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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포스닷컴(Salesforce.com), 클라우드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회사

요즘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가장 핫(hot)하고 섹시(sexy)한 회사는 어디일까? Cloudera, Box.net, Asana, Sencha, Qualtrics, Square, Workday많은 회사들이 거론되지만, 나는 주저없이 CRM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 2위 점유율을 차지하는 세일즈포스닷컴(Salesforce.com)을 꼽고 싶다. 세일즈포스는 이 분야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이자, 가장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회사이기도 하다. 개성이 강한 CEO인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종종 스티브 잡스에 비견되기도 한다.

Salesforce.com “needs to be” for enterprise customers, “what Steve Jobs has always been to me,” Benioff said. “To be visionary and paint the future as much as possible.” (스티브잡스가 언제나 비저너리로서 나에게 미래를 그려준 것처럼, 세일즈포스닷컴은 기업 고객을 위해 스티브 잡스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 마크 베니오프. 출처: BusinessInsider)

2주 전, 애널리스트의 예상을 살짝 넘은 $835 millon (약 9000억원)의 분기 매출 실적을 발표한 후, 세일즈포스의 주가는 2013년 3월 13일 기준으로 18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기업 가치가 무려 $26.5B (약 29조원)으로 상승했으며, 몇몇 애널리스트들은 주가 예상치를 315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작년 한 해 총 손실이 무려 $270 million (약 3천억원)이나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손실 때문에 EPS (주당 순이익)은 2013년 3월 13일 기준으로 -1.90이다. 주당 순이익이 마이너스인데 기업가치가 30조원에 달한 적이 있었던 회사는 아마도 아마존(Amazon.com)을 제외하고는 없지 않을까 싶다. 소프트웨어 회사 중에서는 세계 5위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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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포스닷컴(Salesforce.com)의 2012년 1월 이후 주가 추이. 총 80%가 상승했다. (출처: Google Finance)

이러한 과도한 주가 상승이 결코 계속 유지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세일즈포스의 지분을 소유하기 위해 베팅을 걸고 있다. 언젠가 제 2의 오라클이 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라클의 현재 기업 가치는 $168B, 즉 약 180조원이다). 세일즈의 귀재인 래리 앨리슨(Larry Ellison)이 30여년에 걸쳐 쌓아 온 업적을 15년 역사를 가진 세일즈포스닷컴이 쉽게 이길 수는 없겠지만, 그 성장이 오라클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잠깐 세일즈포스닷컴이 가진 제품 이야기를 해보자. ‘세일즈포스(Salesforce)’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영업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프트웨어이다. 영업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한 기능이 무엇일까? 고객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그 다음은 고객 약속을 관리하는 것, 그리고 고객과 만나서 했던 이야기와 통화 내용 등을  보기 좋게 정리하는 것, 마지막으로 영업 실적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기능 등이다. 여기에 더해서, 분기별, 연간 예상 실적까지 계산해서 보여줄 수 있으면 플러스다. 이 모든 활동을 가리켜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즉 CRM이라고 하는데, 한글로 번역하면 “고객 관계 관리“라는 어색한 말이 되어 대부분 그냥 CRM이라고 한다. CRM을 잘 하기 위해 꼭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전에는 세일즈맨들의 가방에 들어 있는 수첩으로 관리했을 테고, 엑셀(Excel)이 등장하면서 훨씬 편해졌을 것이고, 1990년대부터는 CRM을 위한 전용 소프트웨어들이 생겨났다. 1993년에 설립되어 2002년에 전체 CRM 마켓의 45%를 차지하고, 2006년에는 오라클에 $5.8 billion (약 6조원)에 인수된 Siebel Systems가 대표적이다.

세일즈포스닷컴 실행 화면

세일즈포스닷컴 화면

아래 세일즈포스닷컴이 만든 비디오를 보면 더 이해가 쉽게 된다.

사실 이 CRM 소프트웨어 시장은 Siebel Systems가 장악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회사를 소유한 오라클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9년에 세일즈포스닷컴이 생겨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오라클, SAP와 같은 큰 회사들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회사가 점차 커지기 시작하자 차츰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엔 전세가 역전되어 기존의 강자들이 세일즈포스닷컴을 이기기 위해 고전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가트너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에 세일즈포스는 연 매출 2조원 이상을 기록하며 오라클을 이기고  CRM 시장에서 SAP에 이어 2위로 등극했다.

CRM

CRM 소프트웨어 회사 순위

무엇을 잘 했던 것일까?

‘클라우드’

‘클라우드 컴퓨팅’라는 단어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아마 1982년, 네 명의 스탠포드 졸업생들이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를 창업할 무렵, 그들이 가졌던 비전이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이었다. 오랜 시간동안, 공동창업자인 스캇 맥닐리는 앞으로 모든 개인 단말기는 아주 단순해질 것이고, 모든 정보가 서버에 저장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서버 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그에 필요한 기술들을 만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그가 세상에 퍼뜨린 말이 “The Network is the Computer (네트워크가 컴퓨터다)“였다.  세상이 정확히 그가 말한대로 되지는 않았다. 지금의 랩탑과 스마트폰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기능으로 무장하고 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정보가 서버에 저장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개념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원래 기업용 소프트웨어의 경우, 정보는 모두 서버에 저장된다. 오라클과 SAP가 가진 제품도 그런 모델이었다. 그런데 세일즈포스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모든 정보를 기업이 소유한 서버가 아닌, 자신이 소유한 서버에 저장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리고 바로 이 자신이 소유한 서버를 단순화시켜 ‘클라우드’라고 부른다. 일정 이상의 속도를 보장하고 데이터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이러한 서버들은 세계 도처에 위치해 있다.

사실, ‘클라우드’라는 단어는 들을 때마다 참 애매하다. 구체적인 개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구체적인 기술들을 뭉뚱그린 상위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 SaaS), 서비스형 플랫폼(Platform As a Service, PaaS), 서비스형 인프라(Infrastructure As a Service, IaaS)‘와 같은 단어들이 훨씬 구체적이다.

  • SaaS: 이메일, 게임 등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개인 또는 기업이 소유권을 갖고 설치해서 쓰는 대신 매월 또는 매년 일정 사용료를 내고 사용하는 방식. 구글 닥(구글 드라이브)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비롯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클라우드’ 제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 PaaS: 데이터베이스와 웹 서버와 같은, 다른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플랫폼을 사용료를 받고 제공하는 서비스.
  • IaaS: 말 그대로, 소프트웨어나 플랫폼보다 더 하단에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는 서비스. 웹 호스팅 업체나 스토리지 서비스 업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아마존(Amazon)은 이 분야의 강자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출처: Wikipedia)

클라우드 컴퓨팅 (출처: Wikipedia)

다소 아야기가 기술적으로 흘렀는데, ‘브라우저 기반’ 소프트웨어를 클라우드 서비스라고 보면 간단하다. 개인들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서비스에 익숙했지만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클라우드형 서비스가 도입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아래 두 가지이다.

