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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Instagram), 2년만에 1조원의 회사 가치를 만들어내다

이번 한 주 내내 각종 언론에서 인스타그램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극적인 이야기인가보다. 분명 인기가 있는 앱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현재 4천만명) 이용하고 있었지만, 돈을 전혀 벌지 못하고 있는 회사였는데 2012년 4월 9일, $1 billion (1.1조원)에 페이스북에 팔린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가 전화하고 48시간만에 합의에 달했다고 하니 그 또한 극적이다. 구글이나 트위터, 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알게 되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마크의 인수 시도는 처음이 아니었다. 2011년 초에 한 번 인수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주: NYT] 하지만 창업자 케빈 스트롬(Kevin Strom)은 회사를 팔 생각이 없고 회사 확장에 주력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1년이 지난 2012년, 마크는 그 때보다 몇 배의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인스타그램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바로 전날 Baseline Ventures, Benchmark Capital 등이 $50M을 투자하고 회사 가치를 $500M (5천 5백억원)으로 책정하게 되자 인스타그램이 모바일에서 페이스북을 위협할 만큼 성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 창업자, Kevin Systrom. 출처: http://bits.blogs.nytimes.com/

인스타그램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Kevin Systrom)은 보스턴 교외에서 자랐지만 2003년에 스탠포드에 진학하면서 실리콘밸리로 이사했다. 대학교 2학년 때 대용량 사진을 사람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인 Photobox를 만들었고, 이것이 마크 저커버그의 눈에 띄어 페이스북 입사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하고 공부를 마치기로 했다.

학교에 있는 동안 트위터의 전신인 Odeo에서 인턴을 했고, 2006년에 학교를 졸업한 후 구글에서 3년을 근무했으며, 구글 출신들이 만들었고 나중에 페이스북에 인수된 Nextstop에서 일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회사를 만들려는 꿈이 있었고, 사진 공유 서비스인 Burbn을 만들었다. (인스타그램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제품명이고 회사 이름은 지금도 Burbn이다.)  2010년 1월에 한 스타트업이 주최한 파티에서 Baseline Ventures의 스티브 앤더슨을 만나 Burbn을 보여주었는데, 그가 투자에 관심을 보이자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창업을 한다. 스티브는 곧 25만 달러를 입금했고, 이어서 그 유명한 마크 안드리센(Mark Andreesseen)도 25만달러 투자했다. 브라질 출신의, 스탠포드에서 ‘신호 체계(symbolic systems)’를 전공한 마이크 크리거(Mike Krieger)가 공동 창업자로 합류했다.

둘은 사진 공유 서비스 Burbn을 개선하는 일을 하다가 기능이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되어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 아주 단순화시켜 인스타그램 (Instant + Telegram)이라는 제품을 2010년 10월 6일 아이폰 앱스토어에 올렸다. 3주만에 30만 번 다운로드되었고, 곧 저스틴 비버 등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수천만 명의 사용자가 생겼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2012년 4월 초, 마크 저커버그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그 뒤는 역사가 되었다. 트위터 창업자이자 Square CEO인 잭 도시도 이 회사를 사고 싶어했는데 마크의 전화 한 통에 빼앗겨 기분이 안좋다고 한다. 그래도 그가 아주 초기에 투자했기 때문에 수십 배 금전적 이익을 남긴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아래는 저스틴 비버가 인스타그램을 이용해서 올린 첫 사진이다. 이 때를 기점으로 유저 수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 같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무려 130만명이나 된다. 2천만명이나 되는 트위터 팔로워 숫자에 비하면 적은 수이긴 하지만.

저스틴 비버가 인스타그랩을 이용해서 올린 첫 사진. "LA 트래픽 최악이야!" 출처: http://instagr.am/p/IMhuj

하루 아침에 성공한 신데렐라 스토리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앵그리버드나 Draw Something처럼 성공 전에 수십 번의 실패를 했던 것 까지는 아니지만, 인스타그램이 갑자기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이 나오기 전과 나온 후에,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제공하는 사진 업로드/공유 서비스는 물론이고 이와 비슷한 류의 사진 필터링/공유 서비스가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PicPiz, Burstn, Path, Flickr, Shutterfly, Lockerz, PhotoAccess, Pixamid 등 뿐 아니라 Hipstamatic도  인스타그램과 아주 유사한, 인기가 많았던 앱이었다. 왜 유독 인스타그램이 다른 모든 서비스를 제치고 영광의 자리에 오른 것일까?

인스타그램 화면. 출처: http://www.toocool2betrue.com/

첫째, 심플한 유저 인터페이스이다. 모든 것을 다 빼고 오직 사진을 찍고, 필터를 입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통해 공유하는 것을 쉽게 하는데만 집중했다.

둘째, 창업자 케빈의 지도교수인 Clifford Nass가 이야기한대로, “디자인과 심리학의 승리“였다. 공동창업자인 마이크 크리거가 심리학과 언어학, 철학의 종합 학문인 신호 체계를 전공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아이콘 디자인에서 UI 디자인, 그리고 각 필터에 붙인 감각적인 이름들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셋째, 사진이 멋있게 나오게 하는 필터 효과, 그리고 그것을 받춰 준 타이밍이다. 아이폰 3 카메라도 좋았지만, 아이폰 4가 출시되면서 아이폰에서 찍은 사진 품질이 월등히 좋아했고, 이를 인스타그램의 필터를 적용해서 올리면 전문 사진가가 비싼 카메라로 찍은 것과 나란히 놓아도 지지 않을만큼 그럴 듯한 느낌을 준다.

얼마 전, 집 근처 카페에 갔다가 인스타그램으로 찍어 페이스북에서 공유했던 사진

핵심적인 성공 요소는 아닐 지 몰라도, 사진을 한 쪽으로 길게 나오게 하는 대신 정사각형으로 나오게 한 것도 정말 뛰어난 아이디어였다. 아이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 보통 옆으로 돌려서 찍게 된다. 사진이 세로로 길게 나오면 나중에 공유해서 컴퓨터에서 봤을 때 느낌이 이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매번 아이폰을 가로로 돌려 찍는 게 좀 귀찮은 것도 사실이다.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면 이런 불편이 없다. 가로로 돌리든 똑바로 세워 찍든 사진은 정사각형으로 나온다. 그래서 폰을 돌리기 귀찮은 사람들에게 어필했는지도 모르겠다.

안드로이드 버전이 출시되고 페이스북 인수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인스타그램의 유저 수는 10일 만에 3천명에서 4천만명이 되었다. 하루에 무려 백만 명씩 가입한 것이다. 그리고 직원 11명짜의 회사에 회사 가치 1.1조원이 책정되었으니, 1년 반만에 한 명당 약 1000억원의 가치를 만들어낸 셈이다. 인스타그램의 이야기는 곧 집약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성공 스토리이다. 이런 신데렐라 스토리가 더욱 더 많은 돈과 인재들을 실리콘밸리로 끌어들인다. 미국 경기가 아무리 휘청대고 유럽 경제가 암흑 속을 걸어도, 이 곳은 호황이다.

