는건 아니라고 봐요. 즉 비영리 기관에서 좋은 일을 해야 생기는게 절대 아니라는 이야기죠. 역설적으로, 의미를 잃고 사는 사람을 가장 많이 본 산업 중 하나가 이 자원봉사 – 비영리 분야에요. 반면 주식투자하는 은행원들 중에서 삶의 의미를 충만히 누려가며 사는 사람도 참 많이 봤죠. 당신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미소 짓고 도움이 되고 하다못해 문을 열어주는 사소한 행동을 하는 여유를 지니고 사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우리는 너무도 복잡한 “인간군상”이에요. 그걸 잊지 않았으면 해요. 의미를 잃지 않으려면 하는 모든 일에 더 크게 도전하는게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가진것보다 더 큰 것에 도전하고 노력하세요.

10. 아큐먼 펀드의 미래 청사진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Government is necessary evil – you should deal with it if you want to go scale. Now I learned that it’s more than bribe, If you’re going to build scale, you need to partner with govt, it’s whole different game. 정부와 공공분야(Public sector), 국제기구 등은 저희에게 필요악이죠. 더 큰 스케일을 원한다면 반드시 상대해야 되는 존재들이에요. 이제는 그런 쪽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럴려면 정말 새로운 전략과 준비가 많이 필요하겠지요.

11. 인생의 균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조언해주실 수 있나요?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부른다고 느꼈을때, 어떻게 하지요? 

My whole life is attention between what I need to do and what I love to do. Being a woman was tough, I had incredible sense of duty for the world. We make mistake living in the world of should. Idea of balance, I don’t understand, The richest life is being integrated. My sense of balance is answering questions like, “do I feel live, do I feel fulfilled? ” I do not think that you can have rich, productive life if you don’t have guts to follow your passion. 제 인생 전체가 제가 하고 싶고 사랑하는 일과 제가 해야하는 일 사이에서의 갈등이고 고민이었어요. 여자로서 산다는건 더 어려웠죠. 전 세상을 향한 엄청난 책임감, 의무감이 있었어요. 우리는 “해야한다” 는 명제에 빠져 종종 인생의 수많은 결정에서 실수를 하곤하죠. 전 “균형”이란 개념 자체를 솔직히 이해할 수 없어요. 정말 충만한 삶은 어느 한쪽으로든 완벽하고 확실한 삶이라고 봐요. 제가 생각는 균형은 이런거예요.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지, 내가 충만함을 느끼는지” 전 스스로의 열정에 따를 용기 없이는 충만하고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12.  영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한마디 해주시겠어요?

It’s about being a truth teller. We know what it means to be real, Not thinking strategically, It’s more about be genuin. 정말 솔직하고 진실해질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순수함으로 나아가야죠.

재클린의 비전은 확고하다. 그녀는 아큐먼 펀드를 통해, 단순히 하나의 기업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성과를 넘어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업과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키며 세계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갈 리더를 만들고 양성하고 싶어한다. 1년동안 아큐먼의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그 후에 계속 회사에 남을지 다른 길을 갈지 선택할 수 있는 Fellow Program 을 거친 사람이 벌써 6년째 수십명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상당수는 나와 같이 스탠포드 MBA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새로운 커리어 분야의 리더를 계속 키워가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어가고 있다. 한국 분들 중에도 이 Fellow Program을 통해서건 다른 경로건, 아큐먼 펀드나 기타 비슷한 분야에서 일해보며 삶의 의미를 발견해 가시는 분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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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 에스트라다(Erica Estrada), 200만명이 이용하는 8달러짜리 태양광 전구를 만들다

전기가 없는 곳에 빛을 공급하는 회사, d.light

스탠포드 MBA에 오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혁신(innovation)을 실제 경험할 수 있는, 진짜 무엇인가를 만들어보는 수업을 듣고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탠포드의 디자인 스쿨 (Stanford D school) 이 있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면 알겠지만 소위 디자인을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문제를 찾고 재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공부하고 실제 적용해보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2쿼터 동안 실제로 저개발국의 특정 단체,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앞서 이야기한 디자인 사고방식(Design solution)으로 문제를 해결해서 바로 임팩트를 미치는 수업인 Design for Extreme Affordability 는 정말 말만 들어도 꿈만 같았다. 그러다가 나와 같은 1학년 학생 중에 그 수업을 듣고 성공적인 기업을 만든 후, 나중에 그 수업을 몇년간 가르쳤던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를 찾는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스탠포드에서 학부, 석사, 대학원 강의 등으로 약 10년가까이 시간을 보냈던 차라, 모든 수업과 이벤트에 다 참석하려고 여기저기 다니는 필자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정돈된 삶을 살고 있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필자의 궁금증을 조금씩 해소해주긴 했지만 정작 그녀에 대해서 정말 잘 알 수 있게 된 것은 봄방학때 같이 남아프리카 공아국으로 떠난 약 1주일 남짓의 교육 (Education) 테마의 학교 여행에서부터였다. 난 그녀의 삶의 여정이, 특히나 어떻게 그녀가 태양광으로 벌써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빛을 공급한 D light라는 회사의 창업자가 되고, 스탠포드 D school에서 강의를 하고, 혁신과 창의성으로 넘치는 길을 가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었다. 그녀의 삶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놀라웠던건 그렇게 빛나는 그녀도 내가 한국에서 보고 느끼고 접한 사람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사람이란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같이 고민해 봤으면 한다. 자신의 삶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선뜻 공유해준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날씨좋은 오후, 어렵게 그녀의 시간을 뺏은 후에 미국애들은 절대로 잘 안하는 점심+커피사기로 그녀의 환심을 살짝 사고 나서 본격적으로 용건에 들어갔다. 산 – 본인 소개를 간단히 해주시겠어요? 성장배경 같은 것 중심으로요.

(성장 배경을 빼놓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난 꼭 이 질문부터 한다. )

저희 아버지는 멕시코 출신의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교사셨어요. 사실 제 출생 비밀이 있는데, 저 한국에서 임신됐고 한국에서 태어날 뻔했어요. 아버지께서 대우와 프로젝트를 하느라 한국에서 3~4년간 있었는데 그 당시에 제가 생겼거든요. 작은 섬에서 살았다고 하시는데 섬 이름은 기억이 안나요. 태어나기 직전에 마침 한국에서의 일이 마무리가 되서 전 1983년에 캘리폴니아에서 세상의 빛을 봤죠. 그리고 나서는 대학 가기전까지 텍사스 주의 휴스턴에서 자랐어요.

어린 시절 저희 가족의 삶은 교육/음악/운동 이 세가지를 빼놓고는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어요. 교육에 대해서 항상 강조하셨죠. 음악으로 따지자면 전 피아노를 쳤고 아버지는 항상 노래를 흥얼거리셨죠. 집에서 음악이 끊이는 날이 없었어요. 매주 일요일에 가족 다같이 교회에 가서 노래를 부르곤 했죠. 운동은 저희 가족 모두가 즐겼는데, 전 기계체조(Gymnastic)을 했고 남동생 (3살연하) 는 축구를 했어요. 운동은 약간은 숫기 없었던 저와 제 동생 모두에게 사회성을 기르는데 정말 큰 도움을 줬어요.

참고로 미국 교육에선 정말 운동을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모두가 자신의 주 종목 운동을 하나 둘 씩 가지고 있고, 아이비리그에 가는 학생들 상당수도 운동 특기가 입학에 기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학교에서도 운동을 통해 체력, 사회성, 리더십, 경쟁심, 에너지 등을 기른다. 정말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자 다시 그녀의 인생이야기로 돌아가자.

저희 가정에는 몇 가지 꼭 지켜지는 가치(Value)들이 있었어요. 첫째는 열심히 일하고 사는 것이에요 (Working hard). 둘째는 발전에 대한 믿음과 갈망(Desire)이에요. 스페인어로는 GANAS라고 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중에 “Stand and Deliver“라는 영화가 있는데 빈민가 학교에서 한 교사가 학생들을 정말 잘 동기부여해서 도저히 믿기 힘든 수학 성적을 거두게 되는 이야기에요. 여기서 “꼭 바래야해. 그래야 할 수 있어. (You have to desire)”라는 이야기가 나오죠. 저희 집의 가치가 바로 그거였어요. 항상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자신감을 갖고 바라고 그렇게 교육받고 자연스럽게 체화해서 살아왔어요.

자라면서 다른 나라와 다른 세계를 많이 접한 것도 제 성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죠. 저희 아버지는 항상 정말 열심히 사셨어요. 제가 5학년일 때 아버지는 Bachtel 이라는 엔지니어 중심의 회사의 정규 사원이었고, 로스쿨 학생이었으며, 두아이와 아내를 가진 가장이었죠. 출장도 정말 잦았는데 제가 6학년때는 1년간 아버지가 있는 베네수엘라에 가서 국제 학교에 다녔어요. 이때 참 많이 성장했죠. 모든게 새로웠고, 스페인어도 익숙치 않았고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만만치 않았지만 그만큼 많이 겪고 배웠어요. 진짜 가난이 어떤건지도 처음 접하고 느끼게 됐죠. 적응하고 나서는 농구도 열심히 하고 정말 재밌게 지냈어요. 이 경험 이후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따라다녔죠, 방학때마다 남미에 갔던 것 같아요. 새로운 환경을 보고 접하고 시야를 넓히고 하는 것들이 어느새 아주 자연스러워 졌어요.

산 – 참 멋진 성장 환경이네요. 안봐도 대충 얼마나 재밌게, 생생하게 자랐을지 짐작할 것 같아요. 대학교 때는 어떠셨어요?