  1. 기업들은 원래 데이터를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고객의 연락처 및 고객별 매출 정보, 직원 개개인의 연봉과 성과 정보를 다른 회사에 넘기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바로 그 점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은 여전히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는 대신 서버를 직접 사서 소유하고, 거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구입해서 쓰고는 했다.
  2. 속도와 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이 또 다른 이유이다. 중요한 고객과의 미팅 후 결과를 바로 입력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인터넷 연결이 안된다면? 너무 느리다면? 월간 매출 보고서를 확인하려고 하는데 매번 클릭 때마다 브라우저가 버벅대고 10초씩 기다려야 한다면? 컴퓨터에 설치된 소프트웨어에서는 마우스로 손을 가져갈 필요도 없이 키보드 입력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는데, 브라우저 방식에서는 똑같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두 배, 세 배의 시간이 걸린다면?

이러한 점 때문에 나도 사실 2008년에 이 회사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과연 그러한 방식이 먹힐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MBA 인턴십을 구하기 위해 알아보던 시절, 다른 MBA 학생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세일즈포스닷컴 본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제품을 보고 직원들로부터 설명을 자세히 들었지만, 여전히 내 머리속에는 ‘과연 될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하지만, 세일즈포스닷컴은 위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고, 세계 5위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었다. 첫 번째 문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기업의 신뢰를 사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남에게 절대로 정보를 주려 하지 않던 기업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세일즈포스닷컴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마음이 편해졌을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시간이 지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일단 인터넷 접속 속도 자체가 훨씬 빨라졌고, 브라우저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리고 ‘지메일이 핫메일을 이긴 진짜 이유‘라는 글에서 설명했듯 Ajax 기술의 발전 덕분에 브라우저에서도 마치 설치형 소프트웨어를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날 정도로 좋아졌다. 여기에 더해 세일즈포스는 처음부터 Multitenancy(다세대) 기반으로 설계하여 비용을 낮추고 성능을 높였다. 이에 대한 설명은 기술적이므로 생략한다.

지금이야 이런 모든 개념이 친숙하고 말이 되지만, 1999년 당시에 기업들을 대상으로 이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먼저,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는 이 점을 돌파하기 위해 한 가지 말을 만들어냈다.

No Software (소프트웨어가 아닙니다)

세일즈포스닷컴의 로고, "소프트웨어가 아닙니다"

세일즈포스닷컴의 로고, “소프트웨어가 아닙니다”

소프트웨어 회사가 자신의 제품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고 말하다니, 거의 갸루다 상이 “사람이 아니무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처음 들으면 무슨 말인지 모른다. 내가 보기에, 이 로고를 통해 그가 하려고 했던 말은 한 가지다.

“당신들은 이제 더 이상 소프트웨어를 살 필요도, 설치할 필요도, 그리고 관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아가, 소프트웨어가 무엇인 지조차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브라우저를 띄우고, 저희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일이 해결됩니다.”

둘째, 세일즈포스닷컴은 규모가 있는 회사들을 공략하는 대신 작은 회사들을 노렸다. 큰 기업일수록 데이터를 남에게 주는 것에 더 민감하고, 이미 자체 전산실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50명 미만의 작은 회사들은 정보의 보호보다 성장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정보에 덜 민감하다. 빨리 성장하는 회사에게는, 1달만 지나도 정보가 모두 구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회사들이 비싼 돈을 들여 전산실을 꾸미고 서버를 사고 소프트웨어를 사는 것은 꿈꾸기 힘들기 때문에 CRM 소프트웨어를 쓰기보다는 그냥 엑셀로 데이터를 관리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세일즈포스닷컴은 이들에게 접근해서 직원 한 명당 월 60달러의 사용료만 내면 즉시 소프트웨어를 쓸 수 있고,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해지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리고 첫 달은 무료로 쓸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작은 회사들에게도 시간과 돈을 들여 고객 서비스를 제공했다.

50명 미만의 작은 회사들은 SAP와 오라클같은 거대 기업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시장이다. 이 시장을 세일즈포스닷컴이 차지하며 성장했고, CRM 분야에서 2위를 차지한 지금은 직원 수십만명짜리 큰 회사도 고객으로 삼고 있다.

그 전에도 ‘클라우드’를 외친 회사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것으로 돈을 번 회사는 많지 않았다. 더더군다나 조단위의 연매출을 올린 회사는 더욱 없었다. 세일즈포스의 화려한 성장과 함께, ‘클라우드’는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다.

세일즈포스닷컴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

세일즈포스닷컴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

여기에서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세일즈포스닷컴의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그는 원래 오라클의 직원이었다. 그냥 직원이 아닌 오라클의 초기 직원이었고, 오라클에서 가장 성과가 좋았던 세일즈맨이었으며, 당시 연봉이 30만달러에 달했던, 오라클 역사상 최연소(26세) 임원이었다. 당연히 오라클 창업자인 래리 엘리슨과 같이 지중해 요트 여행을 하고,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내며, 더블 데이트를 할 정도로 아주 사이가 좋았다. 이러한 그의 이야기는 CNN 기사에 아주 상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몇 가지 간추려보면 아래와 같다.

14세에 RadioShack(전파사 같은 곳이다)에서 시간을 보내며 컴퓨터 다루는 법을 배웠다. 고등학교 때에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팔았고, 여기서 번 돈으로 토요타 자동차를 사고 대학(USC)에 입학했다. 졸업 후 첫 직장이 오라클이었다. 입사해서 처음 맡은 일은 무료 전화번호로 들어온 주문을 처리하는 것이었는데, 그의 실력은 금새 두각을 나타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래리 앨리슨이 아끼는 사람이 되었다. 23세에 Rookie of the Year (올해의 신입 사원) 상을 받았고 3년 후에는 임원(VP)이 되었다. 토요타는 버린지 오래고, 페라리를 구입한 후, 래리 앨리슨의 페라리보다 비싼 버전이라고 이야기했다. 오라클에 있는 동안 프리젠테이션에서 탁월한 기질을 발휘했으며, 애플 스타일의 제품 시연회를 열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샀다.

하지만, 워낙 튀는 스타일의 그에게는 회사 내에서 반대파가 많았다. “말만 잘하고 제품을 만들어 돈을 벌 줄은 모르는”사람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옆으로 밀려났고, 오라클의 주요 건물도 아닌, 길 건너편 빌딩에서 곁다리 프로젝트를 맡았다.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가 맡았던 프로젝트 중 하나가 오라클 브라우저였는데 지금은 아무도 존재했는지조차 모르는 제품이 되었다.