참고

Behind Instagram’s Success, Networking the Old Way,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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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Kstartup 소개

작년과 올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실리콘밸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을 많이 만났다. 이 곳에서 사업을 하려고 계획중인 분, 여기서 투자를 받으려고 하시는 분, 기존에 있던 사업을 이 곳으로 확장하려는 분 등 다양했는데, 전에 게임빌에 있을 때 미국 사업 진출을 위해 분투했던 경험과 최근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스타트업들을 만나고 관찰하며 알게 된 사례들을 통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드리고, 필요한 경우 다른 사람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와서 시도하지만 게임빌, 컴투스, 넥슨, NHN, NC Soft, Webzen 등의 게임 회사를 제외하고는 한국에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가 이 곳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케이스가 흔하지 않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서울스페이스(Seoul Space)AppCenter의 주요 멤버들이 모여 만든 KStartup에 대해 알게 되어 같이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인큐베이터가 좋은 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여기에서 소개한다. 서울 스페이스를 공동 창업한 데이빗 리(David Lee)‘구글의 진짜 힘 (Google’s Real Power)’이라는 비즈니스위크 기사를 통해 유명한데, 구글 초기 멤버 출신들의 모여 만든 투자 회사 XG Ventures의 창업 멤버이다. XG Ventures에서는 그동안 Aadvark, AppJet, Chartboost, Plusmo, Posterous, Tapulous, Twidvid 등 25개가 넘는 회사에 투자했으며 그 중 무려 10개 회사가 페이스북, 트위터, 디즈니, 그루폰, 구글 등의 회사에 성공적으로 인수되었다. 그는 현재 SK 텔레콤 벤처스의 투자 파트너로 있다. 그는 또한 폴 그래함(Paul Graham)이 만든 실리콘밸리의 가장 성공적인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Y Combinator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Limited Partner). 서울스페이스의 또 다른 공동 창업자인 리처드 민(Richard Min)에 대해서는 “서울스페이스, 한국의 실리콘밸리 될 것”이라는 이 기사에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한편 AppCenter는 아주대 컴퓨터공학과 변광준 교수와 KAIST 컴퓨터공학과 김진형 교수가 창업했으며, 컨퍼런스와 창업보육센터 등을 통해 그동안 많은 스타트업을 지원해왔다.

한국의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에 진출하고 여기에서 투자를 받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인맥인데, KStartup에는 기꺼이 유능한 창업가들을 돕고자 하는, 이 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거나 활발하게 활동하는 멘토(mentor)들이 많이 연결되어 있어 그들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회계적, 법률적 자문도 받을 수 있다.

현재 첫 번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원하는 모바일 및 인터넷 서비스, 게임 분야 스타트업들의 접수를 받고 있는데,  선정되면 100일동안 개발 공간과 멘토링을 지원하며, 초기 투자금 지원도 가능하다. 이 곳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마감은 이번 일요일(3/25)이다.

Kstartup 프로그램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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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코 이머징 기술 그룹의 사업 개발 매니저, FounderSoup의 공동창업자 노범준

노범준 (Ron Bumjoon Ro)

시스코의 이머징 기술 그룹 (Emerging Technologies Group, ETG)에서 사업 개발 매니저(Business Development Manager)로 일하는 노범준씨(영어 이름 Ronald Ro.  LinkedIn, Twitter)는 요즘 바쁘다. 지금 맡은 사업부가 $100M (약 천억원)의 매출을 낼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스탠포드 대학에서 처음 시작한, 공동 창업자들을 만나게 해주는 FounderSoup이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FounderSoup은 최근 TechCrunch에서 기사화된 바 있다)

스탠포드에서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서로 만나는 가장 큰 모임, FounderSoup (출처: TechCrunch)

이머징 기술 그룹이란 시스코의 내부 창업 그룹에 해당하는데, 시스코의 미래를 먹여 살릴 Billion Dollar Business (1조원 규모 사업)를 찾아내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스코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렵고 MBA 졸업자들이 문을 가장 많이 두드리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많은 회사에서 도입해서 사용하고 있는 시스코의 원격 화상 회의 시스템(Cisco Telepresence)이 바로 이 그룹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그룹은 화상 회의 시스템을 개발한 노르웨이의 탠버그(Tandberg)를 인수하며 업계의 일인자로서 기술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시스코의 화상 회의 시스템

노범준씨는 ETG 그룹 내의 미디어 경험 및 분석 비즈니스 유닛(Media Experience and Analytics Business Unit)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 사업부는 시스코가 요즘 힘을 많이 쏟고 있는 비디오 분야 사업을 위한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시스코는 어제 약 4조 4천억원을 주고 비디오 기술 회사인 NDS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그가 시스코와 인연을 맺기 전의 과정이 재미있다. 대학교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한 그는 원래 그는 보잉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제품 기획에서 출시까지의 사이클이 너무 길다는 것을 알고 이내 관심을 잃었다고 한다.

처음 노이즈 컨트롤 부서의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그런데 2001년 당시 디자인을 시작한 드림라이너 787 모델이 지금 출시됐어요. 무려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죠. 보잉에 있는 동안 SCM(Supply Chain Management)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이 분야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졌고 박사 학위를 받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미시건 대학 산업 공학 석/박사 통합 과정에 진학했다. 거기서 그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미시건에 가서, 처음 1년은 창업을 한다며 공대 친구들 뿐 아니라 남쪽 캠퍼스에 있는 경영대 및 인문대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그러다가 프랭클 펀드 (Frankel Commercialization Fund)라는 스타트업 투자 펀드에 대해 알게 됐죠. 그 때 우리가 새로운 통계학 소프트웨어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피치했거든요. 그 일을 하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 결과로, 박사 진학 시험을 볼 준비를 하나도 못하는 바람에 박사 진학을 포기했어요. (웃음)

결국 석사만 마치고 그는 학교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국으로 간다. 삼성 SDS에서 일을 시작했다. 시스템 통합(SI) 부서에서 삼성 계열사들의 경영시스템 개발업무를 맡았는데, 이내 적성에 맞지 않는데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부서를 옮기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기술 전략팀이다. 여기서 그는 또 하나의 일을 벌인다.

저의 골은 딱 하나였어요. ‘가장 삼성이 하기에는 힘들면서 내가 재미있게 일을 해볼 수 있는 것을 만들자.’ 그래서 생각한 게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에 삼성 아일랜드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2007년에 처음 세컨드 라이프를 접하고, IBM, 오라클 등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당시 삼성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지만 한 번 추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 당시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에버랜드, 호텔신라, 삼성 전자 모바일 사업부, 디지털미디어 사업부, 제일기획 등을 돌아다니며 삼성아일랜드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3차원 인터넷 가상세계 활동’들에 대해서 발표를 했다.

전략기획실 가서 발표를 했어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요. 당시 한 임원이 발표를 듣더니, “노범준씨는 가상 세계를 믿나요?”하셨어요. 속으로 생각했죠, ‘아, 역시 안되는건가…’ 그러더니 그 분이 이내 하는 말씀이 “나는 환상 세계를 믿습니다. 한 번 해보세요.” 하시는거에요. 하하하.

곧 기획과 개발을 할 수 있는 팀원들을 모았고 세컨드 라이프에 섬을 30여개를 샀다. 거기에 유저들이 아바타로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에버랜드의 차세대 가상 라이드, 휴대폰 모양의 전시장 등을 지었다. 파격적인 프로젝트였다. 삼성 4년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고 한다.

삼성에서의 병특이 끝나면서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됐어요. 미시건에서 같이 창업했던 친구들이 프랭클 펀드의 지원을 받아 잘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프랭클 펀드 생각이 나서 그 곳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에게 연락을 했어요. 거기서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일단 MBA에 진학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미시건 겨울의 추위와 다섯달 동안 녹지 않는 생각나 고민이 됐죠. 미시건을 또 가야 하는가 (웃음).

그는 미시건 MBA에 진학했고, 이내 프랭클 펀드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스코 ETG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거기서 MBA 1학년 후 여름 인턴십을 시작했다. 인턴하는 동안 지금의 팀을 만났고, MBA 졸업 후에 시스코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시건 MBA에 있는 동안 그는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동기였을까?

제가 농구를 좋아해서 MBA에 진학할 때 저는 인생을 네 개의 쿼터로 나눠봤어요. 많은 경우 세 번째와 네 번째 쿼터에서의 크고 작은 플레이들이 승부를 결정하죠. 그리고 하프타임 때 얼마나 팀이 전략적, 체력적, 정신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느냐에 따라 후반전을 잘 시작할 수 있고 그 탄력으로 결국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지가 결정되니까요. 저는 MBA 진학을 인생의 하프타임이라고 봤고, 이 시기 동안의 제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글로 남기니까 알았던 것도 더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구요.

프랭클 펀드에서 그가 한 일은 초기 단계의 회사들을 발굴하고 투자를 심사하는 것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이었을까? 한 번은 한 팀이, “우리는 아이들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아이폰 앱을 만드는 팀입니다” 라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2008년의 일이었다.

제가 팀 리더였는데, 그 발표를 듣고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시장이 너무 작다’, ‘시장이 한계가 있다’ 였어요. 하하하. 모두 다 동의했어요. 아이폰 유저 숫자가 작았고, 그 가운데 아이가 있는 사람을 추려내면 시장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돌려보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인사이트가 부족해서 생긴 부끄러운 일이죠.