스탠포드는 제게 꿈의 학교였죠. 전 기계공학(Mechanical Engineering)을 전공했어요. 사실 대학시절은 상당히 힘들었어요. 학교 수업 따라가는게 정말 만만치 않았죠. 주위에 너무 우수한 친구들이 많았고요. 학교 수업이 솔직히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공부는 그리 열심히 안하고, 열심히 놀았죠. (웃음) 완벽주의를 포기하고 좀더 여유있는 성격을 기르는 시간들이었요. 이 때 파티도 많이 다니고, 지금의 제 남편도 만나고, 염색도 하고, 상당히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어요. 아 한국에도 저랑 비슷한 분들이 많다고요? (웃음)

그러다가 3학년때 제조와 디자인(Manufacturing and Design)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이 수업에서 내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꼈어요. 아 그래. 무언가 만들고, 디자인하고, 하는게 내가 평생할 일이구나. 이런 느낌을 가졌죠. 졸업이 다가오자 더 공부가 하고 싶어졌어요. 기계공학 석사를 하면서 이런 수업을 더 듣고 연구해보고 싶고 그랬죠. 사실 제가 학점이 너무 안좋아서 도저히 못갈 줄 알았는데 교수님들이 절 좋게 봐주셔서 그런지 다행히 대학원으로 진학할 수 있었어요.

제게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2006년 봄이었어요. 스탠포드 다자인 스쿨의 공개 소개 세션(Info session)에 갔다가 Jim Patell 이라는 Design for Extreme Affordability의 교수님을 만났고, 강한 인상을 받아서 지원했어요. 무언지 모르겠지만 저를 좋게봐주신 그분 덕분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그 수업을 들을 수 있었죠. 너무나 재밌었어요. 특히나 팀원과 교수님이 너무나 맘에 들었어요. 교수님은 저를 정말 많이 응원해줬어요. “너는 정말 특별한 애야. 분명 뭔가 해낼거야.” 이런 교수님의 응원에 너무도 신나서 정말 집중해서 수업을 듣고 연구하고 했죠. 저희 팀의 프로젝트는 미얀마의 극심한 가난에 빠져있는 빈곤층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었어요. 5명이 뽑혀서 방학중에 미얀마로 갔는데 제가 또 뽑혔죠. 그는 정말 멋진 멘토였어요.

산- 아 그 수업을 통해서 그 유명한 D light가 만들어진거네요. D light 탄생 배경 이야기를 좀더 해주시겠어요?

태양광을 이용한 전구

같은 제품, 불을 켠 상태

 

 

 

 

 

 

 

 

 

 

 

참고로 D light 는  태양광을 이용해 빛을 공급해주는 태양광 발전 전구를 만드는 회사다. (때로는 전등을 꽂을 수 있는 발전장치를 만들기도 한다.) 가장 싼 제품은 불과 개당 미화 8달러이며 이미 전기가 없어 밤이 되면 촛불에 의존하거나 빛이 없이 살았던 전세계의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빛을 공급했다. 극빈층(Bottom of the pyramid)을 대상으로 실제 돈을 버는 비지니스를 하면서 사회적 목적도 달성해 가는 선두기업 중 하나이며 Acumen Fund, Calvert등 다양한 Impact investing(사회적 목적의 투자)회사로부터 투자받았다.

아. 미얀마의 저희 파트너 회사가 바로 처음부터 저희와 같이 태양광 패널로 빛을 공급하는 방법을 연구한 것은 아니였어요. 처음에는 깨끗한 물을 공급해줄 수 있는 제품을 원했죠. 그러나 우리 팀은 태양광 빛에서 기회를 발견했고 그쪽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기본적 아이디어는 태양광을 이용해서 낮에 전기를 만들어서 밤에 전기가 없는 지역에 빛을 공급하는 제품을 만드는 거였어요. 두 쿼터의 수업이 끝났을 때는 아직 제품은 없고 그냥 이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작은 제품 시안만이 있었죠. 뭔가 너무 아쉬웠어요. 그때 저희 팀이 총 5명이었는데 저 말고 다른 기계공학과 대학원생 1명과 스탠포드 MBA 출신 3명이었어요 (다섯 명중 세 명은 중간에 떠났죠). 여름 방학이 끝나고 2006년 가을학기가 시작될 때 MBA에 다니는 Sam이 팀을 모았어요. 그리고 이야기했죠. “우리 해보자. 여기서 멈추긴 너무 아깝잖아. 분명 우리 제대로된걸 만들 수 있을거야. ”

Dlight 창업팀 5인, 2007년 창업당시

이 때부터는 사실 창업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과정을 겪었어요. 가족, 친지들 부터 시작해서 돈을 조금씩 모았어요. 사람들이 저희 제품을 좋아하고 응원해줬고, 팀원들도 모두 너무나 열정을 갖고 애정을 갖고 임했어요. 그러다가 벤처 캐피털에서 하는 공모전에서 우승을 하게 됐어요. 2007년 초였죠. DFJ 벤처캐피털에서 25만 달러(한화 약 3억원)를 받았어요. 이 돈은 지분 투자 이런게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상금으로 받은 것이었죠. 이쯤 되자 더이상 적당히 할 수는 없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어요. 심각한 대화가 오갔죠. 그리고 오직 100%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만이 남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전자공학과 대학원생 한명이 더해서 5명 팀으로 정식 출범했어요. 2007년 6월 법인 설립을 하고 시드 머니로 160만 달러(약 20억원)를 투자 받았어요.

2007년 여름에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이때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사실 그때 전 Lockheed Martin이라는 방어 무기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어요. 방어 무기에도 워낙 관심이 많았던 처라 참 고민이 많이 됐죠. 회사에 몇 개월만 있다가 간다고 여러번 연기하다가 결국 정식으로 못간다고 하고 D light에서 계속 일하게 됐던 순간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네요.

그렇게 그녀는 매출 50조에 달하는 우주기술, 방어기술의 첨단을 연구하는 대기업에서의 기회를 접고, D light라는 작은 신생기업에 몸을 싣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제품이 계속 발전해갔죠. 전 제품을 테스트하고 발전시키는 책임을 맡았어요. 저희 팀 전체에서 제가 이 쪽 일은 전담했죠.

우리는 미얀마를 떠나 인도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미얀마와 미국간의 통상장벽이 높아서 워낙 시장 불확실성이 크다는 투자자들의 주장이 주 이유였죠. 인도시장에 약 절반, 나머지 세계 시장에 약 절반 정도 무게를 뒀어요. 인도와 실리콘밸리를 오가며 수없이 많은 미팅을 잡고 제품을 계속 연구했죠. 다른 팀원들 몇명은 중국에 가서 제품 생산라인을 뚫는데 전력을 다했어요. 저희 제품의 핵심은 극빈층이 지불할 수 있는 낮은 가격이었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생산라인 확보는 절대적이었죠. 이건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결국 2008년 봄에 처음 제대로 된 제품이 나왔어요. 약 미화 35달러 정도 하는 제품이었죠.

인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힘들었어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죠. 인도, 캄보디아, 미얀마, 정말 전기가 안들어오는 극빈층 구석구석을 다녔어요. 그곳 사람들과 정말 하나가 되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런 과정은 너무도 보람됐지만 여자로서 힘든 점도 정말 많았어요. 지금의 남편과 장거리 연애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요. 아직도 기억나요. 인도의 한 시골지역에서 지낼 때였는데 휴지를 구할 수가 없었어요. 화장실가는게 가장 고역이었죠. 그때 결심했던것 같아요. “그래. 내가 할 역할은 했어.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2008년 5월, 약 2년간 제 모든 것을 쏟았던 D light를 그만뒀어요. 결정은 정말 힘들었어요. 가족같은 팀원들에게 도저히 이야기할 엄두가 안났죠. 그러나 결심은 확고했어요. 전 아직 어렸어요. 그리고 이미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기에, 기계공학도인 저로서는 제 역할을 어느 정도는 다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제 필요한 건 세일즈팀이지 저같은 제품 디자이너가 아니였어요. 그리고 팀은 제가 인도에 가기를 원했지만 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죠. 그래서 그만뒀어요. 예… 힘들었어요…

그리고 그녀는 스탠포드로 돌아온다. 그리고 스탠포드 디자인 스쿨의 펠로우(Fellow)로서 3년간 Design for extreme affordability를 가르친다.

D school의 한 발표대회

D school의 Fellow는 정말 매력적인 기회였어요. 약 50%의 시간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수업을 진행하는데 쓰고, 나머지 50%는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드는 데 써요. 해마다 수는 다른데 통상 약 4~5명이 Fellow가 되죠. 전 사회적 목적의 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분야를 3년간 연구했어요. 그리고 Extreme affordability 수업을 약 3년간 가르쳤어요.

Design for extreme affordability 수업은 정말 특별해요. 2쿼터간 진행되는 프로젝트 기반의 코스죠. 이제 거의 10년이 됐고  약 300명의 스탠포드 학생들이 각기 다른 분야에서 들어와 팀을 만들고 수업을 들어요. 약 11개국의 18개 파트너와 70개의 프로젝트가 지금까지 진행됐죠. 저와 교수진들은 정말 멋지고 혁신적인 파트너를 찾는데 전력을 다하죠. 정말 엄선된 파트너와 10년간 축적된 노하우, 그리고 다양한 스탠포드 학생들의 혁신적 협업이 다름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요. 약 5명이 한 팀으로 구성되고 그중 약 반 정도가 봄방학때 실제로 그 현장에 방문해요. 수업에서 경비는 다 제공해주죠. 수업이 끝난후에도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20여개 돼요. 인큐베이터가 없거나 비용을 감당히지 못해서 죽어가는 수많은 미숙아 문제를 연구하는 한 프로젝트는, 기존의 인큐베이터를 바꾸는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작은 보온 담요를 만들어서 전세계 수백만명의 미숙아의 목숨을 구했죠. Embrace가 바로 그거예요. 그 외에도 수많은 프로젝트 들이 있어요.