31세에, 그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부유했지만 방향을 잃었다. 6개월의 휴가를 얻어내어 하와이와 인도를 여행했다. 거기서 요가와 동양 종교를 배웠다. 돌아와서, 그는 회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를 신뢰했던 래리 엘리슨은 새로운 회사에 무려 $2 million (21억원)을 투자한 후 사외 이사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 회사가 모양을 갖추어가고 첫 고객이 생기자, 1999년에 그는 오라클에서 완전히 나와 자신의 회사에 전념한다. 이렇게 시작된 회사가 세일즈포스닷컴이다. 2000년에 $5 million의 매출을 올렸으며, 2002년에는 매출이 $52 million이 되었다. 2004년에는 IPO에 성공하며 $110 million의 . 10년 후, 그 매출은 $2 billion으로 불어났으며, 그의 개인 재산은 $2.2 billion (약 2.4조원)이 되었다.

오라클의 CEO 래리 앨리슨이 캘리포니아에 $100 million (1천억여원) 짜리 일본식 집을 지어 살고, 요트 경기에 $85 million을 쏟아부으며, 작년에 수천억원짜리 하와이의 섬을 산 데에 이어 이번에는 그 섬으로 비행기를 운항하는 항공사 Island Air를 사는 등 자신이 번 돈으로 맘껏 쓰고 즐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크 베니오프는 그가 원하는 곳에 돈 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 이야기로 유명한 션 파커와 함께 다보스 포럼 참석자들을 위한 성대한 파티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선 단체에 큰 돈을 기부해온 것으로도 유명한데, 2010년에는 자신의 아이가 태어난 샌프란시스코의 한 소아병원에 $100 million (천억여원)을 기부했다.

세일즈포스닷컴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 중 하나고, 많은 투자자들이 장미빛 미래를 예견하며 베팅을 하고 있지만, 위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기존 강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다. 오라클은 세일즈포스닷컴에게 CRM 분야 점유율 2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CRM의 클라우드 버전을 내놓았다. 게다가 오라클의 기업 가치는 세일즈포스닷컴의 7배인 $172 billion (약 180조원)이며, 현금 보유액이 수십 조원에 달해, Eloqua 등 세일즈포스를 위협할 수 있을 만한 회사들을 끊임 없이 인수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SAP도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의 성장을 넋놓고 보고만 있지는 않다.

게다가, 천문학적인 돈을 잃고 있는 세일즈포스닷컴의 주가는 거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올랐다.  여기에 위험 요소가 있다. 세일즈포스닷컴은 임원들에게 상당량의 주식으로 보상을 하고 있는데, 주가가 빠지기 시작하면 임원들의 연간 보수액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주요 인재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세일즈포스닷컴의 매출과 순익률 그래프 (출처: Forbes.com)

2008년 이후 세일즈포스닷컴의 매출과 순익률 그래프. 매출은 연간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2011년 중반부터 순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서, 최근에는 이익률이 무려 마이너스 28%에 달했다. (출처: Forbes.com)

나중에 어떻게 될 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투자자들은 당분간 세일즈포스닷컴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어쨌거나, 세일즈포스닷컴의 이야기는, 스타트업이 SAP, MS, 오라클과 같은 거대한 공룡을 공략하는 훌륭한 전략을 보여준다. 한 예로, 2005년에 만들어진 Worday라는 회사는 인적자원관리(Human Capital Management)분야에서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세일즈포스닷컴의 성공 전략을  그대로 따라하며 $10 billion (11조원)짜리 기업을 만들어냈다.

사람들 앞에 나서 자신의 비전을 소리질러 외치기 좋아하는 마크 베니오프의 카리스마적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비디오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2011년, 드림포스(Dreamforce) 컨퍼런스에서 키노트 스피커로 3만여명 앞에 서서 ‘소셜 엔터프라이즈’를 외쳤던 연설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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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런티어(Palantir), 테러리스트 색출을 도와주는 빅 데이터 분석 툴

작년 이맘 때에, ‘2012년 기술 트렌드‘라는 제목의 글을 여기에 올렸었다. 그 때 첫 번째로 꼽은 트렌드는 ‘빅 데이터’였는데, 정말 올 한 해는 빅 데이터의 해였다. 대용량 정보를 가공한다는 컨셉이나 기술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데이터를 저장하고 검색하고 처리하는 기술이 저렴해지면서 ‘빅 데이터’가 유행어로 떠오르고, 관련된 수많은 회사들이 투자를 받고 인수된 한 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소위 ‘빅 데이터’ 회사 중 내가 가장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곳은 팰런티어 테크놀러지(Palantir Technologies)이다. 팔로 알토 유니버시티 거리에 위치한 이 회사는 미국 중앙 정보부(CIA)로부터 $2 million(약 22억원)의 투자를 받아 시작되었으며, 창업자 중 한 명은 지난번 소개했던 “페이팔 마피아”로 유명한 피터 씨엘(Peter Thiel)이다. 창업 멤버들 중 일부가 페이팔(PayPal) 출신인데다 피터 씨엘 자신이 상당한 액수를 투자한 회사라는 점에서, 이 회사 역시 ‘페이팔 마피아‘에 의해 생겨났다고 이야기할만하다.

이 회사가 정말 재미있는 이유는, ‘빅 데이터’를 정말 흥미로운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CrunchBase의 프로필에 따르면, 그들은 고객들이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것을 돕고 있다.

  • How do you take down human trafficking networks? (인신 매매 조직을 어떻게 찾아내는가?)
  • How can you prevent fraud in Medicare? (국민 건강 보험 사기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 How can you help stop the genocide in the Sudan? (수단에서 벌어지는 대량 학살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 How can we help target gangs to end their violence? (어떻게 조직 폭력배를 찾아내는가?)

분명히 CIA 같은 기관이 관심을 보일 만한 주제들이다. 물론 CIA에서 그동안 자체적으로 개발해 온 기술이 있었겠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만든 이 소프트웨어를 따라갈 수는 없었나보다. 미국 정부가 주요 고객 중 하나이다. ‘Women in Tech’이라는 패널 토의에서, 카네기 멜론 대학을 다니면서 구글과 페이스북에서 인턴십을 마쳤다는 한 팔런티어 직원이 “이런 기술이 이미 정부에서 쓰이지 않고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른 기회를 마다하고 팔런티에어서 일을 하기 시작했죠.” 라고 했다. 한편, 몇 달 전에 칼트레인(Caltrain)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가다가 이 회사에 다니는 한 젊은 엔지니어를 만났는데, 정말 흥미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돕고 있는 중이라며 신이 나 있었다.

‘팰런티어(Palantir)’란, 원래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마법사 간달프가 사용하는 구슬의 이름이다. 반지의 제왕 3에서는 사우론에 의해 나쁜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왜 회사 이름을 그렇게 지었느냐는 한 인턴의 질문에, 피터 씨엘은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좋은 의도로 사용될 수도 있고, 나쁜 의도로 사용될 수도 있음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팔런티어(Palantir). 마법사 간달프가 사용하는 구슬

팔런티어(Palantir). 마법사 간달프가 사용하는 구슬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에 따르면, 이 회사에 지금까지 투자된 액수는 총 $301 million, 즉 3200억원에 달한다.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LinkedIn에 따르면 현재 직원 수가 500명이 넘는다.