그 때 두 가지를 크게 느꼈다고 한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것,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자는 것. 그러면, 창업을 꿈꾸는 스탠포드 학생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파운더 숩(Foundersoup)은 어떻게 해서 시작했을까? 그는 항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 시스코의 그가 있던 그룹에 마이크 도시(Mike Dorsey)라는 스탠포드 MBA 학생이 인턴을 하러 왔다. 둘은 이야기하다가 ‘사람들을 연결해주자’는 비전이 일치하는 것을 느꼈고, 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다른 스탠포드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엔젤 투자자인 론 콘웨이(Ron Conway)의 아들, 로니 콘웨이(Ronny Conway)도 합류했다. 그 결과가 바로 Founder Soup이다. 지금까지 여러 번의 행사를 거치며 스탠포드의 창업 열기를 한층 더 불러왔고, 그 안에서 팀도 여럿 탄생했고, 테크크런치의 주목을 받아 기사화되기도 하였다.

스탠포드에 인큐베이터(incubator)나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는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정의하는 이그나이터(igniter)는 없었어요. 즉, 벤처캐피털에 피치하는 것이 아닌, 재능을 가진 사람들(talent)에게 하는 것이죠. 일단 스탠포드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는 더 큰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스탠포드에서 파운더숩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면서 배운 노하우를 통해 그의 비전을 미국 내 다른 학교들과 다른 나라들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근 StartWave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그의 생각을 공감하고 함께 일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꿈은 꿈으로 그치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 그가 가진 큰 비전이 현실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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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기술 트렌드

얼마 전에 어떤 분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2012년에 실리콘밸리에서 무엇이 트렌드가 될까요?” 질문을 받고 난감했다. 매일 새로운 회사들이 나타나고, 스타트업들이 투자받고, 기존 회사들이 죽는 마당에 어떻게 2012년 한 해에 소위 ‘뜰’ 트렌드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생각을 쥐어짜봤다. 지금 뜨는 기술은 무엇이고, 무엇이 새 해에 주목을 받게 될까?

1. Big Data: 대량의 데이터 분석과 가공

똑똑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표적인 회사는 넷플릭스와 아마존이다. 데이터 처리 자체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지금은 데이터가 어느 때보다도 많이 쌓이고 있고, 이런 대량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처리하는 비용이 어느 때보다도 저렴해졌다. 그 결과로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또는 생각은 했어도 비싸서 시도조차 못했던 분량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해서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회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매일 매일 공짜로 쓰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들 – 구글 서비스들, 카카오톡, 에버노트, … – 이들은 공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공짜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 생각하고 활동하면서 나오는 정보를 회사에 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데이터가 시간에 걸쳐 쌓이면 어마어마한 양이 된다. 기존에는 IBM, 오라클(Oracle),  테라바이트(Terabyte) 등의 비싼 서비스를 이용해야했기 때문에 저장하고 처리하는데 너무 큰 비용이 들어 파일 더미에 불과했던 데이터가 이제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의미 있는 정보가 된 것이다. 이 주변에 새로운 기술과 스타트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회사가 가진 대용량의 데이터를 분석해주는 서비스를 하는 회사인 오페라 솔루션즈(Opera Solutions)는 얼마 전에 $84M (약 900억원) 의 투자를 받았고, 또 다른 분석(analytics) 회사 뮤 시그마(Mu Sigma)는 지난 12월 28일, $108M (약 12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또 얼마 전에 HP는 데이터 분석 회사인 Autonomy 를 무려 $11B (약 12조원)에 인수했다. 아래는 오늘 (1월 4일)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렸던 기사, So, What’s Your Algorithm?에 나온 그래프이다. 각 인더스트리별로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출처: So, What's Your Algorithm? (Wall Street Journal, 2012년 1월 4일)

이러한 배경에는 하둡(Hadoop) (공식 페이지위키피디아) 이라는 오픈소스 프로젝트 기술이 있다. 대용량의 데이터를 가공하는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용량’은 페타바이트 이상을 말한다. 1 페타바이트는 10의 15승 바이트, 즉 100만 기가 바이트이다. 1 기가바이트당 영화 한 편이라고 잡으면 100만개의 영화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다. 하둡은 원래 구글이 대용량 데이터를 관리하기 위해 설계한 구글 파일 시스템(GFS) 논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기술이다. 구글, 야후, 페이스북, 아마존, AOL, 바이두를 비롯한 많은 회사들이 이 기술을 채택했고[], 지난 11월에는 하둡 기술을 전파하고 서비스하는 회사 Cloudera가 $40M (약 440억원)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하둡 분산 파일 시스템(Hadoop Distributed File System, HDFS)을 이용하는 회사 중 가장 큰 데이터를 가진 곳은 페이스북이다. 지난 7월, 페이스북은 30페타바이트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 속도라면 지금은 50페타바이트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데이터이다.

‘소셜 크레딧 스코어’를 매겨주는 Klout은 또 하나의 예이다. 약 1억개의 공개된 트위터, 페이스북 프로필 데이터를 모아서 이를 기반으로 ‘소셜 명성 점수’를 매겨주는 재미있는 아이템을 가진 이 회사는 어제 클라이너 퍼킨스로부터 $30M(약 330억원)을  투자받았다고 발표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위에서 활동하고, 이제 스마트폰을 통해 데이터를 흘리고(?) 다니게 되면서, 이런 데이터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웹과 모바일 앱 등을 통해서 대량의 데이터를 축적한 회사들이, 그 데이터를 더 빠르게, 더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통해 이를 돈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2. 대중의 두뇌를 활용한 서비스들

‘대용량 데이터’와 연관 있는 주제인데, 역시 새로울 것은 없는 분야지만 이 분야에서 재미있는 회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2012년엔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사람들이 웹에서 찾은 관심있는 아이템을 뭐든지 모아 보관하는 Pinterest는 대표적인 예이다.

Pinterest 웹사이트 화면

2011년에 가장 빠르게 성장한 회사 중 하나인 Pinterest의 트래픽은 지난 6개월 동안 무려 40배가 증가했다. 아래를 보자.

Pinterest의 트래픽 증가 추세 (출처: http://techcrunch.com/2011/12/22/pinterest-40-fold/)

Pinterest는 ‘비주얼 트위터 (Visual Twitter)’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관심 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 그것이 디자이너 구두이든, 멋진 사진이든, 귀여운 강아지이든 – 웹사이트에 올릴 수 있고, 사람들은 리트윗(Retweet)과 비슷하게 리핀(Repin)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물론 라이크(Like) 하거나 댓글도 달 수 있다. 리핀이 많이 될수록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이템이라는 증거이다. Pinterest가 대규모 광고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가를 설명한 글이 지난 11월 TechCrunch에 실렸는데,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볼만하다.

비슷한 컨셉의 회사로 Stylesays가 있다. 스탠포드 석사과정 1학년 학생 두 명이서 작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사이트인데 이제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다. 이 곳에는 사람들이 패션 아이템만 올린다는 점이 다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StyleSays.com 웹사이트 첫 화면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타일쉐어 (StyleShare)도 같은 류로 보면 될 것 같다. 어쨌든, 대중이 직접 참여해서 그들의 지혜를 통해 거른 정보가 그 어떤 정교한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만들어낸 정보보다도 더 가치있다는 점에서 이런 서비스들은 매우 주목이 되고, 2012년엔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3. 모바일 광고

2012년엔 모바일 광고가 더 정교해질 것이고, 이 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다. 단순히 웹서핑을 하거나 앱을 사용하는 동안 화면 한 구석을 차지하거나, 화면 전환시에 전체화면을 차지하는 광고만이 아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Naveen Tewari가 인도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전 세계를 커버하는 모바일 광고 회사 InMobi의 성장이 주목할만하다. 이 회사는 작년 9월에 소프트뱅크로부터 무려 $200M(약 22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구글에 인수된 AdMob만큼 크지는 않지만, 이 회사의 플랫폼을 통한 광고는 165개국 3억 4천명에게 도달한다고 한다. 위치 정보를 비롯해서, 사용자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스마트폰과 타블렛은 광고주에게 정말 매력적인 플랫폼이다.