이 수업을 가르치는 3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세계의 가난을 체험했고 수없이 많은 창조적 혁신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봤죠. 그리고 전 가르치는걸 너무 좋아했어요. 학생들과 교감하는 것도 너무나 행복했죠. 꿈 같았던 시간들이에요.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가난을 해결하는 기업을 일으키는게, 테크놀러지 쪽에서 창업하는 것보다 쉬울까 어려울까? 그녀의 대답을 들어보자.

흠. 쉽다 어렵다 이야기하긴 어려운거 같아요. 양면이 다 있죠. 절대 쉽지만은 않아요. 그러나 이 수업에서 만들어진 약 70개의 프로젝트 중에 1/3에 달하는 20여개의 프로젝트가 기업이 되거나 계속 운영되고 있는걸 보면 또 절대 불가능한걸로 보이지도 않아요.

첫번째 비결은 서로 보완되는 능력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에요. 5명이 한 팀이 되는데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 교수진과 Teaching team이 정말 많이 고민하죠. 그리고 수업이 2쿼터간, 정말 추리고 추린 파트너와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서 이루어져요. 방학중엔 직접 그 곳에 가구요. 태생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그 니즈(Needs)에서 부터 시작하죠. 테크 스타트업 보다 어떻게 보면 훨씬 더 소비자의 진정한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에요. 그러나 정말 어려운 부분은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거죠. 돈을 벌 수 있느냐,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인데 이게 너무 어려워요. 빈곤층에 제품을 팔려면 정말 저렴하고 또 그들의 필요를 제대로 충족시켜 줘야 하거든요. 몇몇 재단에서 공여(Grant)를 받을 수 있긴하지만 결국 비지니스를 만들지 못하면 사라지고 말아요.

분명 이러한 시도는 계속 커 나갈 거예요. 지금은 MIT와 스탠포드 등 몇몇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문제는 너무 많거든요. 예. 정말 세상엔 해결해야할, 해결할 수 있는, 복받고 좀더 가진 사람들의 도움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

Extreme 수업의 장면들

Extreme 수업의 프로젝트

 

 

 

 

 

 

 

 

 

 

 

 

 

 

이쯤되자 과연 초 사이언같은 전투력을 가진 그녀와 막 무공술을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내가 왜 같은 스탠포드 MBA의 1학년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업을 듣고 있는지 영 궁금해졌다. 뭐가 부족해서 뭘 더 공부하고 싶어서 그녀는 MBA에 왔을까.

가르치는게 너무 즐거웠지만 또 제대로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수없이 많은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비즈니스를 만들어갈지 학생들과 고민하다 보니 이쪽을 좀 더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비즈니스 스쿨에 갈 결심을 했어요. 아? 백산씨 같은 친구도 사귀고 너무 멋진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냐고요? 예예. 그럼요 ㅎㅎ 제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어요.

이제 그녀는 미국의 교육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보려 하고있다. 이번 여름에는 Goalbook 이라는 Education Tech분야의 벤처기업에서 인턴십을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 이제 미국 내의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어요. 미국에도 수많은 문제가 있죠. 결혼도 했고 솔직히 계속 여행하면서 살 자신도 없고요.

제가 주목하는 분야는 교육 + IT, 즉 Ed Tech 쪽이에요. 미국은 이쪽 시장이 정말 빠르게 성장하고 있죠. 크게 보면 각종 교육 자료를 만들고 나누는 컨텐트 쪽, 서로 도와가며 더 쉽게 교육받고 더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돕는 서비스 분야, 그리고 선생님들과 학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각종  툴 Tool 들, 이렇게 나뉘는것 같아요.

그리고 증명해보이고 싶어요. 지금 디자인 하면 그냥 제품을 디자인한다는 쪽으로만 생각하잖아요. 전 그게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는 방법,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 증명해보이고 싶어요. 새롭게 문제를 보고, 혁신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보임으로써요.

한국 독자들에게 한마디요? 뭔가 원하는게 있으면 바로 하세요. 인생은 너무 짧고, 정말 어떻게 될 지 몰라요. 대학교때 염색하고 파티다니고 학교에서 어찌보면 문제아였던 제가 대학원가고, 수업에 너무 빠져들고, 실제 기업을 만들고, 다시 학교에와서 가르치고, 이런것들 하나하나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들이에요. 그냥 저는 그 순간 순간 가장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왔어요. 스스로를 믿으세요. 순간을 사세요. 한국은 그게 훨씬 힘들다고요? 힘내세요. 전세계를 돌며 수없이 많은 문제와 고통, 그리고 희망의 가능성을 보면, 세상이 얼마나 여러분들의 진정한 열정을 필요로 하는지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김우중 선생님이 남긴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라는 격언을 되새기며, 난 다시 한 번 내 친구, 나랑 동갑이지만 나보다 수십갑자 내공이 깊어보이는 이 에리카Erica란 친구의 삶을 곱씹어 본다. 열심히 일하는 부모님 밑에서 운동하며, 노래하며, 남미를 오가며 자란 어린시절. 수줍었던 소녀에서 순수하게 운동과 삶을 즐기는 청소년으로 성장하기. 대학교에 와서 진로고민, 학점고민에 머리를 싸매기 보다는 때로는 놀고 즐기며,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아기. 그리고 그걸 발견하고 그녀를 알아봐준 멘토 밑에서, 정말 집중하고 즐기고 흠뻑 빠져서 만들어낸 D light 라는 혁신적 기업. 그 경험을 전수하고 전 세계의 문제들을 접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창조적 방법을 고민하며 학생들과 교류해온 지난 3년의 시간, 그리고 새로운 분야에 새롭게 도전하며 남편과, 친구들과, 매주 토요일 오후면 자전거를 타고, 한국에서 온 호기심 많은 친구한테 인터뷰 시간도 내주고 좋은 사람도 소개해주며 지내는 나날들. 그녀는 예뻐지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거나 성형수술을 하지도 않고, 값비싼 백이나 옷에 관심을 갖지도 않고, 멋진 직장에서 많은 돈을 벌 계획을 세우지도 않고, 은퇴하고 뭐할지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세상에 있는 수많은 문제들에 어떻게 더 기여해가며 삶을 충만하게 살지를 고민하고 준비한다. 여전히 그녀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갈망 (Ganas, Desire)을 간직한채 꿈꾸며 사는 어린시절 그모습 그대로의 소녀이다. 앞으로 어떤 가치를 갖고, 어떤 삶을 살고 싶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첫째로 가족, 행복한 가족을 꾸리고 싶어요. 제겐 가족이 무엇보다도 최우선이에요. 둘째로, 항상 제가 가진 수많은 사랑과 행복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과 교류하며 살거예요. 내가 얼마나 복받았는지, 내가 얼마나 하루하루를 즐기고 살고 있는지, 그걸 끊임없이 느끼고 그로부터 삶의 의미를 얻어가는 것이 제겐 너무나 소중해요.

무슨 말이 더 필요 있겠는가. 그녀의 삶이 너무도 기대된다.

인터뷰를 마치고 에리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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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코 이머징 기술 그룹의 사업 개발 매니저, FounderSoup의 공동창업자 노범준

노범준 (Ron Bumjoon Ro)

시스코의 이머징 기술 그룹 (Emerging Technologies Group, ETG)에서 사업 개발 매니저(Business Development Manager)로 일하는 노범준씨(영어 이름 Ronald Ro.  LinkedIn, Twitter)는 요즘 바쁘다. 지금 맡은 사업부가 $100M (약 천억원)의 매출을 낼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스탠포드 대학에서 처음 시작한, 공동 창업자들을 만나게 해주는 FounderSoup이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FounderSoup은 최근 TechCrunch에서 기사화된 바 있다)

스탠포드에서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서로 만나는 가장 큰 모임, FounderSoup (출처: TechCrunch)

이머징 기술 그룹이란 시스코의 내부 창업 그룹에 해당하는데, 시스코의 미래를 먹여 살릴 Billion Dollar Business (1조원 규모 사업)를 찾아내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스코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렵고 MBA 졸업자들이 문을 가장 많이 두드리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많은 회사에서 도입해서 사용하고 있는 시스코의 원격 화상 회의 시스템(Cisco Telepresence)이 바로 이 그룹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그룹은 화상 회의 시스템을 개발한 노르웨이의 탠버그(Tandberg)를 인수하며 업계의 일인자로서 기술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시스코의 화상 회의 시스템

노범준씨는 ETG 그룹 내의 미디어 경험 및 분석 비즈니스 유닛(Media Experience and Analytics Business Unit)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 사업부는 시스코가 요즘 힘을 많이 쏟고 있는 비디오 분야 사업을 위한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시스코는 어제 약 4조 4천억원을 주고 비디오 기술 회사인 NDS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그가 시스코와 인연을 맺기 전의 과정이 재미있다. 대학교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한 그는 원래 그는 보잉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제품 기획에서 출시까지의 사이클이 너무 길다는 것을 알고 이내 관심을 잃었다고 한다.