팔런티어는 2009년-2012년에 걸쳐 총 $301M, 즉 약 33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팔런티어는 2009년-2012년에 걸쳐 총 $301M, 즉 약 33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무엇이 특이할까? 회사의 기술이 궁금해서 전에 1시간짜리 제품 데모를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이 만든 것은 기본적으로는 데이터 분석 툴이다. 다만, 1) 구조화된(structured) 데이터 뿐 아니라, 이메일, 트위터 타임라인 등 구조화되지 않은 데이터까지도 몽땅 통합해서 분석할 수 있다는 점, 2) 그리고 매일 축적되는 페타바이트(petabyte)단위의 데이터를 아주 빠른 속도로 찾아낼 수 있다는 점, 3) 그리고 대량의 데이터를 사람이 분석할 수 있도록 매우 다양한 그래프로 시각화하고 있다는 점 등이 차별점이다. 즉, 문제에 대한 해답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이 툴을 이용해서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한다는 데에 초점이 있다. 아래는 몇 개의 툴 스크린샷인데(출처: Palantir 블로그), 방대하고 복잡한 데이터를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시각화해준다.

pg-timefilter

Time Filtering

hh-dashboard

Financial Dashboard: 실시간 금융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줌

hh-prettyfilters

Instrument Groups

pg-flows

Flows: 객체들 사이의 자원의 흐름을 보여줌

약 열흘 전에 공개한 아래의 5분짜리 비디오를 보면 이 툴을 써서 어떻게 원하는 정보를 찾아낼 수 있는지 더 쉽게 이해가 된다. 의심이 가는 두 개의 IP 주소를 이용해서 데이터베이스에 침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내부 인물을 찾아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비디오를 보면, 데이터를 분석하고 찾아내는데 있어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사람이 원하는 모양대로 데이터를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숫자가 잔뜩 나열된 테이블은 컴퓨터에게 편리한 방식이지만, 사람에게 편리한 방식은 그래프이다. 즉, 시각화 기술이 중요하다. Palantir는 바로 그 점에 착안하여 제품을 만든다. 즉, Human-Computer Interaction에서 마찰(friction)을 줄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철학은, Palantir의 Director인 시암(Shyam Sankar)이 TED에서 했던 강연에서 잘 드러난다.

“The Rise of Human-Computer Cooperation”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그는 체스 시합 이야기로 시작한다. 2005년에 있었던 시합인데, 다음의 조합으로 서로 경기를 벌였다.

  • 수퍼 컴퓨터
  • 성능 안좋은 랩탑 하나 + 그랜드 마스터
  • 수퍼 컴퓨터 + 그랜드 마스터
  • 성능 안좋은 랩탑 세 개 + 두 명의 아마추어

어떤 조합이 이겼을까? 위에서 나열한 것이 역순위이다. 즉, ‘성능 안좋은 랩탑 세 개와 두 명의 아마추어’가 모든 다른 조합을 이겼다. 사람만이 아니고, 컴퓨터만이 아니고, 사람과 컴퓨터의 ‘공생(symbiosis)’이 가장 강력하다는 것이 시암의 주장이다.

2012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빅 데이터, 그리고 머신 러닝. ‘머신 러닝’이라는 말에서 주는 어감은,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해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사실 어떤 데이터를 이용해서 학습시킬 것인가, 그리고 어떤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학습시킬 것인가는 사람이 결정한다. 컴퓨터가 발전하고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언젠가는 기계가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이 오는 것을 상상하지만, 아직은 그런 날은 요원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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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랍박스(Dropbox), 가장 단순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가장 우아한 제품

드랍박스(Dropbox)가 지난 주에 또 하나의 회사, 스냅조이(Snapjoy)를 인수했다. Audiogalaxy라는 회사를 인수한 지 일주일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Snapjoy는 사진을 관리해주는 서비스인데, 카메라로 찍었든, 아이폰으로 찍었든, 아니면 다른 기기로 찍었든 모두 통합해서 한 화면에 보여준다. 지난 9월에 iOS용 앱을 내놓았는데, 유저 인터페이스가 좋아 테크크런치에 소개되기도 했다.

요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활발히 활용하는 사람치고 드랍박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난 11월 12일, 드랍박스의 창업자 드류 휴스턴은, 회사 블로그를 통해 드랍박스 사용자 수가 100 million (1억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이 블로그에서 그는 또한 드랍박스를 처음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Once upon a time, Dropbox had its humble beginnings in a Boston train station when I forgot my USB stick at home. We’re still unsure if it was fate or fluke, but one thing’s stayed the same all these years: each of us has a unique reason for using Dropbox. (옛날 옛적에, 보스턴의 한 기차역에서 USB 드라이브를 놓고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드랍박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위 글이 Once upon a time이라는 표현으로 시작되는 것이 재미있다. 지난번 썼던 ‘스토리가 중요한 이유‘에서 다른 사람에게 생각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Once upon a time으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서로 다른 기기 사이에서 파일을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인 Dropbox의 회사 가치는 작년에 $250 million (약 3천억원)을 투자받을 때 이미 4조원이 넘었으니, 현재 가치는 그 이상이다제품이 만들어진 지 4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고, 2011년의 매출이 $240 million (약 2800억원) 정도이며, 유료 버전 사용자가 전체의 4%밖에 안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좀 지나치게 높게 평가된 것이 아닌가 싶지만, 드랍박스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으며, 더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드랍박스 월간 방문자 수 증가 추이 (출처: Compete.com)

한때 USB 드라이브가 나에게 아주 편리하고 작은 저장 공간을 제공했지만, 드랍박스의 등장과 함께 골동품이 되었다. 최근 몇 달동안에는 일시적으로 큰 파일을 옮길 때를 제외하고는 USB 드라이브를 쓴 기억이 없다. 다른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공유할 필요가 있는 자료는 항상 드랍박스에 저장한다.

내가 파일을 동기화해주는 툴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은 2009년의 일이다. 그 때부터 맥북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한동안 맥북과 윈도우즈 랩탑을 동시에 쓰자니 파일을 옮기는 것이 불편했다. USB 드라이브도 있고, 구글 Docs (지금은 구글 Drive로 이름이 바뀌었다)도 있고, 파일 백업 서비스도 있고, 이메일로 파일을 보내 놓는 방법도 있었지만, 다들 조금씩 불편했다. 사실 대단한 불편은 아니었다. 1분도 걸리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매우 번거로웠다. 위에서 드류 휴스턴이 이야기한 것 처럼, USB 드라이브를 챙기는 것을 깜빡하거나 파일을 수정해놓고 잊어버리게 되기 쉬웠다.