InMobi의 모바일 광고 네트워크 (출처: http://www.inmobi.com/)

어떤 형태의 모바일 광고가 2012년에 사람들의 인기를 끌 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분야에서 계속적인 혁신이 일어나고 더 많은 회사들이 생겨나고 더 많은 돈이 흘러들어가리라는 생각은 든다.

이상이 간략히 정리한, 문득 떠오른 2012년의 트렌드이다. 2012년에는 또 어떤 새로운 기술들이 탄생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지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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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파커, 한국 문화를 통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이제 한국 문화의 전도사가 되다

스탠포드대학 정치 및 커뮤니케이션 전공 대학원 1학년 스테파니(Stephanie).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약 2년 반 전인 2009년 여름이었다. 매년 여름, 스탠포드 대학에서 한국, 일본, 타이완의 대학생들을 선발해서 “미국 영어 및 문화 교류(American Language & Culture)“라는 4주짜리 프로그램을 하는데, 스테파니는 그 프로그램에서 스탠포드대 자원봉사자로서 프로그램 진행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잘 아는 후배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 후배를 데려다주었다가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정말 많았고, 당시 인기 있던 한국 가수나 드라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 잠깐 만났던 것이 인연이 되어 나도 다음 해에 그 프로그램에서 패널리스트로 참가하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그녀를 만나 안부를 서로 묻곤 했다.

최근, 스테파니를 마운틴뷰의 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녀는 이제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생이 되었고, 곧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싱가폴로 갈 예정이란다. 어떤 일이길래 싱가폴에 가느냐 물었더니, 동영상에 각 나라 말로 자막을 달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스타트업(startup)에서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로 일할 계획이란다. “비키(Viki)를 말하는건가요?” 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비키(Viki)라면 내가 잘 아는 호창성 선배가 만든 회사이고, 최근 한국과 미국의 유명 VC들로부터 약 200억원의 투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어 공부도 해서 이제 한글도 잘 읽었고, 안그래도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번 일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며 흥분해 있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 문화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졸업 후 첫 진로를 Viki로 정했을까? 궁금했다. 마운틴뷰의 한 스타벅스에서 그녀를 만났다.

성문: 간략하게 소개를 해줄래요?

스테파니: 안녕하세요? 스탠포드대를 지난 6월에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학부 때 대학원 수업을 미리 수강해놨기 때문에 보통 2년이 걸리는 대학원 과정이지만 약 6개월만 더 하면 졸업하게 됩니다.

성문: 한국 문화와 드라마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스테파니: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LA에서 학교를 다니다보니 주변에 한국계 미국인 친구들이 많았어요. 저는 미국 팝스타들을 좋아했는데, 한국계 친구들은 한국 가수나 연예인들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K-POP 콘서트에 가고 노래방에 가서 한국 노래를 부르고 하더라구요.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그렇게 좋아하나 궁금했지요. 그래서 당시에 가장 친했던 친구인, 지금은 하버드대학에 있는 글로리아 이(Gloria Eee)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저한테 웹사이트를 하나 알려줬어요. 숨피(Soompi)는 사이트인데, 거기 가니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모든 정보가 있더군요. 숨피를 통해 전에는 존재하는 지조차 몰랐던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어요.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들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거든요. 그렇게 무언가에 빠져본 적이 없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시에 저처럼 아시아인이 아닌데 한국 가수를 좋아한다고 하면 미국 친구들이 좀 이상하게 생각하곤 했죠. 남자 배우를 보고 여자같다고 놀리기도 했구요. 숨피를 통해 오프라인 모임을 주최하거나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런 모임을 통해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러다가 콘서트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처음 갔던 것이 2006년에 있었던 YG 패밀리 월드 투어였어요. 빅뱅이 그 때 공연했던 기억이 나요.

성문: 고등학교 때라 대학 입시 준비로 바빴을텐데 어떻게 그 모든 걸 할 시간이 있었나요? 게다가 스탠포드대에 입학했잖아요. 대단한걸요?

스테파니: 사실 말씀드리면 타 문화에 대한 관심 때문에 스탠포드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과, 다른 언어를 배웠다는 것, 이런 경험을 통해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거든요. 솔직히 원래는 재밌어서 했던 것뿐이었지만요 (웃음).

성문: 스탠포드의 입학담당자들이 보는 눈이 있었군요. 하하.

스테파니: 근데 입학해서 보니 학교에 저 같이 한국 문화에 관심 많고,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미국인 친구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스탠포드대학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래서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학생들을 많이 뽑은 것 같아요.

성문: 고등학교 때의 경험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요?

스테파니: 숨피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다보니 아시아인들에 대해 정말 잘 알게 됐어요. 길가다가 주변을 보면 아시아인들이 더 눈에 잘 띌 정도였죠. 아시아인들을 보면 더 반갑기도 했구요. 한편, 숨피에서는 가수 ‘비’의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썼는데, 그랬더니 사람들이 저를 한국계 미국인인이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한글로 메시지를 주고 받기도 했어요. 신비로운 경험이었죠. 나중에 스탠포드대에서 이를 주제로 한 논문을 쓰기도 했어요. 전에는 태어난 마을이나 쓰는 언어, 또는 인종에 의해 정체성이 결정된다면, 이제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정체성이 결정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긍정적인 면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선택할 수 있다는 옵션이 있다는 것은 좋은거에요. 태어난 환경에 의해서만 정체성이 결정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그러한 환경을 찾아서 선택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지요.

성문: 스탠포드대 합격 비결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스테파니: 스탠포드대학은 시험 성적 뿐 아니라 에세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특히 성장 과정이 잘 녹아들어 있는 에세이요. 저는 소극적고 자신감이 없었던 한 아이가 한국 문화를 접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했어요. 어렸을 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었거든요. 제 어머니는 백인이었고 아버지는 흑인이었어요. 그래서 외모는 흑인이었지만 저는 다른 문화 속에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었어요. 예를 들어, 흑인들만 쓰는 독특한 억양이 있거든요. 그런 억양을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제대로 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친구들이 바로 알아차리고 인정을 안해줬죠. 제가 너무 고상한 단어들을 쓴다며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제가 과연 어떤 그룹에서 가장 잘 인정받고 어울릴 수 있나 싶어서 이곳 저곳을 시도해보던 중 한국 연예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한국인 그룹에 갔는데, 한국 친구들이 저를 정말 재미있어하고 환영해줬어요. 한국계가 아닌 사람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재미있었나봐요. 제가 특정한 억양을 가지고 말하기를 기대하는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서 그들이 실망하는 것을 보는 것 보다는, 제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서 그들이 놀라며 기뻐하는 것을 보는 게 확실히 더 좋은 느낌이었죠.

성문: 비키(Viki)와는 어떻게 연결이 되었나요?

스테파니: 예전부터 비키의 팬이었고, 몇 번은 직접 자막을 달기도 했어요. 나중에 스탠포드 MBA 졸업생들이 만든 회사라는 것과, 테크크런치(TechCrunch) 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올해 봄, 한 친구가 만든 회사에 조언을 해주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Viki의 라즈믹(Razmig) 대표를 만났고, 그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연결이 됐어요.  그 분이 저한테 연락해 와서 팔로 알토에서 만났어요. 만나자마자 저한테 “당신을 고용하고 싶습니다. (We wanna hire you.)” 라고 하더군요. 깜짝 놀랐죠. 저에게 대해 들어서 알고 있었고 제가 한 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면서 싱가폴에 와서 팀을 만나보라고 했어요. 안그래도 언젠가 아시아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는 길에 싱가폴에 들러 팀을 만나보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결정을 내렸습니다. Viki에서의 저의 공식적인 타이틀은 ‘커뮤니티 매니저‘입니다. 지금은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했고, 내년 4월에 대학원을 졸업하면 풀 타임으로 거기서 일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기대되요! (I am so excited about this opportunity!)