처음 노이즈 컨트롤 부서의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그런데 2001년 당시 디자인을 시작한 드림라이너 787 모델이 지금 출시됐어요. 무려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죠. 보잉에 있는 동안 SCM(Supply Chain Management)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이 분야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졌고 박사 학위를 받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미시건 대학 산업 공학 석/박사 통합 과정에 진학했다. 거기서 그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미시건에 가서, 처음 1년은 창업을 한다며 공대 친구들 뿐 아니라 남쪽 캠퍼스에 있는 경영대 및 인문대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그러다가 프랭클 펀드 (Frankel Commercialization Fund)라는 스타트업 투자 펀드에 대해 알게 됐죠. 그 때 우리가 새로운 통계학 소프트웨어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피치했거든요. 그 일을 하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 결과로, 박사 진학 시험을 볼 준비를 하나도 못하는 바람에 박사 진학을 포기했어요. (웃음)

결국 석사만 마치고 그는 학교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국으로 간다. 삼성 SDS에서 일을 시작했다. 시스템 통합(SI) 부서에서 삼성 계열사들의 경영시스템 개발업무를 맡았는데, 이내 적성에 맞지 않는데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부서를 옮기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기술 전략팀이다. 여기서 그는 또 하나의 일을 벌인다.

저의 골은 딱 하나였어요. ‘가장 삼성이 하기에는 힘들면서 내가 재미있게 일을 해볼 수 있는 것을 만들자.’ 그래서 생각한 게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에 삼성 아일랜드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2007년에 처음 세컨드 라이프를 접하고, IBM, 오라클 등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당시 삼성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지만 한 번 추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 당시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에버랜드, 호텔신라, 삼성 전자 모바일 사업부, 디지털미디어 사업부, 제일기획 등을 돌아다니며 삼성아일랜드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3차원 인터넷 가상세계 활동’들에 대해서 발표를 했다.

전략기획실 가서 발표를 했어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요. 당시 한 임원이 발표를 듣더니, “노범준씨는 가상 세계를 믿나요?”하셨어요. 속으로 생각했죠, ‘아, 역시 안되는건가…’ 그러더니 그 분이 이내 하는 말씀이 “나는 환상 세계를 믿습니다. 한 번 해보세요.” 하시는거에요. 하하하.

곧 기획과 개발을 할 수 있는 팀원들을 모았고 세컨드 라이프에 섬을 30여개를 샀다. 거기에 유저들이 아바타로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에버랜드의 차세대 가상 라이드, 휴대폰 모양의 전시장 등을 지었다. 파격적인 프로젝트였다. 삼성 4년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고 한다.

삼성에서의 병특이 끝나면서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됐어요. 미시건에서 같이 창업했던 친구들이 프랭클 펀드의 지원을 받아 잘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프랭클 펀드 생각이 나서 그 곳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에게 연락을 했어요. 거기서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일단 MBA에 진학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미시건 겨울의 추위와 다섯달 동안 녹지 않는 생각나 고민이 됐죠. 미시건을 또 가야 하는가 (웃음).

그는 미시건 MBA에 진학했고, 이내 프랭클 펀드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스코 ETG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거기서 MBA 1학년 후 여름 인턴십을 시작했다. 인턴하는 동안 지금의 팀을 만났고, MBA 졸업 후에 시스코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시건 MBA에 있는 동안 그는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동기였을까?

제가 농구를 좋아해서 MBA에 진학할 때 저는 인생을 네 개의 쿼터로 나눠봤어요. 많은 경우 세 번째와 네 번째 쿼터에서의 크고 작은 플레이들이 승부를 결정하죠. 그리고 하프타임 때 얼마나 팀이 전략적, 체력적, 정신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느냐에 따라 후반전을 잘 시작할 수 있고 그 탄력으로 결국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지가 결정되니까요. 저는 MBA 진학을 인생의 하프타임이라고 봤고, 이 시기 동안의 제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글로 남기니까 알았던 것도 더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구요.

프랭클 펀드에서 그가 한 일은 초기 단계의 회사들을 발굴하고 투자를 심사하는 것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이었을까? 한 번은 한 팀이, “우리는 아이들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아이폰 앱을 만드는 팀입니다” 라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2008년의 일이었다.

제가 팀 리더였는데, 그 발표를 듣고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시장이 너무 작다’, ‘시장이 한계가 있다’ 였어요. 하하하. 모두 다 동의했어요. 아이폰 유저 숫자가 작았고, 그 가운데 아이가 있는 사람을 추려내면 시장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돌려보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인사이트가 부족해서 생긴 부끄러운 일이죠.

그 때 두 가지를 크게 느꼈다고 한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것,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자는 것. 그러면, 창업을 꿈꾸는 스탠포드 학생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파운더 숩(Foundersoup)은 어떻게 해서 시작했을까? 그는 항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 시스코의 그가 있던 그룹에 마이크 도시(Mike Dorsey)라는 스탠포드 MBA 학생이 인턴을 하러 왔다. 둘은 이야기하다가 ‘사람들을 연결해주자’는 비전이 일치하는 것을 느꼈고, 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다른 스탠포드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엔젤 투자자인 론 콘웨이(Ron Conway)의 아들, 로니 콘웨이(Ronny Conway)도 합류했다. 그 결과가 바로 Founder Soup이다. 지금까지 여러 번의 행사를 거치며 스탠포드의 창업 열기를 한층 더 불러왔고, 그 안에서 팀도 여럿 탄생했고, 테크크런치의 주목을 받아 기사화되기도 하였다.

스탠포드에 인큐베이터(incubator)나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는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정의하는 이그나이터(igniter)는 없었어요. 즉, 벤처캐피털에 피치하는 것이 아닌, 재능을 가진 사람들(talent)에게 하는 것이죠. 일단 스탠포드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는 더 큰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스탠포드에서 파운더숩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면서 배운 노하우를 통해 그의 비전을 미국 내 다른 학교들과 다른 나라들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근 StartWave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그의 생각을 공감하고 함께 일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꿈은 꿈으로 그치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 그가 가진 큰 비전이 현실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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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대륙 마라톤을 완주한 세계에서 가장 어린 여성, 에린 스프라그


7개 대륙 마라톤 완주 후 기념사진

  • 전세계 7개 대륙 마라톤을 완주한, 세계에서 가장 어린 여성
  • 마라톤을 통해 10만 달러(약 1억 천만원)를 모금하여 기부한 선구자
  • 행복한 가정에서, 동생 세 명을 돌보며 리더로서 자라온 첫째딸
  • 나의 개인 코치(Personal Coach). 스탠포드 MBA 내에서 나와 1시간씩 10주에 걸쳐 매번 만나서 나의 개인적 성장(Personal Development)을 도와준 내 인생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코치
  • 스탠포드 GSB 내에서 Wellness and Health Club을 만든 사람
  • 굴지의 프라이빗 에퀴티(Private Equity)이자 헷지펀드(Hedgefund)인 블랙스톤(Blackstone)에서 5년 가까이 근무했던 투자가
  • 스페셜라이즈드(Specialized, 자전거 제조회사)에서 앞으로의 커리어를 이어갈 웰빙의 전도사
  • 누구보다도 강한 정신력을 가진 불굴의 전사(Intrepid Warrior)

내가 기획하고 싶은, 세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 시리즈의 첫 인물로 주저않고 그녀를 선택한 이유였다.

산: 안녕하세요. 본인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시겠어요?

성장배경

저는 뉴욕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아버지는 형사, 살인사건 담당하는 형사셨고 어머니는 간호사셨죠. 아버지는 참 많은 재능을 타고난 분이셨고 어머니는 정말 경쟁적인 노력파였어요. 저는 적당히 좋은면만 배웠달까요. (웃음) 사형제 중 첫째로 집이 뉴욕 근처 산기슭마을로 이사가고 나서 항상 스포츠를 즐기면서 자랐어요. 축구, 야구, 농구, 등산 할 것 없이 가리지 않고 했죠. 그러다가 달리기와 사랑에 빠졌어요. 달리기는 다른 운동과는 다르게 노력한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단순하잖아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는 5km, 10km를 주로 했어요. 고등학교 달리기 팀을 이끌기도 하고, 뉴욕 주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죠.

이런 저의 달리기는 하버드 대학으로 진학하는데도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달리기 대회에서 만난 하버드 대학의 육상 코치가 저를 적극적으로 어드미션 오피스(Admission Office)에 추천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죠. 돌이켜보면 제가 하버드를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래 세가지 인것 같아요. 첫째는 학교 성적(Academic), 둘째는 운동(Sports), 셋째는 리더십 경험(Leadership experience). 고등학교 육상팀 주장과 같은 리더십 롤도 상당히 큰 역할을 해준 것 같아요.

대학생활 직장

하버드에서의 생활은 상당히 힘들었어요. 물론 행복한 일도 많았지만 제 인생 처음으로 맞는 도전의 연속이었죠. 공부 운동 할 것 없이 정말 끊임없이 실패를 거듭했는데, 그만큼 많이 배웠어요. 정말 많이 성장한 기간이었던 듯해요. 전공은 역사(History)를 선택했어요. 제가 원래 욱하는 성격이 있어서 남들이 하라고 하는건 억지로 더 안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한번도 안 해본 것을 하고 싶어 선택한 과목이 역사였는데 참 잘 한 선택인 것 같아요.

졸업하면서 블랙스톤(BlackStone)이라는 헷지펀드 회사에 취직했어요. 워낙 좁은 문인데다가 전공도 역사를 한 지라 모두가 힘들거라고 했지만, 면접 중 면접관과 정말 뭔가 통한 것을 느꼈고, 합격 소식을 들었어요. 제 가능성이 보였다고 나중에 얘기해주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약 4년 반동안 일했는데 참 즐거웠어요. 제 멘토, 상사, 팀원 모두가 정말 대단하고 똑똑하고 다들 너무도 좋은 사람이었죠.

일하면서 어떤 길을 갈까 고민을 참 많이했는데 결국 결론은 기업가 (entrepreneur)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더 새로운 도전, 안해본 도전을 해보고 싶었죠. 그래서 서부, 특히 스탠포드를 생각했어요. 동부에서만 자란 제게 서부, 그리고 실리콘 밸리의 세계는 가장 큰, 가장 해볼만한 도전의 장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스탠포드 MBA에 지원했고 여기까지 왔어요.