파일을 쉽게 동기화해주는 툴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구글에서 검색을 해봤는데 AllwaysyncGoodsync 같은 서비스가 눈에 띄었지만, 딱히 맘에 들지 않았다. 그나마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공하는 SyncToy라는 툴이 마음에 들어 쓰기 시작했는데, 설정이 간단하지 않고 원하는 때에 바로 바로 동기화가 되지 않아 아쉬움을 느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일 동기화 소프트웨어, SyncToy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일 동기화 소프트웨어, SyncToy

그러다가 Dropbox의 탄생 소식을 들었다. 나와 똑같은 불편함을 느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써보니 너무 편리했다. 설치하고 나면 내 컴퓨터에 “Dropbox”라는 폴더가 하나 생긴다. 어떤 파일이든 그 폴더에 넣는 순간 서버와 동기화가 되고, 드랍박스가 설치된 다른 컴퓨터와도 즉시 동기화가 된다(놀랄만큼 빠르다). 귀찮게 최근 파일을 관리해야 하는 불편함이 완전히 사라졌다.

서로 다른 컴퓨터 사이에 파일을 동기화해주는 기술 자체가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Unix와 윈도우즈 컴퓨터에서 파일을 동기화해주는 RSync라는 소프트웨어가 1996년부터 존재했다. RSync에 기반을 둔, 사용하기 쉽게 만든 소프트웨어도 스무가지가 넘게 있었다. ‘바이너리 비교 방식’을 쓰는데, 파일 전체를 매번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부분만 찾아내어 업데이트하는 기술이다.

파일을 동기화해주는 각종 소프트웨어 (출처: Wikipedia)

파일을 동기화해주는 각종 소프트웨어 (출처: Wikipedia)

어떻게 보면 기술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지 4년만에 4조원이 넘는 기업 가치가 메겨지고, 1억 명 이상이 쓰는 소프트웨어가 되었을까?

첫째, 유저 인터페이스가 정말 좋았다. 기존의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특정 폴더를 동기화하기 때문에 어떤 폴더를 동기화하고 싶은지 설정하는 과정이 있었다. 아주 간단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설정’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잡하게 느껴찌는 과정이다. 드랍박스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설치하면 ‘내 문서’ 아래에 새로운 폴더가 생기고 그 다음부터는 파일을 그 폴더에 드랍(Drop)하면 끝이다. 이보다 더 쉬울 수 있을까? 게다가 동기화가 끝난 파일이나 폴더에는 이쁘게 ‘체크’ 표시가 되어, 내 파일이 확실하게 서버에 저장이 되었는지 즉시 알 수 있었다.

드랍박스를 설치하고 나면 생기는 새로운 폴더, "My Dropbox"

드랍박스를 설치하고 나면 생기는 새로운 폴더, “My Dropbox”

둘째, 윈도우즈, 리눅스, 유닉스 컴퓨터 사이에 파일 동기화해주는 소프트웨어는 많았지만, 드랍박스만큼 모든 스마트 기기를 함께 지원하는 서비스는 없었다. 2008년부터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고, 사진, 음악, 문서들을 여러 기기에서 동시에 접근하고 싶어했다. 애플 제품만 쓰는 사람이라면 돈을 내고 MobileMe와 같은 서비스를 쓰면 되겠지만, 다양한 기기를 쓰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셋째, 무료였다. 기존의 소프트웨어는, 무료이면 사용하기 불편하고, 사용하기 편리하면 월 정액을 내야 했다. 드랍박스는 2기가바이트까지의 저장 공간을 무료로 제공했다. 그래서 다른 소프트웨어보다 더 빨리 퍼지고 대중화될 수 있었다.

이 모든 장점을 가진 소프트웨어가 당시에 Dropbox만 있었을까? 분명히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을 것이고, 경쟁 서비스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Dropbox는 빨리 퍼졌다. 사람들의 눈에 더 많이 띄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가입했다. 거기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무엇보다, 이름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서비스들은 “sync(동기화)”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게 컴퓨터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용어이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말은 아니었기에 기억하기 쉽지 않고 바로 감이 오지 않는다. 드랍 박스(drop box)는 원래 우체국이 문을 닫은 시간에도 소포를 보낼 수 있도록 우체국 앞에 설치해놓은 통을 의미한다. 드랍박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우체통이 생각나고, 자신의 파일을 그 ‘드랍 박스’에 던져 놓으면 끝이라는 장면이 연상된다.

미국 우체국에서 거리에 설치해놓은 드랍 박스 (Drop box)

미국 우체국에서 거리에 설치해놓은 드랍 박스 (Drop box)

둘째, Y 컴비네이터(Y Combinator)의 역할이 컸다. Y Combinator에서 투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  2012년 4월 기준으로, Y Combinator에서 투자한 회사의 총 기업 가치가 $7.8 billion (약 9조원)이라고 하니, 폴 그래함(Paul Graham)이 만든 이 스타트업 인큐베이터가 실리콘밸리에 미친 영향은 여기에서 굳이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드류 휴스턴이 회사를 처음 시작할 때 Y Combinator에 지원했으며, 지금 Dropbox는 Y Combinator가  투자한 300개가 넘는 스타트업들 중 가장 성공적인 회사로 꼽힌다. 지금부터 4년 전인 2007년 4월에 드류 휴스턴이 Y Combinator에 냈던 신청서의 내용이 참 재미있다. 몇 개 아래에 인용해 보겠다.

# What is your company going to make?  (만들려는 것이 무엇인지?)
Dropbox synchronizes files across your/your team’s computers. It’s much better than uploading or email, because it’s automatic, integrated into Windows, and fits into the way you already work. There’s also a web interface, and the files are securely backed up to Amazon S3. Dropbox is kind of like taking the best elements of subversion, trac and rsync and making them “just work” for the average individual or team. Hackers have access to these tools, but normal people don’t. (드랍박스는 서로 다른 컴퓨터 사이에서 파일들을 동기화합니다. 모든게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당신이 작업하는 방법을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업로드하거나 이메일을 쓰는 것보다 낫지요. Subversion, Trac, Rsync를 모두 합쳐 가장 좋은 점들을 뽑아, 일반적인 사람들이 쓸 수 있게 만든 제품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도구들을 쓰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요)

# If one wanted to buy you three months in (August 2007), what’s the lowest offer you’d take?   (3개월 후인 2007년 8월에 매수 제의를 한다면, 최소 얼마이면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가?)
I’d rather see the idea through, but I’d probably have a hard time turning down $1m after taxes for 6 months of work. (이 아이디어가 어디까지 가는지 보고 싶기는 하지만, 6개월 작업한 것에 누가 $1 million (11억) 을 주겠다고하면 거절하기 힘들겠지요.)

# Please tell us something surprising or amusing that one of you has discovered. (당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 한가지를 말해보라)
The ridiculous things people name their documents to do versioning, like “proposal v2 good revised NEW 11-15-06.doc”, continue to crack me up. (사람들이 문서 버전 관리를 위해서 “proposal v2 good revised NEW 11-15-06.doc”와 같이 복잡한 파일 이름을 붙이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와요.)