고등학교 때 우연히 한국 팝을 접했고, 그로 인해 자신감을 찾았고,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했고, 또 이제 한국 드라마를 전 세계 사람들이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게 되어 정말 즐겁다는 스테파니, 그녀가 한국 문화의 ‘대사’로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스테파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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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성, 세계 4위의 미디어 회사 비아컴(Viacom)의 게임 사업 개발 매니저

오늘의 인터뷰, 안우성

안우성(LinkedIn, Twitter, 블로그),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년 여름이었다. UCLA Anderson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은 후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UCLA MBA를 지망하는 안우성이라고 합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에, 어떻게 이메일 주소를 알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 만나고 싶고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가 간략히 적혀 있었다.

당시에는 엔씨소프트 일본 지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메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한 달쯤 지나 한국에 방문할 일이 있으니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둘 다 일정이 바빠 7월 초, 아침 8시 반에 서울대입구역 스타벅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말쑥한 외모에 깔끔한 옷차림이 인상적이었다. 캘리포니아의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분명히 자신의 목표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훨씬 좋은 학교에 합격해서 UCLA에 안 온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까.

다시 그에게서 연락을 받은 것은 몇 달이 지나서 이듬해 1월이 되어서였다. UCLA 앤더슨 스쿨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다며, 감사의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인연을 맺었다. 몇 달이 지나 5월에 그가 LA에 도착했고, 나는 여름 인턴십을 위해 한창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학교 시작하기 전에 LA의 한 소셜 미디어 관련 스타트업에서 미리 무급 인턴십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는 학교가 시작되기도 전에 누구보다 열심히 네트워킹을 했고, 소셜 미디어도 누구보다 잘 활용했다. 학교 안에서도 다양한 리더십 역할을 맡아서 했기 때문에 이내 그의 이름은 유명해졌다. 내가 2학년 때 학생회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차기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마이클(Michael)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일이 있었는데, 그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마이클: “성문, 혹시 우성 알아?”
성문: “응. 물론 알지. 그가 앤더슨 스쿨 입학하기 전부터 알았는걸”
마이클: “나 그 친구 존경해. 사실, 우성이 한국 학생들에 대한 내 이미지를 바꿔놓았어.”
성문: “무슨 이야기야?”
마이클: “왜, 한국에서 온 학생들은 대부분 수줍어하고, 그렇게 활동적이지 않고, 더구나 리더십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아서 하는 것을 못봤거든. 그런데 우성은 너무나 열심인데다가 각종 클럽에서 리더십 역할도 맡아서 하고 있잖아. 한국 사람들이라고 다 조용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한거지.”

정말 그랬다. 그는 웬만한 미국 학생들보다도 열심히 네트워킹을 했고, 몇 달이 지나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리쿠르팅 과정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알고 보니 우성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첫 이메일에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이 있다던 그는 네트워킹과 노력을 통해 미국 사람이라도 들어가기 힘든 매출 18조원의 기업 NBC 유니버설과 매출 40조원의 기업 디즈니에서 봄, 여름 인턴십을 했고, MBA를 마친 후에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비아콤(Viacom)니켈로디언 게임 그룹(Nickelodeon Game Group)에서 사업 제휴를 담당하고 있다. 니켈로디언은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면 꼭 시청하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케이블 채널이다. 교육용 어린이 만화인 ‘탐험가 도라 (Dora the Explorer)‘가 니켈로디언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다. 10년간 장기 방영하며 미국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스폰지밥(SpongeBob)‘ 역시 니켈로디언에서 만들었다.

미국의 인기있는 교육용 어린이 만화,

그는 또한, 내가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이다. 2008년 어느날, 앤더슨 스쿨의 학생 라운지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한 말이다.

형, 블로그 시작해 보세요. 정말 많이 배울 수 있고 많이 얻을 수 있어요. 제가 했던 중 가장 보람있는 일 중 하나였어요.

그 말을 듣고 블로그를 시작했고, 그 때 그가 했던, ‘많이 배울 수 있고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토요일 점심, Burlingame 다운타운의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성문: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탐험가 도라의 목소리가 들어간 GPS 기기

제가 하는 일, 즉 비즈니스 디벨롭먼트(Business Development)의 영역은 크게 라이센싱(Licensing)과 배급(Distribution)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라이센싱이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이 팔아줘서 돈을 버는 것, 그리고 배급은 남의 것을 내가 팔아줘서 돈을 버는 것입니다. 저희 회사같이 컨텐츠를 가진 회사는 캐릭터, 게임 등의 라이센싱을 통해 주로 돈을 벌 수 있고, 그 중 저는 게임과 관련된 라이센싱을 담당합니다. 요즘 같은 경우는 스마트폰 또는 타블렛 게임에 들어가는 캐릭터 계약이 많습니다. 동시에 제가 배급 계약도 담당하는데, 니켈로디언이 미디어를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TV 채널, Nickelodeon.com, 또는 게임 포털 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채널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거나 컨텐츠를 공급하고 싶어하는 회사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과 달리 미디어 역사가 긴 미국에서는 이와 같이 IP(Intellectual Property)와 미디어 채널을 동시에 보유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디즈니 하면 대부분 미키 마우스를 먼저 떠올리고, 미키 마우스 캐릭터를 팔아 돈을 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오는 매출은 사실 크지 않습니다. Disney.com, ESPN, ABC 등 자체적으로 보유한 미디어 채널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 다음 수익원이 테마 파크, Pixar와 같은 영화사 등이지요. 결국 자신의 컨텐츠를 팔아서 돈을 벌고, 또 남의 컨텐츠를 실어줘서 돈을 벌고, 이렇게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강력합니다. 예를 또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회사가 새로운 장난감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봐요. 그리고 그 회사가 기존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 저희가 가진 캐릭터를 사용합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저희 캐릭터를 썼다면 그 장난감을 어디에 광고할 때 가장 효과가 클까요? 그 캐릭터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바로 저희 웹사이트와 TV 채널이겠지요. 그런 식으로 두 가지 계약을 할 경우 수익이 극대화됩니다. IP와 미디어를 보유한 회사만 할 수 있는 일지이요.

성문: 학부 때 전공이 건축학이었는데, 지금 전혀 다른 길로 왔네요?

제가 사실 과학고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3년동안 과학을 공부하고 나니 다른 쪽이 하고 싶어졌어요. 피를 봐야 하는 의사가 되기는 싫었고, 당시에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있고 너무 공학적이지도 않은 건축학을 공부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막상 입학해서 공부를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더군요. 당시가 IMF 직후라 주택 프로젝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설계도의 아파트만 계속 짓고 있었고, 게다가 건축이라는 분야 자체가 연륜이 필요해서 어릴 때는 뭔가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더라구요.

반면, 인터넷 분야에서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이면 즉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 관심이 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엔씨소프트에서 운 좋게 병역 특례로 일을 하기 시작했지요. 일을 해보니 정말 재미도 있고 가능성도 높은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인생의 모토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자”인데, 꼭 집을 지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말고도 온라인 공간을 통해 즐거움을 전달하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엔씨소프트에서 처음 맡은 일은 해외 온라인 게임을 수입해서 한국에서 서비스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리니지 2 팀의 다섯 번째 멤버로 합류했는데,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2003년 당시 100억원 이상을 투자해서 만든, 굉장히 덩치가 큰 프로젝트였는데, 마침내 게임이 성공적으로 런칭되어 한 달에 100억원 이상을 벌게 되었고, 온라인 게임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지요. 어린 나이였지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그런 점에서 엔씨소프트에 참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성문: 그 다음에는 일본에서 일을 했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그렇게 3년간 리니지 2 등 온라인 게임의 마케팅을 담당하던 중, 일본 지사장님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본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서 인터뷰를 했고 일본에 가게 됐습니다. 일본 지사에서는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블로그였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이런 개인 미디어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당시 일본의 전설적인 VC인 조이 이또(Joy Ito)디지털 거라지(Digital Garage)를 공동창업하고 나서 초창기 블로그 플랫폼인 무버블 타입(Movable Type), 테크노라티(Technorati) 등을 들여오며 블로그가 큰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미 2007년에 일본 사람들이 트위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저는 2007년부터 트위터를 쓰기 시작했지요. ‘오타쿠’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각 영역마다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블로그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매우 세분화된 취미를 남들에게 나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왜 그런 채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의문을 가지게 됐고, 한 번 게임 전문 블로그를 만드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일본 사람들과 일하면서 블로그를 키워갔고, 마침내 그 블로그가 일본 내에서 게임 카테고리 1등을 했습니다. 일단 그러한 미디어 채널을 가지게 되니 게임 홍보도 훨씬 쉬웠고, 유저 충성도를 관리하기도 쉬웠지요.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셜 미디어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미래가 가게 될 방향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성문: 미디어플록(Mediaflock)이라는 블로그 사이트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관리하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원래 2000년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2005년에 일본에 가서 블로그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되자, 먼저 블로그에 대해 이해를 해야겠다 싶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일본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으면서 일본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을 한국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요. 당시 가까운 친구였던 김동신(현재 파프리카 랩 CEO)에게 같이 시작하자고 했지요. 당시 한국에서는 TNC(테터 앤 컴퍼니, 후에 구글에 인수됨)의 노정석 대표님이 만든 태터 툴즈에 전문 블로거들이 생겨나고 있었고, 블로그에 달린 광고 수입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또, TNC의 김창원 공동 대표님이 일본 지사를 운영하기 위해 몇 달간 일본에 나와 있었는데, 그 분과 대화하면서 블로그에 대해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블로그를 통해 멋진 사업가들도 알게 됐고, 저와 다른 공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그 이후 보람을 느껴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성문: 엔씨소프트 일본 지사에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MBA를 결심했네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건가요?