산: 참 인상적인 여정이군요. 마라톤을 비롯해서 스포츠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얘기를 좀 더 한다면? 

베이징 올림픽을 완주하고

예 저의 인생은 정말 달리기, 운동과 도저히 뗄 수 없죠. 제가 생각하는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모범 보이기” (lead by example)에요. 본인이 스스로 하지 않고서, 더 노력하지 않고서, 남들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이야기한다는 건 말이 안맞다고 봐요. 제게 운동은 그런 모범을 보이는 리더십을 가르쳐주고 체화시킨 존재죠.

그 전에도 육상을 했지만 마라톤을 처음 시작한 건 헤지펀드에서 일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였어요. 일단 시작하면 뭔가 큰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가는게 제 스타일인지라, 세계 전 대륙에서 마라톤을 하고 이러한 일을 널리 알려서 자선행사를 해보자는 목표를 세웠죠. 여자로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이유도 컸어요. 그리고 나서 모든 휴가를 마라톤에 쏟았어요.

그래서 웹페이지를 만들고 제 이야기를 실었는데 그게 http://intherunning.org/ 이에요. 차츰 알려지면서 참여하는 사람도 한 둘 더 생기고 기사도 많이 실리게 되고 점점 재미가 붙었죠. 결과적으로 2008년에 제가 전 7개 대륙에서 마라톤을 완주한 세계에서 가장 어린 여자로서 기록을 세웠을 때 최종적으로 약 10만 달러 정도를 모금하는데 성공했어요. 거의 모두가 소액 모금이라서 더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 돈으로 전 세계적으로 건강과 웰빙(well-being)을 타게팅(targeting)한 약 10개의 자선행사를 벌였어요.

산: 정말 대단하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이스가 있었다면요?

2010년 봄, 스탠포드 MBA합격소식을 알고 나서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자전거 하나만 들고 떠났어요. 카이로에서 케이프타운까지, 8,000 마일(약 13,000km: 서울과 부산간 거리의 30배)을 종단하는, 4개월간의 세계에서 가장 긴 자전거 경주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죠. (자세한 정보는 http://www.tourdafrique.com/) 4년 넘는 직장생활하면서 상당히 기력이 소진해 있었는데 뭔가 재충전을 하고 싶었어요. 비행기 안에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죠.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직장도 그만두고, 지금 나는 무얼하고 있는지. 참 묘하게 저 자신을 더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래 Erin. 집중하자. 내 인생의 전환점(Epic Moment)이 될 경험일거야! 이렇게 되뇌었죠.

아프리카 자전거 투어 당시

그리고 이 4개월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죠. 정말 단순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자전거에 올라서 저 자신과 자연과만 대화했죠. 그 순간 너무도 집중할 수 있었어요. 인생의 수만 가지 고민과 상념이 다 사라지고 몸이 너무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죠. 제게 있어서 건강과 웰빙(Health and Wellness)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준 시간들이었어요. 그리고 제 인생의 모토가 된 ‘불굴의 전사(Intrepid Warrior)’에 대해서도 발견한 순간이었죠.

산: Intrepid Warrior라. 그게 죠?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주시겠어요? 

 수단을 지나던 날이었어요. 전체 투어중에 가장 힘든 날이었죠. 정말 정말 힘든 루트였어요. 평지나 포장된 도로는 잘 가겠는데 비포장 산길이라 넘어지기를 반복했죠. 저 뿐만 아니라 전문 자전거인들도 그 날은 정말 고전했어요. 어떻게든 빨리 오늘의 경주를 끝내자는 마음 뿐이었죠.

포기할까 정말 수없이 고민했어요. 투어를 시작하면서 제 목표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였죠. 하루하루 정해진 레이스가 있는데 한번이라도 그걸 채우지 못하면 완주하더라도 전체 레이스를 마친 것과는 다르거든요. 그래도 10분이 멀다하고 넘어지니 정말 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름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제 마음속에서 저도 모르게 갑자기 “Intrepid Warrior (불굴의 전사)” 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너무도 생생했던 순간이라 그 때 당시의 시간,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너무도 생생히 기억나요. 정말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속으로 계속 되뇌었죠. ‘난 Intrepid Warrior다! (Erin, I am intrepid warrior!)’ 그러자 도저히 알 수 없는 힘이 샘솟았어요. 거짓말처럼 전 무적의 전사가 된 것처럼 앞으로 나아갔죠.

결국 그날 저희 그룹 전체는 레이스를 끝내지는 못했어요. 수단 군경에 의해서 단체로 캠핑장으로 이송됐죠. 결과가 어떻게 됐건 그건 제게 더이상 중요한게 아니였어요. 그날 이후로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모토가 되었죠. “Intrepid Warrior”

제가 Intrepid Warrior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메세지는, 실패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더러 그걸 즐기는 삶이에요. 우리 부모님 세대, 즉 베이비 붐 세대(Baby Boomer), 인터넷 전에 단편적이 성공을 쫓아온 세대들에게 있어서 인생과 성공이란 것은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봐요. 선형이죠. 쭉 앞으로 나아갈 뿐이죠. 한 걸음씩, 한 계단씩 올라가고 성공의 길이 정해져 있죠.

반면 Intrepid Warrior 는 정해진 길을 거부해요. 지겨워하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아요. 우리에게 인생은 선형 라인을 따라가는게 아니라 수많은 점을 찍으며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새로운 시도로 또 하나의 점을 찍고, 계속 실패하고 계속 도전하고. 그렇게 수많은 점을 찍으면서 결과적으로 회귀선을 그려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 훨씬 가파른 선이 나온다고 봐요. 재미도 있고, 도전도 되고, 결과적으로도 더 충만한 삶. 그게 Intrepid Warrior의 삶이에요.

스탠포드 MBA(GSB)에서 본인이 직접 만든 로고

스탠포드 MBA(GSB) 생활을 하면서 이 개념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조금씩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도 좋아해주고 공감해주고 같이 누려줘서 정말 고마운 마음 뿐이에요. 사람들이 이 개념에 공감해주고, Intrepid Warrior로 변모해 가는것을 보는게 제게는 정말 둘도 없는 벅찬 감동이지요.

산: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나오네요. 정신적으로 정말 성숙해 보이시던데,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그런 강함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살면서 공부, 즉 아카데믹(Academic)한 능력을 기르는 연습을 항상 하죠. Academic Learning이 마치 교육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잖아요. 감정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배움은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더 관련된 강좌도 생기고 학문도 생기고 강조되어 가는 추세인 것 같아요. 즉 감정 학습(Emotional Learning)에 대해서도 많이들 이야기가 되고 있죠. 스포츠를 하면서 육체적 학습과 훈련(Physical Learning and Training)에 대해서도 모두가 그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구요.

그러나 정신 학습과 훈련(Mental Learning and Training)에 대한 강조는 정말 부족한 것 같아요. 정신도 육체처럼, 학문처럼, 갈고 닦을 수 있고, 훈련시킬 수 있고, 보살펴줄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정신적 강함(Mental Strength)도 기르는 것이 가능하단 얘기죠. 스포츠와 정신적 건강(Mental Health), 그리고 실제 업무 성과 (professional outcome) 사이에 긍정적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어요.

정신 훈련방법. Flow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

정신 건강 및 수련을 위해서 중요한 부분 몇가지를 공유하고 싶어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신에게 도전이 되는 정도(Difficulty)와 자신의 능력(Ability)이 적절히 조화된 부분을 찾아가는 거예요. 둘 중 하나가 너무 커지면 충분히 도전이 되지 않고 지루해지거나, 너무 벅차서 포기하게 되고 말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가는 것이 핵심이에요.

실패를 해보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죠. 실패가 없다면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실패를 즐길 수 있어야죠.

웃음과 강요된 즐거움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에요. 힘든 길을 나아가려면 순간의 성공이 아닌 지속적인 재미가 필요한데 유머와 억지 웃음은 감초같은 역할이죠.

마지막으로, 돌아보기(Reflection). 지난 여정을 돌아보고 긴 호흡으로 천천히 나아갈 수 있는 미덕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전 항상 명상하고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요. 제게 훨씬 큰 힘과 에너지를 주죠.

산: 정말 성공가도만을 달려온 것 같은데 실패의 경험도 있나요?

수없이 실패했죠. 성공한 경우보다 수십배는 더 실패한거 같아요. 정말 최근에 큰 실패를 경험했어요. 바로 2012년 겨울에 있었던 일인데 전 아르헨티나의 “Aconcagua” 등반에 도전했죠. 고지가 눈앞이었어요. 정상이 보였고, 느낄 수가 있었죠. 한걸음에 닿을 듯 했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도 지쳐 있는걸 알았죠. 전 과감히 등을 돌려 내려왔어요. 분명 실패였죠. 그러나 후회는 전혀 없어요. 오히려 당당히 실패를 맞이할 수 있었던 스스로가 너무나 대견해요.

산에서 내려오고 나서 아버지께 이 실패를 바로 이야기했어요. 제게 아버지는 이런 도전의 멘토와 같은 분이죠. 아버지께서는

“그래 그럴때도 있지. 잘했어. 그러나 다음번에 다시가서 산을 정복할거지, 에린?”

“아니 아빠. 나는 다시 가지 않을거야. 난 이미 산을 느꼈어. 난 이미 도전했고 실패했어. 그걸로 됐어.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해. 반복하는것보단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너무나 많은데, 갔던 곳에 다시 가는건 너무 재미없잖아?”

제게 실패는 새로운 도전을 위한 시작이죠. 그게 Intrepid Warrior의 삶이라고 봐요.