드랍박스의 공동 창업자, 아라시 페르도시 (Arash Ferdowsi). (출처: Forbes)

SAT에서 만점을 받은 후 MIT에서 공부했고, 5살 때부터 컴퓨터를 다루었으며, 전에 스타트업을 만든 경험이 있다는 것을 내세운 강력한 신청서였지만, 폴 그래함은 그것으로는 부족하며, 꼭 공동 창업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친구의 추천을 받아, 이란계 부모에게서 태어난 또 다른 MIT 학생 아라시 페르도시(Arash Ferdowsi)를 만났다. 두 번째 만남에서 그들은 소위 ‘결혼을 했고’, 아라시는 졸업을 6개월을 남기고 학교를 중퇴했다. 폴은 15,000달러를 투자했고, 그들은 실리콘밸리로 이사했고, 드랍박스가 시작되었다[주: Forbes].

셋째,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드랍박스를 추천하면 용량을 추가로 주는 마케팅을 했었다. 2GB까지 공짜이고 그 이상을 쓰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드랍박스 가입을 추천해서 가입이 되면 양쪽 모두에 250메가 바이트의 용량을 준다. 나도 이것 때문에 몇 명에게 추천을 했었고, 그 덕분에 무료로 쓸 수 있는 용량이 늘어났다. 고객들 스스로가 판매 사원이 되었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 한 후 15개월이 지나자, 사용자 수는 1만명에서 4백만명으로 늘어났다. 지금도 상당수의 사용자들이 (30% 이상) 이렇게 해서 유입된다고 한다.

넷째, 드루 휴스턴의 유머 감각으로 만든 최소 가능 제품 (Minimal Viable Product, MVP) 덕분이었다. 이와 관해 작년에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글이 하나 있는데, 실리콘밸리에서 바이블처럼 여겨지는 책 “린 스타트업 Lean Startup”의 저자 에릭 리스(Eric Ries)가   “드랍박스 최소 가능 제품 Dropbox Minimal Viable Product“라는 제목으로 테크크런치에 기고한 것이다. 에릭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Houston learned this the hard way when he tried to raise venture capital. In meeting after meeting, investors would explain that this “market space” was crowded with existing products, none of them had made very much money, and the problem wasn’t a very important one. Drew would ask: “Have you personally tried those other products?” When they would say yes, he’d ask: “Did they work seamlessly for you?” The answer was almost always no. Yet in meeting after meeting, the venture capitalists could not imagine a world in line with Drew’s vision. Drew, in contrast, believed that if the software “just worked like magic,” customers would flock to it. (휴스턴은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하면서 어렵게 배웠다. 계속되는 미팅 속에서, 투자자들은 시장이 기존 제품들로 포화되어있고 그 제품들 중 돈을 많이 버는 회사는 없으며, 해결하려는 문제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드류는 물었다. “그 다른 제품들을 써봤나요?” ‘예’라고 대답하면 그는 또 물었다. “부드럽게 작동하던가요?” 그 대답은 항상 ‘아니오’였다. 그렇지만, 벤처캐피털리스들은 드류가 가진 비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드류는, 소프트웨어가 ‘마법처럼 작동하면’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서, 드류가 한 일은 비디오를 만드는 것이었다. 제품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프로토타입을 이용해서, 그는 드랍박스를 이용하면 왜 USB 드라이브가 필요 없게 되는지, 윈도우 PC와 맥 사이에 파일이 얼마나 부드럽게 동기화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자기가 직접 이야기를 하며 제품을 설명하는데 보고 있으면 빨려들어간다. 아래는 그 비디오이다.

이 비디오에 그는 얼리 어답터들만 이해할 수 있는 유머를 집어 넣어 Digg.com에 올렸고, 수십만명이 방문하게 되면서 75,000명이 베타 사용자가 되기 위해 이메일 주소를 남겼다. 이 사례는 Startup Lessons Learned (스타트업 교훈)에서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해졌고, ‘린 스타트업’ 원칙을 적용한 가장 훌륭한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며, 지금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비슷한 방법을 쓰고 있다. 이것은 그 때 드류가 발표한 슬라이드이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드랍박스 탄생 이야기, 그리고 드류 휴스턴의 이야기는 2011년 10월에 포브스(Forbes) 지에 빅토리아(Victoria Barret)에 의해 커버 스토리로 소개되면서 유명해졌다.

2011년 10월 포브스(Forbes) 지에 커버 스토리로 소개된 드랍박스와 창업자 드류 휴스턴

꽤 긴 기사인데, 시간을 들여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몇 단락만 소개해보겠다. 첫 번째는 스티브 잡스와 드류 휴스턴이 만난 장면이다.

Jobs presciently saw this sapling as a strategic asset for Apple. Houston cut Jobs’ pitch short: He was determined to build a big company, he said, and wasn’t selling, no matter the status of the bidder (Houston considered Jobs his hero) or the prospects of a nine-digit price (he and Ferdowsi drove to the meeting in a Zipcar Prius). (스티브 잡스는 드랍박스가 애플에게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임을 예지했다. 그러나 휴스턴은 잡스의 말을 끊었다. 그는, 큰 회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상태이며, 어떤 사람이 어떤 가격에 제시를 하든 팔지 않겠다고 했다. 심지어 제시 가격이 수조원 대라도.)

이 일이 있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애플은 아이 클라우드(iCloud)를 발표했다. 드류 휴스턴이 바짝 긴장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드랍박스는 여전히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 다음은 2008년에, 드랍박스가 추가 투자를 받기로 결정했을 때의 일이다.

He invited seven of the Valley’s elite venture firms through Dropbox’s San Francisco digs over a four-day stretch, and asked them for offers by the following Tuesday. Only one came back to him quickly. Just before midnight the eve offers were due, Dropbox’s head of business development—a former venture capitalist —suggested Houston either delay the round or even pull it. Houston’s reply: “We said Tuesday. It isn’t Tuesday.” Sure enough, every firm came back interested the next morning. (그는 4일에 걸쳐 실리콘밸리의 엘리트 벤처 캐피털 7개를 드랍박스의 샌프란시스코 사무실로 초대했다. 그리고 그 다음주 화요일까지 조건을 제시하라고 했다. 그 중 한 곳만 바로 연락이 왔고, 나머지 회사들은 월요일 자정까지 소식이 없었다. 전에 벤처 캐피털리스트로 일했던 드랍박스의 한 직원이, 좀 미루든지 취소하자고 했다. 휴스턴은 대답했다. “화요일이라고 했잖아요. 아직 화요일이 안됐어요.” 그 다음날 아침, 7개 회사 모두가 투자하겠다고 찾아왔다.)