우성: 소셜 미디어에 대해 관심을 가질수록 미래의 큰 변화(Next Big Thing)는 미국에서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라인 게임, 포털 등의 선진 서비스를 한국과 일본에서경험하고 나니, 이를 미국에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마침 아내가 USC에서 박사 과정중에 있어 LA에 가고 싶었고, UCLA를 선택했습니다. 실리콘 밸리와 할리우드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어요.

성문: 특이하게도 MBA 시작도 하기 전에 LA에 위치한 SocialVibe라는 회사에서 일을 했었네요. 어떤 계기였나요?

아내 때문에 LA에 좀 일찍 도착했습니다. 아무 일도 안하니 일주일만에 심심해지더군요. 학교 수업 시작할 때까지 뭘 할까 고민하다가, 공짜라도 좋으니 스타트업에서 한 번 일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LA지역 스타트업들이 꽤 있더군요. 무조건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이메일 주소를 찾을 수 없을 때는 webmaster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SocialVibe라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거기서 약 4개월간 인턴을 했습니다. 다행히 그 회사가 잘 커서 지금은 페이스북 공식 광고 벤더가 되었습니다. 이런 미국의 스타트업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문: 미국인들도 들어가기 힘든 디즈니에서 여름 인턴십을 했는데, 비결이 뭐였나요?

처음부터 끝까지 네트워킹의 결과였습니다. MBA 시작하기 전부터 네트워킹을 했지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었고, 사람들을 만나 저에 대해 소개하면서 피드백을 받으니 도움이 많이 되어서 피칭 연습도 할 겸 해서 계속 만났습니다. LinkedIn에서 랜덤하게 찾아서 연락하기도 했구요.

생각해보면 일주일에 한 명씩 만났었네요. 1학년 때 50명도 넘게 만났고, 그러는 과정 중에 많은 사람들과 인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작정 만났지만, 나중에는 나를 옹호해줄 멘토(Mentor)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9년 당시 잡 마켓(job market)이 안좋았기 때문에, 여기 저기 찌르는 대신 나는 더 집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해 왔던 것을 레버리지(leverage)할 수 있고, 제가 하고 싶어 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예를 들어 엔씨소프트에서의 경험도 일일이 다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할만한 경력을 간추려서 이야기했고, 전에 했던 일과 앞으로 하려는 일이 다른데 그 둘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잡 디스크립션(job description)을 자세히 보고, 제가 하는 말이 회사에서 원하는 것과 일치하도록 스토리도 만들었구요. 디즈니에서 채용 공고가 나자 그 회사의 임원들과도 네트워킹을 했고, 결국 세 명의 임원이 저를 추천해줬습니다. 입사해서 보니 해당 사업 부문(디즈니 산하 5개 사업 부문 중 하나인 인터렉티브 미디어 그룹)에 MBA 인턴이 한 명 더 있었는데, 헷지펀드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는 와튼 스쿨 출신의 미국인이었습니다. 매니저에게 저를 왜 뽑았냐고 물어봤더니 “부사장급(VP) 임원들이 추천하기에 면접을 봤는데 만나보니 추천할만한 사람이어서 채용했다”고 하더군요. 네트워킹의 승리이지요. (웃음)

디즈니에서 일하면서도 어떻게 미국 내에서 인맥을 넓힐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디즈니 타이틀을 달고 많은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덕분에 2학년 잡 써치(job search) 때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풀타임(full time) 잡은 어떻게 찾은건가요?

네트워킹을 계속 했습니다. 그런 소개가 없이는 회사에 들어가기 어려운 때였지요. 친구들과 함께 회사 방문 이벤트를 계획하기도 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인터뷰를 하기도 하구요. 사실, 지금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의외로 한 리크루터가 저를 연락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LinkedIn에서 제 경력을 보고 연락을 해왔는데, 그 때 LinkedIn의 힘을 알게 되었지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컨텐츠가 어떻게 하면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할 겁니다. 아이패드, 킨들파이어 등등 새로운 기기가 생기고 미디어가 TV에서 컴퓨터로 옮겨가고,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 안에 핵심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컨텐트(content)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것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것을 알고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요. 예를 들어, 똑같은 스타일만 즐기고 똑같은 댄스 가수 음악만 듣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스타일과 음악을 알고 즐기면 좋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호창성 대표의 viki.com은 아주 훌륭한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정말 재미있는 한국과 일본 컨텐츠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전파해주고 있잖아요.


아래는 그의 링크드인(LinkedIn) 프로필 페이지에 있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한 마디 추천사이다. 컨텐츠가 점차 중요해지는 시대에, 그가 앞으로 어떤 사업 개발을 통해 컨텐츠의 가치를 높여 나갈지 기대가 된다.

“Woosung is an exceptional business development executive. Prior to Woosung’s arrival at Nickelodeon Games, I had tried unsuccessfully for several years to close a deal with Shockwave/Nickelodeon. Shortly after Woosung joined the Nickelodeon team, he constructed deal terms that met both Nickelodeon’s needs as well as Disney’s, and thus, we were able to close the deal. He is a skilled negotiator, knowledgeable in the gaming space and a pleasure to work with.”, Elliot Solomon, Director Business Development, Disney Online Studios. June 25, 2011

“안우성은 아주 뛰어난 사업 개발 담당자이다. 그가 니켈로디언 게임즈에 합류하기 전에, 나는 몇 년동안 이 회사와 계약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입사하자마자 니켈로디언과 디즈니 모두가 만족할 만한 계약 사항을 도출했고, 그 결과 계약이 맺어질 수 있었다. 그는 노련한 협상가이고, 게임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함께 일하기에 즐거운 사람이다.” – 디즈니 온라인 게임 사업 개발 부장, 엘리언 솔로몬. 2011년 6월 25일.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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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왜 강할까

미국은 왜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을까? 실리콘밸리에 살면 누구나 이런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도대체 이 곳에서 어떤 비밀이 숨어 있길래 매일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기반 기술이 생겨나고, 또 그것이 큰 산업으로 성장하는 것일까? 앞서 블로그에서 몇 번 언급했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쾌적한 날씨와 환경, 그리고 인재들이 모이는 곳

이 곳에는 인재가 많고, 인도, 중국,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인재들이 끝없이 몰려온다. 스탠포드, 버클리 대학에 미국 전 지역, 세계 각 나라의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고, 그들 중 다수가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는다. 매우 쾌적한 기후를 가진 동시에 사람들의 학력 수준과 생활 수준이 높고,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세상을 바꾸는 회사들이 모인 곳, 인재들이 이런 곳을 마다할 리가 없다. 결국, 우수한 사람들 주변에 우수한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의 천국

엔지니어에게 실리콘밸리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는 것 같다. 이 곳에는 엔지니어들이 존경을 받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 글래스도어(Glassdoor.com)에 가면 각 회사별로 엔지니어들의 연봉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데, 중견기업에서 일할 경우 대개 초임이 7, 8만달러에서 시작하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곧 10만달러(약 1억 천만원)가 넘어간다. 물론 살인적인 물가와 높은 세금과 의료보험료를 생각하면 10만달러가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높은 연봉은 아니지만, 스톡 옵션, 주식 등으로 훗날 벌 수 있는 돈과 주 40~50시간이면 충분한 근무 조건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한 때 샌디에고에서는 “퀼리어네어 (Quillanair) 라는 말이 유행했다. 샌디에고에 본사를 둔 퀄컴(Qualcomm)이 주식을 상장하면서 부자가 된 직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대부분은 엔지니어다. 미국에서는 입사할 때 많은 경우 주식을 받고, 회사 다니는 동안에도 계속 스톱 옵션을 받기 때문에 회사가 좋은 가격에 상장되면 대부분 큰 부자가 된다. 구글이 상장할 때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수십억, 수백억원의 돈을 벌었다.