산: 앞으로의 비전을 말씀해 이야기해주세요.

제 다음 여정은 스페셜라이즈드 Specialized 라는 자전거 만드는 회사에서 사람과 제품을 경영(People and Product Management)하는 일을 하는 거예요. 특히나 여성들이 자전거, 사이클링을 즐길 수 있도록 많이 돕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Intrepid Warrior가 되기 위해 도전하도록 돕고 싶어요. 글도 쓰고, 블로깅도 하고, 강연도 하고, 같이 운동도 하고, 같이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그러면서요.  그 이야기는 제 홈페이지, Intrepid Warrior에 실을 생각이에요. 아직은 거의 든게 없지만 앞으로 많이 채워갈테니 응원해주세요.

Intrepid Warrior 홈페이지 배경사진

산: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루에 한가지씩, 조금은 두려운 일을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너무 크게 무서운 일은 말고 조금씩 편안한 영역(Comfort Zone)를 넓혀가는 거죠. 저요? 저는 오늘 정말 안 친한 교수와 면접을 잡았어요. 하하. 좀 두렵긴 한데, 뭐 이런게 사는 재미 아니겠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에린과 비를 맞으며 같이 달리기를 했다. 갑자기 내 삶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라. 과연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런 자신감을 심어주며 살고 있는지. 한국의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그녀의 미소에서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정신적 성숙을 본다. 그녀의 여정이 정말 기대된다.

아르헨티나의 Aconcagua 등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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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파커, 한국 문화를 통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이제 한국 문화의 전도사가 되다

스탠포드대학 정치 및 커뮤니케이션 전공 대학원 1학년 스테파니(Stephanie).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약 2년 반 전인 2009년 여름이었다. 매년 여름, 스탠포드 대학에서 한국, 일본, 타이완의 대학생들을 선발해서 “미국 영어 및 문화 교류(American Language & Culture)“라는 4주짜리 프로그램을 하는데, 스테파니는 그 프로그램에서 스탠포드대 자원봉사자로서 프로그램 진행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잘 아는 후배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 후배를 데려다주었다가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정말 많았고, 당시 인기 있던 한국 가수나 드라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 잠깐 만났던 것이 인연이 되어 나도 다음 해에 그 프로그램에서 패널리스트로 참가하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그녀를 만나 안부를 서로 묻곤 했다.

최근, 스테파니를 마운틴뷰의 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녀는 이제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생이 되었고, 곧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싱가폴로 갈 예정이란다. 어떤 일이길래 싱가폴에 가느냐 물었더니, 동영상에 각 나라 말로 자막을 달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스타트업(startup)에서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로 일할 계획이란다. “비키(Viki)를 말하는건가요?” 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비키(Viki)라면 내가 잘 아는 호창성 선배가 만든 회사이고, 최근 한국과 미국의 유명 VC들로부터 약 200억원의 투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어 공부도 해서 이제 한글도 잘 읽었고, 안그래도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번 일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며 흥분해 있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 문화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졸업 후 첫 진로를 Viki로 정했을까? 궁금했다. 마운틴뷰의 한 스타벅스에서 그녀를 만났다.

성문: 간략하게 소개를 해줄래요?

스테파니: 안녕하세요? 스탠포드대를 지난 6월에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학부 때 대학원 수업을 미리 수강해놨기 때문에 보통 2년이 걸리는 대학원 과정이지만 약 6개월만 더 하면 졸업하게 됩니다.

성문: 한국 문화와 드라마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스테파니: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LA에서 학교를 다니다보니 주변에 한국계 미국인 친구들이 많았어요. 저는 미국 팝스타들을 좋아했는데, 한국계 친구들은 한국 가수나 연예인들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K-POP 콘서트에 가고 노래방에 가서 한국 노래를 부르고 하더라구요.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그렇게 좋아하나 궁금했지요. 그래서 당시에 가장 친했던 친구인, 지금은 하버드대학에 있는 글로리아 이(Gloria Eee)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저한테 웹사이트를 하나 알려줬어요. 숨피(Soompi)는 사이트인데, 거기 가니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모든 정보가 있더군요. 숨피를 통해 전에는 존재하는 지조차 몰랐던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어요.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들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거든요. 그렇게 무언가에 빠져본 적이 없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시에 저처럼 아시아인이 아닌데 한국 가수를 좋아한다고 하면 미국 친구들이 좀 이상하게 생각하곤 했죠. 남자 배우를 보고 여자같다고 놀리기도 했구요. 숨피를 통해 오프라인 모임을 주최하거나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런 모임을 통해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러다가 콘서트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처음 갔던 것이 2006년에 있었던 YG 패밀리 월드 투어였어요. 빅뱅이 그 때 공연했던 기억이 나요.

성문: 고등학교 때라 대학 입시 준비로 바빴을텐데 어떻게 그 모든 걸 할 시간이 있었나요? 게다가 스탠포드대에 입학했잖아요. 대단한걸요?

스테파니: 사실 말씀드리면 타 문화에 대한 관심 때문에 스탠포드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과, 다른 언어를 배웠다는 것, 이런 경험을 통해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거든요. 솔직히 원래는 재밌어서 했던 것뿐이었지만요 (웃음).

성문: 스탠포드의 입학담당자들이 보는 눈이 있었군요. 하하.

스테파니: 근데 입학해서 보니 학교에 저 같이 한국 문화에 관심 많고,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미국인 친구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스탠포드대학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래서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학생들을 많이 뽑은 것 같아요.

성문: 고등학교 때의 경험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요?

스테파니: 숨피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다보니 아시아인들에 대해 정말 잘 알게 됐어요. 길가다가 주변을 보면 아시아인들이 더 눈에 잘 띌 정도였죠. 아시아인들을 보면 더 반갑기도 했구요. 한편, 숨피에서는 가수 ‘비’의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썼는데, 그랬더니 사람들이 저를 한국계 미국인인이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한글로 메시지를 주고 받기도 했어요. 신비로운 경험이었죠. 나중에 스탠포드대에서 이를 주제로 한 논문을 쓰기도 했어요. 전에는 태어난 마을이나 쓰는 언어, 또는 인종에 의해 정체성이 결정된다면, 이제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정체성이 결정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긍정적인 면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선택할 수 있다는 옵션이 있다는 것은 좋은거에요. 태어난 환경에 의해서만 정체성이 결정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그러한 환경을 찾아서 선택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지요.

성문: 스탠포드대 합격 비결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스테파니: 스탠포드대학은 시험 성적 뿐 아니라 에세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특히 성장 과정이 잘 녹아들어 있는 에세이요. 저는 소극적고 자신감이 없었던 한 아이가 한국 문화를 접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했어요. 어렸을 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었거든요. 제 어머니는 백인이었고 아버지는 흑인이었어요. 그래서 외모는 흑인이었지만 저는 다른 문화 속에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었어요. 예를 들어, 흑인들만 쓰는 독특한 억양이 있거든요. 그런 억양을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제대로 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친구들이 바로 알아차리고 인정을 안해줬죠. 제가 너무 고상한 단어들을 쓴다며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제가 과연 어떤 그룹에서 가장 잘 인정받고 어울릴 수 있나 싶어서 이곳 저곳을 시도해보던 중 한국 연예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한국인 그룹에 갔는데, 한국 친구들이 저를 정말 재미있어하고 환영해줬어요. 한국계가 아닌 사람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재미있었나봐요. 제가 특정한 억양을 가지고 말하기를 기대하는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서 그들이 실망하는 것을 보는 것 보다는, 제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서 그들이 놀라며 기뻐하는 것을 보는 게 확실히 더 좋은 느낌이었죠.

성문: 비키(Viki)와는 어떻게 연결이 되었나요?

스테파니: 예전부터 비키의 팬이었고, 몇 번은 직접 자막을 달기도 했어요. 나중에 스탠포드 MBA 졸업생들이 만든 회사라는 것과, 테크크런치(TechCrunch) 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올해 봄, 한 친구가 만든 회사에 조언을 해주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Viki의 라즈믹(Razmig) 대표를 만났고, 그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연결이 됐어요.  그 분이 저한테 연락해 와서 팔로 알토에서 만났어요. 만나자마자 저한테 “당신을 고용하고 싶습니다. (We wanna hire you.)” 라고 하더군요. 깜짝 놀랐죠. 저에게 대해 들어서 알고 있었고 제가 한 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면서 싱가폴에 와서 팀을 만나보라고 했어요. 안그래도 언젠가 아시아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는 길에 싱가폴에 들러 팀을 만나보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결정을 내렸습니다. Viki에서의 저의 공식적인 타이틀은 ‘커뮤니티 매니저‘입니다. 지금은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했고, 내년 4월에 대학원을 졸업하면 풀 타임으로 거기서 일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기대되요! (I am so excited about this opportunity!)

고등학교 때 우연히 한국 팝을 접했고, 그로 인해 자신감을 찾았고,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했고, 또 이제 한국 드라마를 전 세계 사람들이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게 되어 정말 즐겁다는 스테파니, 그녀가 한국 문화의 ‘대사’로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스테파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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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성, 세계 4위의 미디어 회사 비아컴(Viacom)의 게임 사업 개발 매니저

오늘의 인터뷰, 안우성

안우성(LinkedIn, Twitter, 블로그),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년 여름이었다. UCLA Anderson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은 후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UCLA MBA를 지망하는 안우성이라고 합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에, 어떻게 이메일 주소를 알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 만나고 싶고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가 간략히 적혀 있었다.