이렇게 해서, 드랍박스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회사들 – Index Ventures as lead, Sequoia, Greylock, Benchmark, Accel, Goldman Sachs and RIT Capital Partners – 로부터 $250 million (3천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기업 가치는 $4 billion (4.4 조원)이었다.

기사에는 드류 휴스턴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나온다.

His father is a Harvard-trained electrical engineer; his mother, a high school librarian. Growing up in suburban Boston he began tinkering at age 5 with an IBM PC Junior. His mother, correctly deducing that her son was becoming a code geek, made him learn French and hang out with the jocks, and refused to let him skip a grade. During summers in New Hampshire she took away his computer, even as he griped about being bored in the woods. (드류 휴스턴의 아버지는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은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고등학교 도서관 사서였다. 보스턴 교외 지역에서 자라며, 그는 5살 때 IBM PC 주니어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컴퓨터 광이 될 것을 우려한 어머니는, 그에게 프랑스어 공부를 시키고,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이 놀게 시켰다. 한때 컴퓨터를 빼앗기도 했다.)

그러나 드류 휴스턴은 컴퓨터, 그리고 프로그래밍에 더욱 빠졌다. MIT에 진학한 후 코딩에 시간 전부를 쏟았다. 그는 회사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몇 달 뒤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가는 4시간짜리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작업하려고 준비해뒀는데 USB 메모리를 챙기는 것을 잊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드랍박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떤 제품을 만들든지, 시장에 나가는 순간, 어쩌면 나가기 전부터도 매우 치열한 경쟁을 맞이한다. 이미 비슷한 제품이 수없이 나와 있는 경우도 많고, 경쟁자가 재빨리 모방해서 시장을 잠식하기도 한다. Dropbox의 사례를 보며,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아 승자가 되는 과정을 배우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애플 모두 이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드랍박스를 모방한 제품들(구글의 GDrive, 마이크로소프트의 SkyDrive)이 많이 나와 있지만, 드랍박스는 이미 1억명의 고객들로부터 강한 신뢰를 구축한 상태이다. 실제로, 내가 드랍박스를 사용한 지난 3년 동안, 단 한번도 문제가 생기거나 제품이 잘 동작하지 않아 불편을 겪었던 적이 없었다. 큰 회사들의 끝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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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롤링(Carl Rohling)에게 듣는 인터넷 라디오 TuneIn의 성공 스토리

인터넷 라디오 TuneIn(튠인). 지난 8월 6일, General Catalyst Partners가 리드하는 $16M(약 180억원)의 펀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매달 4천만명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번 펀딩에는 구글 벤처스 및 저명한 실리콘밸리 벤처 캐피털인 시콰이어 캐피털(Sequoia Capital)도 참여했는데, 시콰이어 캐피털은 이전 라운드에서 이미 $6M의 투자를 한 바 있다. 그 덕분인지 요즘 TuneIn 광고가 많이 보인다. 고속도로 101(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를 잇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도로)을 타고 가다 보면 길가에서 TuneIn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지난 7월 24일에는 테슬라의 새로운 모델인 Model S에 튠인을 탑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인터넷 라디오, TuneIn(튠인)

TuneIn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약 1년 반 전부터였다. 원래 지인을 통해 처음 들었는데, 작년 여름에는 이 회사에서 거의 매달 BBQ를 주최하길래 거기 갔다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처음엔 인터넷 라디오라길래 사실 좀 시시하게 생각했다. 5년 전 Winamp가 MP3 플레이어 중 가장 있기있었던 시절에 인기가 있던 게 인터넷 라디오였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iTunes에서 음악을 사고 Pandora Radio로 개인 취향에 최적화된 음악을 들으며 Spotify로 친구들이 듣는 음악을 발견하는 시대에 라디오라니? 시대를 역행하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누가 과연 스마트폰으로 라디오를 듣나 했다.

그러던 중  몇 달 전의 일이다. 미국 NBA계에 제레미 린이 등장했다. 당시에 열심히 경기를 따라가던 때라 제레미 린이 뉴욕에서 경기하는 것을 중계로 듣고 싶었으나 지역 라디오에서는 중계하는 곳이 없었다. TuneIn에서 Jeremy Lin이라고 검색해 봤다. 그랬더니 즉시 뉴욕 지역 라디오에서 뉴욕 닉스의 경기를 중계하는 라디오 스테이션이 나타났다. 이를 클릭했더니 바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스포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앱이 상당히 유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TuneIn에서 Jeremy Lin을 검색한 결과

현재 뉴욕에 거주중인 TuneIn의 사업 개발 총 책임자, Carl Rohling(LinkedIn)이 마침 팔로 알토 본사에 방문했기에 그를 만나러 갔다. 하수 배관 회사(Plumbing & Heating)를 그대로 쓰고 있는 사무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앞에서 봐서는 아주 작은 규모인가보다 했는데 안쪽으로 꽤 큰 공간이 있었다.

팔로 알토에 위치한 TuneIn 본사. 원래 하수 & 배관 회사(Plumbing)였던 사무실을 쓰고 있다.

TuneIn 사무실 내부

칼 롤링 (Carl Rohling), TuneIn에서 사업 개발 및 제휴를 담당하고 있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이다.

Sungmoon: 간략하게 지금까지 온 길을 소개해주세요.

Carl: 법대를 졸업하고 1996년에 변호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이 되자, 수많은 Tech 회사들이 IPO를 하기 시작하더군요. 정신 없는 시기였죠. 재미있었어요. 하루 아침에 벼락 부자가 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다가 Tech 회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러던 중 제가 맡았던 회사 중 하나인 Portal Wave에서 저를 사업 개발 담당자로 고용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로펌에서 일하다가 기업으로 옮긴다는 것은 진로를 역행하는 결정이었고, 게다가 대기업도 아닌 스타트업인지라 연봉도 많이 희생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어보여서 한 번 해보기로 했지요. 그것이 전환점이 되었어요. 그 이후에 Sonicblue, Creative Labs, PassAlong Networks 등의 테크놀러지 회사에서 사업 개발 이사로 경험을 쌓다가 RadioTime(훗날 TuneIn으로 이름이 바뀜)의 창업자인 Bill Moore를 만났습니다. Bill의 아이디어는 라디오를 위한 Tivo(주: TV에서 방송되는 내용을 예약 녹화하고, 일시 정지시킬 수 있게 해주는 기기)였어요. Tivo가 성공하는 것을 목격했고, 이런 것이 라디오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재미있었어요. TV는 언제 어떤 프로그램이 시작되는지 알 수 있는데 라디오는 그런 게 없잖아요? 라디오를 위한 프로그램 가이드, 그래서 원하는 방송을 검색할 수 있고, 예약 녹음도 할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곧 팀에 합류했고 그 이후 여기까지 왔습니다.

Sungmoon: 본사는 팔로 알토에 있는데 뉴욕에서 일하고 있네요?