물론, 해고의 위험도 있다. 2009, 2010년, 경기가 좋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해고를 당했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많은 경우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실력이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회사에서 다시 자리를 잡고 또 다시 많은 인재들이 외국에서 몰려온다.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한 강한 처벌

미국은 기본적으로 지적 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철저한 곳이다. 법으로 보호가 잘 되어서이기도 하지만, 미국 교육 시스템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만든 저작물을 무단으로 복사하면 안된다고 철저히 가르치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적 재산을 귀하게 여긴다. 따라서 대기업이고, 자원이 많다고 해서 섣불리 다른 작은 회사가 만든 것을 무단으로 똑같이 만들지 않는다.

복제할 수 있다 해도 이를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있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 오라클은 지적 재산권 침해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어서, 어떤 사람이 만든 코드라도 함부로 가져다 쓰거나 복제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확인하고 있다. 회사가 도덕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침해 사실이 밝혀 지면 만인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을 뿐더러 소송이라도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중국의 가짜 애플스토어에 대한 이야기가 월스트리트 저널 첫 지면에 나오면서 미국인들한테 엄청난 웃음거리가 된 사건이 있었다 [주: WSJ].

갑을 관계는 분명히 존재, 그러나 파트너십에 가까움

한국에는 SI(시스템 통합) 사업이 많고, 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철저히 ‘을’에 해당하는 SI업체에서 일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엔지니어가 탄생하기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도 그런 갑을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돈을 주는 쪽은 무조건 갑이고 돈을 받는 쪽은 을이다. 그래서 을 입장에서 계약을 따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대접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면 수직적 갑을 관계라기보다는 파트너십에 가깝다. 제품, 서비스와 돈을 교환하는 관계일 뿐인 것이다.

인터넷, 모바일 창업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출구(exit)가 있기 때문

왜 실리콘밸리에서 인터넷, 모바일 관련 창업이 많이 일어나고 그 중 많은 회사들이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할까? 그 이유는 출구(엑싯:exit)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엑싯(exit)이란, 회사가 성장해서 매각되거나 주식 시장에 상장되는 사건을 의미한다. 회사를 판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엑싯이 일어나면 창업자를 비롯한 초기 멤버들은 큰 돈을 벌 수 있고, 이는 다른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앞다투어 창업을 하도록 하는 동기가 된다.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에서는 인수 합병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대기업들이 작은 회사들을 큰 프리미엄을 주며 한 달이 멀다하고 인수한다. 그러한 기술을 만들 줄 몰라서가 아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다른 회사가 만든 기술을 인력 투입이나 자본 투입으로 복제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공채 제도가 없고, 직원들의 회사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회사들이 1년 내내 인재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회사 인수를 하면 정말 우수한 인재들을 회사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베테랑 투자가들의 뒷받침

회사 초기에 입사해서, 주식 상장을 통해 큰 돈을 번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플로리다에 집을 하나씩 사서 여생을 즐기고 있을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 투자자로 변신했다. 그 중 한 명이 크리스 사카(Chris Sacca)이다. 자신이 번 돈과, 다른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2009년에 투자 회사를 만들었고 그 이후 트위터, 고왈라, 인스타그램 등을 포함하여 34개의 쟁쟁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주: CrunchBase]. 법학을 전공했고, 기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그야말로 베테랑 투자가이다. 바로 앞에서 설명했듯, 이 곳에서는 엑싯(exit)이 많이 일어나므로 투자한 돈이 투자가들에게 되돌아올 기회가 많다는 것도 스타트업 투자가 활성화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에서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정부 자금 지원 등의 일차원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거나 현재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만을 흉내내려 한다면 실리콘밸리의 시스템을 절대로 복제하지 못할 것이다. 설사 그렇게 해서 일시적으로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난다 하더라도, 결국은 부실한 회사들만 잔뜩 생겨나고 그 회사들이 제대로 성장을 못해서 결국 국민의 세금만 낭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매일경제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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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스탠포드대에서 거왕 교수와 함께 음악과 기술의 만남을 연구하다

오지은 (페이스북 프로필) 씨를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2009년, 스탠포드 대학 내의 한인 크리스천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녀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기술을 이용해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분야였다. 나중에 자세히 물어보니, 당시에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아이폰을 이용해서 연주회를 열기도 하고 아이폰과 관련한 음악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참 신기한 분야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녀에 대해 다시 듣게 된 것은 2009년 10월의 뉴욕타임즈의 기사비디오를 통해서였다. 당시 아이폰용 ‘오카리나 앱‘과 아이패드용 ‘매직 피아노‘로 인기를 얻었던 앱을 만든 거왕(Ge Wang) 교수의 제자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첫 번째 제자라고 했다. 거왕 교수에 대해서는 에스티마님이 쓰신 ‘소리로 벽을 허문다‘ 및 조선일보의 “아이폰으로 클래식을 연주하다“에서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뉴욕타임즈 기자에게 설명하는 오지은씨

스탠포드 랩탑 오케스트라 등 아이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 기기를 이용한 콘서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동시에 박사 학위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그녀를 스탠포드 대학 앞의 유니버시티 카페(University Cafe)에서 만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패드로 연주중인 오지은씨

성문: 거왕 교수가 지금은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졌는데, 어떻게 해서 그 교수의 첫 번째 제자가 되었나요?

지은: 저는 학부를 스탠포드에서 했는데, 전공이 인지 과학(Symbolic Systems)였습니다. 이 전공에서 컴퓨터 음악(Computer Music)도 한 분야로 다루어집니다. 학부 때 ‘음악 및 음향학 컴퓨터 연구 센터 Center for Computer Research in Music and Acoustics(CCRMA)‘에서 제공하는 수업을 하나 듣게 되었는데, 원래 음악에 관심이 많은데다 연구 분야가 재미있어 보여서 이 분야에서 연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죠.

성문: 제가 보니 음악에 관심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12살 때부터 플루트 연주를 시작한 후 다양한 그룹에서 활동하고, 워싱턴 주에서 개최한 컨테스트에서 플루트 솔로로 3등을 해서 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지은: 6학년 때 처음 플룻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플룻은 제 학업 생활의 ‘완벽한 보완제’가 되어준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는 숙제를 하다가 지치면 플루트 연습을 하곤 했지요. 음악을 전공 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던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플루트 연주를 통해 다양한 음색에 귀기울이게 되었고, 사람들이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제가 경험하고 있는 음악의 아름다움과 음악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의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해 컴퓨터 음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성문: 미국에는 언제 오게 되었나요?

지은: 초등학교 5학년때 가족과 함께 워싱턴 주로 왔습니다. 거기서 고등학교 때까지 있다가 8년 전에 스탠포드에 진학하면서 이 동네로 이사왔어요. 대학원을 결정할 때에 다양한 경험을 위해 동부로 갈까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CCRMA가 박사과정을 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라고 믿었고, 또 실리콘 밸리의 특별한 이노베이션 에너지를 느끼면서 지내고 싶어서 이곳에 남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성문: 박사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앉아서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지은: 맞아요. 콘서트 기획도 하고, 남들이 전혀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시도도 하고, 때로는 청중들과 함께 음악을 맞춰보기도 하기 때문에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박사 과정은 없을 것 같아요.