당시에는 엔씨소프트 일본 지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메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한 달쯤 지나 한국에 방문할 일이 있으니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둘 다 일정이 바빠 7월 초, 아침 8시 반에 서울대입구역 스타벅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말쑥한 외모에 깔끔한 옷차림이 인상적이었다. 캘리포니아의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분명히 자신의 목표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훨씬 좋은 학교에 합격해서 UCLA에 안 온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까.

다시 그에게서 연락을 받은 것은 몇 달이 지나서 이듬해 1월이 되어서였다. UCLA 앤더슨 스쿨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다며, 감사의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인연을 맺었다. 몇 달이 지나 5월에 그가 LA에 도착했고, 나는 여름 인턴십을 위해 한창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학교 시작하기 전에 LA의 한 소셜 미디어 관련 스타트업에서 미리 무급 인턴십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는 학교가 시작되기도 전에 누구보다 열심히 네트워킹을 했고, 소셜 미디어도 누구보다 잘 활용했다. 학교 안에서도 다양한 리더십 역할을 맡아서 했기 때문에 이내 그의 이름은 유명해졌다. 내가 2학년 때 학생회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차기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마이클(Michael)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일이 있었는데, 그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마이클: “성문, 혹시 우성 알아?”
성문: “응. 물론 알지. 그가 앤더슨 스쿨 입학하기 전부터 알았는걸”
마이클: “나 그 친구 존경해. 사실, 우성이 한국 학생들에 대한 내 이미지를 바꿔놓았어.”
성문: “무슨 이야기야?”
마이클: “왜, 한국에서 온 학생들은 대부분 수줍어하고, 그렇게 활동적이지 않고, 더구나 리더십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아서 하는 것을 못봤거든. 그런데 우성은 너무나 열심인데다가 각종 클럽에서 리더십 역할도 맡아서 하고 있잖아. 한국 사람들이라고 다 조용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한거지.”

정말 그랬다. 그는 웬만한 미국 학생들보다도 열심히 네트워킹을 했고, 몇 달이 지나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리쿠르팅 과정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알고 보니 우성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첫 이메일에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이 있다던 그는 네트워킹과 노력을 통해 미국 사람이라도 들어가기 힘든 매출 18조원의 기업 NBC 유니버설과 매출 40조원의 기업 디즈니에서 봄, 여름 인턴십을 했고, MBA를 마친 후에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비아콤(Viacom)니켈로디언 게임 그룹(Nickelodeon Game Group)에서 사업 제휴를 담당하고 있다. 니켈로디언은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면 꼭 시청하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케이블 채널이다. 교육용 어린이 만화인 ‘탐험가 도라 (Dora the Explorer)‘가 니켈로디언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다. 10년간 장기 방영하며 미국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스폰지밥(SpongeBob)‘ 역시 니켈로디언에서 만들었다.

미국의 인기있는 교육용 어린이 만화,

그는 또한, 내가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이다. 2008년 어느날, 앤더슨 스쿨의 학생 라운지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한 말이다.

형, 블로그 시작해 보세요. 정말 많이 배울 수 있고 많이 얻을 수 있어요. 제가 했던 중 가장 보람있는 일 중 하나였어요.

그 말을 듣고 블로그를 시작했고, 그 때 그가 했던, ‘많이 배울 수 있고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토요일 점심, Burlingame 다운타운의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성문: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탐험가 도라의 목소리가 들어간 GPS 기기

제가 하는 일, 즉 비즈니스 디벨롭먼트(Business Development)의 영역은 크게 라이센싱(Licensing)과 배급(Distribution)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라이센싱이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이 팔아줘서 돈을 버는 것, 그리고 배급은 남의 것을 내가 팔아줘서 돈을 버는 것입니다. 저희 회사같이 컨텐츠를 가진 회사는 캐릭터, 게임 등의 라이센싱을 통해 주로 돈을 벌 수 있고, 그 중 저는 게임과 관련된 라이센싱을 담당합니다. 요즘 같은 경우는 스마트폰 또는 타블렛 게임에 들어가는 캐릭터 계약이 많습니다. 동시에 제가 배급 계약도 담당하는데, 니켈로디언이 미디어를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TV 채널, Nickelodeon.com, 또는 게임 포털 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채널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거나 컨텐츠를 공급하고 싶어하는 회사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과 달리 미디어 역사가 긴 미국에서는 이와 같이 IP(Intellectual Property)와 미디어 채널을 동시에 보유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디즈니 하면 대부분 미키 마우스를 먼저 떠올리고, 미키 마우스 캐릭터를 팔아 돈을 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오는 매출은 사실 크지 않습니다. Disney.com, ESPN, ABC 등 자체적으로 보유한 미디어 채널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 다음 수익원이 테마 파크, Pixar와 같은 영화사 등이지요. 결국 자신의 컨텐츠를 팔아서 돈을 벌고, 또 남의 컨텐츠를 실어줘서 돈을 벌고, 이렇게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강력합니다. 예를 또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회사가 새로운 장난감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봐요. 그리고 그 회사가 기존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 저희가 가진 캐릭터를 사용합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저희 캐릭터를 썼다면 그 장난감을 어디에 광고할 때 가장 효과가 클까요? 그 캐릭터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바로 저희 웹사이트와 TV 채널이겠지요. 그런 식으로 두 가지 계약을 할 경우 수익이 극대화됩니다. IP와 미디어를 보유한 회사만 할 수 있는 일지이요.

성문: 학부 때 전공이 건축학이었는데, 지금 전혀 다른 길로 왔네요?

제가 사실 과학고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3년동안 과학을 공부하고 나니 다른 쪽이 하고 싶어졌어요. 피를 봐야 하는 의사가 되기는 싫었고, 당시에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있고 너무 공학적이지도 않은 건축학을 공부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막상 입학해서 공부를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더군요. 당시가 IMF 직후라 주택 프로젝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설계도의 아파트만 계속 짓고 있었고, 게다가 건축이라는 분야 자체가 연륜이 필요해서 어릴 때는 뭔가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더라구요.

반면, 인터넷 분야에서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이면 즉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 관심이 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엔씨소프트에서 운 좋게 병역 특례로 일을 하기 시작했지요. 일을 해보니 정말 재미도 있고 가능성도 높은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인생의 모토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자”인데, 꼭 집을 지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말고도 온라인 공간을 통해 즐거움을 전달하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엔씨소프트에서 처음 맡은 일은 해외 온라인 게임을 수입해서 한국에서 서비스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리니지 2 팀의 다섯 번째 멤버로 합류했는데,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2003년 당시 100억원 이상을 투자해서 만든, 굉장히 덩치가 큰 프로젝트였는데, 마침내 게임이 성공적으로 런칭되어 한 달에 100억원 이상을 벌게 되었고, 온라인 게임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지요. 어린 나이였지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그런 점에서 엔씨소프트에 참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성문: 그 다음에는 일본에서 일을 했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그렇게 3년간 리니지 2 등 온라인 게임의 마케팅을 담당하던 중, 일본 지사장님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본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서 인터뷰를 했고 일본에 가게 됐습니다. 일본 지사에서는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블로그였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이런 개인 미디어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당시 일본의 전설적인 VC인 조이 이또(Joy Ito)디지털 거라지(Digital Garage)를 공동창업하고 나서 초창기 블로그 플랫폼인 무버블 타입(Movable Type), 테크노라티(Technorati) 등을 들여오며 블로그가 큰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미 2007년에 일본 사람들이 트위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저는 2007년부터 트위터를 쓰기 시작했지요. ‘오타쿠’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각 영역마다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블로그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매우 세분화된 취미를 남들에게 나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왜 그런 채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의문을 가지게 됐고, 한 번 게임 전문 블로그를 만드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일본 사람들과 일하면서 블로그를 키워갔고, 마침내 그 블로그가 일본 내에서 게임 카테고리 1등을 했습니다. 일단 그러한 미디어 채널을 가지게 되니 게임 홍보도 훨씬 쉬웠고, 유저 충성도를 관리하기도 쉬웠지요.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셜 미디어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미래가 가게 될 방향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성문: 미디어플록(Mediaflock)이라는 블로그 사이트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관리하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원래 2000년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2005년에 일본에 가서 블로그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되자, 먼저 블로그에 대해 이해를 해야겠다 싶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일본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으면서 일본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을 한국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요. 당시 가까운 친구였던 김동신(현재 파프리카 랩 CEO)에게 같이 시작하자고 했지요. 당시 한국에서는 TNC(테터 앤 컴퍼니, 후에 구글에 인수됨)의 노정석 대표님이 만든 태터 툴즈에 전문 블로거들이 생겨나고 있었고, 블로그에 달린 광고 수입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또, TNC의 김창원 공동 대표님이 일본 지사를 운영하기 위해 몇 달간 일본에 나와 있었는데, 그 분과 대화하면서 블로그에 대해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블로그를 통해 멋진 사업가들도 알게 됐고, 저와 다른 공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그 이후 보람을 느껴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성문: 엔씨소프트 일본 지사에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MBA를 결심했네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건가요?

우성: 소셜 미디어에 대해 관심을 가질수록 미래의 큰 변화(Next Big Thing)는 미국에서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라인 게임, 포털 등의 선진 서비스를 한국과 일본에서경험하고 나니, 이를 미국에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마침 아내가 USC에서 박사 과정중에 있어 LA에 가고 싶었고, UCLA를 선택했습니다. 실리콘 밸리와 할리우드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어요.

성문: 특이하게도 MBA 시작도 하기 전에 LA에 위치한 SocialVibe라는 회사에서 일을 했었네요. 어떤 계기였나요?