성문: 거왕 교수님은 최근 어떤 일을 하셨고, 요즘 어떤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요?

지은: 모바일용 음악 앱 개발 회사 Smule을 운영하는 것 이외에,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거왕 교수는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 할 때 ‘프린스턴 랩탑 오케스트라‘를 처음 만드셨구요. 그래서 이 학교 오셔서는 ‘스탠포드 랩탑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것 뿐 아니라, 제스처를 사용해서 연주한다든가,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같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 등에 관심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제시하는 아주 튀거나 실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지원해 주셔서 랩 분위기가 매우 자유롭습니다.

성문: 이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생각하는 주제를 간략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지은: 논문은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데요, 지금까지는 모바일 뮤직 및 소셜 뮤직, 즉 모바일 기술을 사용해서 어떻게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고, 더 많이 상호 작용을 하는가를 연구했는데, 앞으로는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비디오 데이터를 분석해서 인사이트를 얻어내는 일을 해볼 생각입니다. 특히 저는 사람들의 웃음 소리에 관심이 많아요. 상황에 따라 웃음 소리가 달라지거든요. 이런 것은 실험실의 인위적인 환경에서는 관찰하거나 분석하기가 쉽지 않은데 클라우드에 있는 수많은 비디오들을 활용하면 새로운 방식의 연구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음악과 기술이 어떻게 조합될 수 있을까? 이러한 조합이 어떻게 사람이 음악을 생산하고 공유하고 소비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칠까? 앞으로 오지은씨가 하는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서 변화를 일으킬 지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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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스프링보드 48 실리콘밸리

지난 10월 21일(금)부터 23일(일), 약 48시간의 시간 동안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위치한 NASA (미 항공 우주국) 리서치 센터 안의 싱귤레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에서는 TIDE Institute희망제작소가 공동 주최한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습니다. 제목은 ‘스타트업 스프링보드 48‘, 즉 그 자리에서 즉시 팀을 만들고 48시간동안 아이디어를 모아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것입니다. 약 40여명이 모였는데 무려 20개가 넘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그 중 가장 표를 많이 얻은 아이디어 12개가 선정되고,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이 CEO가 되어 팀원들을 고용해서 그 즉시 일을 시작합니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도 같은 주제로 행사가 열려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습니다.

비전을 가지고 이번 행사를 기획한 고산씨가 나와서 취지를 설명한 후에 싱귤레러티 대학의 CEO가 나와 싱귤레러티가 가진 이념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행사 취지를 설명하는 고산 TIDE Institute 대표

이 행사에 저도 비빔밥 레스토랑 아이디어를 가지고 참여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더군요. 아래는 금요일에 바로 만들어진 저희 팀 사진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전에 호텔에서 일했었고, 유명한 여의도의 씨푸드 부페, “무스쿠스“의 초기 셋업에 참여한 후 현재 샌프란시스코 일식 레스토랑에서 셰프(chef)로 일하는 황익주씨와, 프렌차이즈 사업에 관심이 많아 전부터 이 분야를 연구해온 버클리대 경영학과의 장영준씨가 참여해서 정말 알차고 열띤 3일을 보냈습니다.

즉석에서 결성된 드림팀, Mix'n Bowl

서울에 이어 이번에 실리콘밸리에서 열렸고, 다음주에 또 보스턴에서 있을 이 행사를 기획하느라 정말 수고했던 네 사람을 밸리 인사이드가 만났습니다.

이번 행사를 함께 기획한 황동호, 유영석, 고산, 이지혜씨

조성문: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신다면요?

이지혜: NYU Stern의 MBA 과정에 재학중이고, 그 전에는 Acadian Asset Management라는 자산관리 회사에서 일하며 주식 자산 운용을 했습니다.

고산: 저는 TIDE 인스티튜트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TIDE는, 작년에 영석씨와 제가 싱귤레러티 대학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만든 비영리 단체입니다. 제가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 진학하기 전에 과학 기술을 통해 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실리콘밸리의 이 분위기가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bar)에서 만난 사람이 자신의 사업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회사에 있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에서도 분명히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역동적인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것이 그런 정신이라고 믿는데, 그 정신을 다시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유영석: 한국에서 Upstart라는 소셜 펀딩 인터넷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TIDE의 Cofounder이자 상임 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황동호: TIDE에서 교육 국장을 맡고 있으며, 서울에서 MJ라는 주얼리 유통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며 재미난 일을 찾고 있던 중에 산 형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서울에서 열렸던 영 제너레이션 포럼 행사 기획을 함께 한 것이 계기가 되어 TIDE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조성문: 어떻게 해서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하게 되었나요?

이지혜: 저는 창업에 항상 관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회사 일때문에 실현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이런 기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고산: 저는 현재 이공계 백그라운드를 가진 과학기술인들이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미국에, 54시간동안 팀을 짜서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스타트업 위켄드라는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직접 참여해본 후에 이런 것을 우리 한국인들끼리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창업에 열기와 관심이 많으나 같이 일할 사람들을 찾지 못해서 그 열기가 식어버리는 것을 보면서 아쉬웠던 참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아이디어만 있었는데 이지혜씨가 구체적인 일들을 담당하면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조성문: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황동호: 한국에 있으면서 원격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가장 어려웠습니다. 보스턴에서 있을 행사를 기획했는데 장소를 구하기가 힘들어 어려웠지요. 여기 저기 알아보던 중 MIT 총학생회장을 알게 되어 이메일로 주고 받으며 장소를 확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지혜: 힘든 점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렇게 행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오늘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처음부터 함께 기획하기는 했지만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고 실현되는 과정을 옆에서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어려웠던 점이라면, 우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일하다보니 복잡해진 아이디어를 문서로 정리하고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고산: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만, 조성문, 노범준 씨 등 실리콘밸리에 계신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결국 오늘에 이를 수 있었네요.

조성문: 앞으로 이루고 싶은 각자의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황동호: 저는 본업에 충실할 때 시너지가 나온다고 생각하고, 지금 하고 있는 무역 관련한 일들을 계속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한편, 제가 2007년 11월 14일에 써서 지갑에 항상 넣고 다니는 말이 있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미쳐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자.” TIDE가 저에게 그런 터전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비전에 공감하고 참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영석: 누구든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습니다. 제가 하는 소셜 펀딩 회사와 TIDE 모두 그 비전에 따라 하고 있는 일입니다.

고산: 저는 한국이 실리콘밸리를 능가해서, 우리나라에서 민간 우주선을 개발하는 날을 꿈꿔 봅니다.

이지혜: 저는 우주선을 만드시면 타고 가고 싶구요 (웃음), 저는 제가 가진 것을 나누고 함께 자라가는 것에서 기쁨을 많이 느낍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새로운 것들이 자라나고 커 가는 과정을 함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이 행사와 미션을 함께 하는 이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Business savvy한 public service woman’이 되고 싶은데요, 즉 사업 감각을 이용해서 공익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고산: 그렇다면, ValleyInside에 대해 가지는 조성문씨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조성문: 제 블로그에서도 밝혔듯, 저는 블로그를 쓰면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장 많이 영감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 사는 사람, 그리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받은 영감을 전달해주는 것이 저의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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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에는 트랜스링크 캐피털의 Jay Eum 파트너, 월든 인터네셔널의 Phil K. Yoon 이사 등이 참여, 매우 실질적인 조언을 해 주어 더욱 값진 시간이 되었습니다.

진지하게 심사중인 모습

최종 1등은 EduFight 팀이 차지했습니다. 교육과 게임을 연결시켜 아이들이 재미를 누리면서 배우게 하자는 취지인데, 48시간만에 게임을 기획하고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후, 이를 들고 나가 실제 미국의 한 어린 아이에게 해보도록 하고, 그 부모가 “이런 게임이라면 다운로드하겠다.”고 말한 것을 영상에 담아와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1등을 차지한 팀, EduFight. 에버노트, 야후, 이베이 등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다음주 말에 있을 보스턴 행사가 또 창업에 열정 있는 많은 한국인들이 모이는 좋은 자리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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