아내 때문에 LA에 좀 일찍 도착했습니다. 아무 일도 안하니 일주일만에 심심해지더군요. 학교 수업 시작할 때까지 뭘 할까 고민하다가, 공짜라도 좋으니 스타트업에서 한 번 일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LA지역 스타트업들이 꽤 있더군요. 무조건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이메일 주소를 찾을 수 없을 때는 webmaster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SocialVibe라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거기서 약 4개월간 인턴을 했습니다. 다행히 그 회사가 잘 커서 지금은 페이스북 공식 광고 벤더가 되었습니다. 이런 미국의 스타트업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문: 미국인들도 들어가기 힘든 디즈니에서 여름 인턴십을 했는데, 비결이 뭐였나요?

처음부터 끝까지 네트워킹의 결과였습니다. MBA 시작하기 전부터 네트워킹을 했지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었고, 사람들을 만나 저에 대해 소개하면서 피드백을 받으니 도움이 많이 되어서 피칭 연습도 할 겸 해서 계속 만났습니다. LinkedIn에서 랜덤하게 찾아서 연락하기도 했구요.

생각해보면 일주일에 한 명씩 만났었네요. 1학년 때 50명도 넘게 만났고, 그러는 과정 중에 많은 사람들과 인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작정 만났지만, 나중에는 나를 옹호해줄 멘토(Mentor)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9년 당시 잡 마켓(job market)이 안좋았기 때문에, 여기 저기 찌르는 대신 나는 더 집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해 왔던 것을 레버리지(leverage)할 수 있고, 제가 하고 싶어 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예를 들어 엔씨소프트에서의 경험도 일일이 다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할만한 경력을 간추려서 이야기했고, 전에 했던 일과 앞으로 하려는 일이 다른데 그 둘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잡 디스크립션(job description)을 자세히 보고, 제가 하는 말이 회사에서 원하는 것과 일치하도록 스토리도 만들었구요. 디즈니에서 채용 공고가 나자 그 회사의 임원들과도 네트워킹을 했고, 결국 세 명의 임원이 저를 추천해줬습니다. 입사해서 보니 해당 사업 부문(디즈니 산하 5개 사업 부문 중 하나인 인터렉티브 미디어 그룹)에 MBA 인턴이 한 명 더 있었는데, 헷지펀드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는 와튼 스쿨 출신의 미국인이었습니다. 매니저에게 저를 왜 뽑았냐고 물어봤더니 “부사장급(VP) 임원들이 추천하기에 면접을 봤는데 만나보니 추천할만한 사람이어서 채용했다”고 하더군요. 네트워킹의 승리이지요. (웃음)

디즈니에서 일하면서도 어떻게 미국 내에서 인맥을 넓힐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디즈니 타이틀을 달고 많은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덕분에 2학년 잡 써치(job search) 때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풀타임(full time) 잡은 어떻게 찾은건가요?

네트워킹을 계속 했습니다. 그런 소개가 없이는 회사에 들어가기 어려운 때였지요. 친구들과 함께 회사 방문 이벤트를 계획하기도 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인터뷰를 하기도 하구요. 사실, 지금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의외로 한 리크루터가 저를 연락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LinkedIn에서 제 경력을 보고 연락을 해왔는데, 그 때 LinkedIn의 힘을 알게 되었지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컨텐츠가 어떻게 하면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할 겁니다. 아이패드, 킨들파이어 등등 새로운 기기가 생기고 미디어가 TV에서 컴퓨터로 옮겨가고,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 안에 핵심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컨텐트(content)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것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것을 알고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요. 예를 들어, 똑같은 스타일만 즐기고 똑같은 댄스 가수 음악만 듣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스타일과 음악을 알고 즐기면 좋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호창성 대표의 viki.com은 아주 훌륭한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정말 재미있는 한국과 일본 컨텐츠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전파해주고 있잖아요.


아래는 그의 링크드인(LinkedIn) 프로필 페이지에 있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한 마디 추천사이다. 컨텐츠가 점차 중요해지는 시대에, 그가 앞으로 어떤 사업 개발을 통해 컨텐츠의 가치를 높여 나갈지 기대가 된다.

“Woosung is an exceptional business development executive. Prior to Woosung’s arrival at Nickelodeon Games, I had tried unsuccessfully for several years to close a deal with Shockwave/Nickelodeon. Shortly after Woosung joined the Nickelodeon team, he constructed deal terms that met both Nickelodeon’s needs as well as Disney’s, and thus, we were able to close the deal. He is a skilled negotiator, knowledgeable in the gaming space and a pleasure to work with.”, Elliot Solomon, Director Business Development, Disney Online Studios. June 25, 2011

“안우성은 아주 뛰어난 사업 개발 담당자이다. 그가 니켈로디언 게임즈에 합류하기 전에, 나는 몇 년동안 이 회사와 계약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입사하자마자 니켈로디언과 디즈니 모두가 만족할 만한 계약 사항을 도출했고, 그 결과 계약이 맺어질 수 있었다. 그는 노련한 협상가이고, 게임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함께 일하기에 즐거운 사람이다.” – 디즈니 온라인 게임 사업 개발 부장, 엘리언 솔로몬. 2011년 6월 25일.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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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스탠포드대에서 거왕 교수와 함께 음악과 기술의 만남을 연구하다

오지은 (페이스북 프로필) 씨를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2009년, 스탠포드 대학 내의 한인 크리스천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녀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기술을 이용해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분야였다. 나중에 자세히 물어보니, 당시에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아이폰을 이용해서 연주회를 열기도 하고 아이폰과 관련한 음악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참 신기한 분야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녀에 대해 다시 듣게 된 것은 2009년 10월의 뉴욕타임즈의 기사비디오를 통해서였다. 당시 아이폰용 ‘오카리나 앱‘과 아이패드용 ‘매직 피아노‘로 인기를 얻었던 앱을 만든 거왕(Ge Wang) 교수의 제자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첫 번째 제자라고 했다. 거왕 교수에 대해서는 에스티마님이 쓰신 ‘소리로 벽을 허문다‘ 및 조선일보의 “아이폰으로 클래식을 연주하다“에서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뉴욕타임즈 기자에게 설명하는 오지은씨

스탠포드 랩탑 오케스트라 등 아이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 기기를 이용한 콘서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동시에 박사 학위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그녀를 스탠포드 대학 앞의 유니버시티 카페(University Cafe)에서 만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패드로 연주중인 오지은씨

성문: 거왕 교수가 지금은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졌는데, 어떻게 해서 그 교수의 첫 번째 제자가 되었나요?

지은: 저는 학부를 스탠포드에서 했는데, 전공이 인지 과학(Symbolic Systems)였습니다. 이 전공에서 컴퓨터 음악(Computer Music)도 한 분야로 다루어집니다. 학부 때 ‘음악 및 음향학 컴퓨터 연구 센터 Center for Computer Research in Music and Acoustics(CCRMA)‘에서 제공하는 수업을 하나 듣게 되었는데, 원래 음악에 관심이 많은데다 연구 분야가 재미있어 보여서 이 분야에서 연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죠.

성문: 제가 보니 음악에 관심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12살 때부터 플루트 연주를 시작한 후 다양한 그룹에서 활동하고, 워싱턴 주에서 개최한 컨테스트에서 플루트 솔로로 3등을 해서 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지은: 6학년 때 처음 플룻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플룻은 제 학업 생활의 ‘완벽한 보완제’가 되어준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는 숙제를 하다가 지치면 플루트 연습을 하곤 했지요. 음악을 전공 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던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플루트 연주를 통해 다양한 음색에 귀기울이게 되었고, 사람들이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제가 경험하고 있는 음악의 아름다움과 음악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의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해 컴퓨터 음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성문: 미국에는 언제 오게 되었나요?

지은: 초등학교 5학년때 가족과 함께 워싱턴 주로 왔습니다. 거기서 고등학교 때까지 있다가 8년 전에 스탠포드에 진학하면서 이 동네로 이사왔어요. 대학원을 결정할 때에 다양한 경험을 위해 동부로 갈까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CCRMA가 박사과정을 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라고 믿었고, 또 실리콘 밸리의 특별한 이노베이션 에너지를 느끼면서 지내고 싶어서 이곳에 남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성문: 박사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앉아서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지은: 맞아요. 콘서트 기획도 하고, 남들이 전혀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시도도 하고, 때로는 청중들과 함께 음악을 맞춰보기도 하기 때문에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박사 과정은 없을 것 같아요.

성문: 거왕 교수님은 최근 어떤 일을 하셨고, 요즘 어떤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요?

지은: 모바일용 음악 앱 개발 회사 Smule을 운영하는 것 이외에,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거왕 교수는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 할 때 ‘프린스턴 랩탑 오케스트라‘를 처음 만드셨구요. 그래서 이 학교 오셔서는 ‘스탠포드 랩탑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것 뿐 아니라, 제스처를 사용해서 연주한다든가,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같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 등에 관심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제시하는 아주 튀거나 실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지원해 주셔서 랩 분위기가 매우 자유롭습니다.

성문: 이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생각하는 주제를 간략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지은: 논문은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데요, 지금까지는 모바일 뮤직 및 소셜 뮤직, 즉 모바일 기술을 사용해서 어떻게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고, 더 많이 상호 작용을 하는가를 연구했는데, 앞으로는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비디오 데이터를 분석해서 인사이트를 얻어내는 일을 해볼 생각입니다. 특히 저는 사람들의 웃음 소리에 관심이 많아요. 상황에 따라 웃음 소리가 달라지거든요. 이런 것은 실험실의 인위적인 환경에서는 관찰하거나 분석하기가 쉽지 않은데 클라우드에 있는 수많은 비디오들을 활용하면 새로운 방식의 연구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음악과 기술이 어떻게 조합될 수 있을까? 이러한 조합이 어떻게 사람이 음악을 생산하고 공유하고 소비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칠까? 앞으로 오지은씨가 하는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서 변화를 일으킬 지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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