Carl: 사실 캘리포니아에서 잠시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뉴욕이 좋아 다시 뉴욕으로 옮겼어요. 뉴욕엔 다양성이 있어요. 물론 이 곳에도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지만, 뉴욕에 비교할 수 없죠. 뉴욕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쯤은 들르는 곳이에요. 특히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일로 방문하는 곳이지요. 카페에 앉아 있기만 해도 다른 나라와 도시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요. 한 번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가 친해졌는데, 몇 달 후에 그 사람이 프랑스로 돌아간 이후에 파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저희 가족을 초대했어요. 그런 일이 수없이 일어나는 곳이 뉴욕이고, 저는 그런 뉴욕이 좋습니다.

Sungmoon: TuneIn 이야기를 해 보죠. 이걸 써보면서 어떻게 구현했는지 궁금했어요.

Carl: 사실 라디오 스트리밍이 핵심 기술은 아니에요. 요즘은 대부분의 방송국에서 스트리밍용 URL을 제공해요. 그런 것을 모두 모아서 제공하는 서비스들도 있지요. 라디오 프로그램을 데이터베이스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검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희 기술의 핵심이죠. 예를 들어, Rhianna의 노래를 듣고 싶으면 그 이름으로 검색하면 됩니다. 그러면 지금 그 가수의 노래가 막 시작된 라디오 방송국을 찾아줍니다. 최신곡을 듣고 싶을 때 특히 유용해요. 최신곡의 경우 수많은 방송국에서 계속해서 틀어주거든요.

Sungmoon: 저는 사실 회사의 역사가 이렇게 길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2, 3년쯤 된 스타트업이겠거니 했거든요.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죠? 회사의 전환기라고 하면 언제인가요?

Carl: 앞서 말씀드렸듯, 원래 회사 이름은 RadioTime이었습니다. 2002년에 회사가 설립됐어요. 제가 합류한 것은 2006년이었구요.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기 훨씬 전이지요. 저희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고, 각 방송사와 계약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에 하드웨어 회사와 계약해서 ‘인터넷 라디오’가 세상에 나오도록 하는 것이 사업 모델이었습니다. 여러 오디오 회사와 계약했죠. 인터넷 라디오가 팔릴 때마다 저희에게 로열티를 주는 모델이었어요. 어느 정도 사업 모델은 되었지만 큰 돈이 될 정도는 아니었죠.

TuneIn의 전신인 RadioTime의 기술이 탑재된 인터넷 라디오들

인터넷 라디오이므로 이와 같이 랜선을 꽂아야 한다.

라디오, DVD 플레이어, 텔레비젼 등 수많은 기기에 저희 기술이 탑재되었지만 큰 히트를 친 제품은 많지 않았어요. 한 두가지 제품은 히트를 쳤지요.

그러다가, 저희가 가진 API를 무료로 오픈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개발자들이 저희 API를 이용해서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한 개발자가 만든 TuneIn Radio이라는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이 앱스토어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을 목격했어요. 그 회사를 인수했죠. 그것이 저희 회사의 전환점이었어요.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등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용자가 급격히 늘었어요. TuneIn Radio를 처음 만들었던 개발자는 1년여 정도 있다가 회사를 나가 또 다른 것을 만들고 있구요.

지금은 많은 방송국과 파트너십을 맺었고, 전 세계의 방송을 검색하고 들을 수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 자국의 라디오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 다른 도시에 가서 자신의 도시에 있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장거리 운전을 하는 사람들 등에게 TuneIn은 매우 적합한 서비스죠. 지금도 TuneIn에 새로운 기능을 계속해서 추가하고 있어요. TuneIn의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 흥분됩니다.

TuenIn 을 이용하면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한국 라디오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

인터넷 라디오 TuneIn, 이제 나도 고객이 되었다. 1월 20일에 3천만명의 유저가 사용하고 있다고 발표한 후 불과 반년만에 4천만명이 사용하는 서비스가 되었고, 이 숫자는 1년 전 이용자 수의 두 배가 넘는다. 사용자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포착한 것이다.

유투브, 판도라 등 인터넷 기반 서비스의 인기와 함께 사실 많은 라디오 방송국들은 힘을 잃었다. TuneIn의 등장이 그것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한 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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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Hack 데모 데이

어제 저녁, 흥미로운 이벤트에 다녀왔다. AngelHack National Demo Day라는 것인데, 미국 전역에서 해커톤을 통해 선발되고 우승한 팀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발표를 하는 자리였다.

해커톤(Hackerthon): Hacker와 Marathon의 합성어. 즉 해킹을 마라톤으로 한다는 건데, 보통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해서 팀을 짜서 일요일 저녁까지 3일만에 제품을 만들고 이를 발표하는 행사를 의미한다. 실리콘밸리에서 거의 매주 이런 행사를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실리콘밸리에 살면 홍수라고 할 만큼 이런 이벤트가 주변에서 많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스타트업 관련 행사가 거의 매일 열리는데, 대부분은 컨퍼런스 형식이다. 유명한 투자자나 창업자들을 초대해서 그들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고, 답변을 한다. 한편, 스타트업들이 나와 데모를 하는 이벤트도 많이 가보았는데, 사실 그런 데모는 테크크런치 읽으면서도 주욱 볼 수 있는 것이고, 가면 창업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해도 시간 효율성 면에서 그렇게 좋지가 않아 몇 번 가다가 요즘엔 좀 시들해진 참이었다.

어제 갔던 AngelHack은 그런 행사에 다시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재미있는 이벤트였다. 발표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각 발표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밤 12시까지 이어진 네트워킹 이벤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테크크런치 기자인 Anthony Ha도 처음 만나 알게 되었다.

해커톤을 통해 나온 제품인 만큼, 대부분 학교에 다니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저녁과 주말을 이용해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높아 인상적이었다. 어제 보았던 몇몇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소개한다.

Stayover (http://angelhack3.hackathon.io/teams/view/356)

호텔 리뷰 사이트이다. 유저 리뷰 대신 다양한 신문과 잡지 등에 실린 전문가들의 리뷰의 글들을 종합하고 알고리즘을 이용해 분석해서 점수와 순위를 보여준다. 나는 전문가 리뷰보다는 집단 지성을 더 믿기 때문에 여전히 Tripadvisor가 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에 이런 멋진 사이트를 만들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WakieTalkie (http://wakietalkie.com/)

항상 같은 알람 소리를 들으며 아침에 잠에서 깨는 것이 힘들고 지겨운가? WakieTalkie에 가입해서 아침에 일어나고 싶은 시간을 설정해두면 그 시간에 알람을 맞춘 사람들끼리 서로 전화로 연결해준다. 아침에 일어나서 낯선 사람과 통화하고 인사하다 보면 기분 좋게 잠을 깰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이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가입했더니 오늘 아침 7시에 정확히 전화벨이 울렸다. 연결된 사람은 르돈도 비치(Redondo Beach)에 사는 발랄한 목소리의 여자였다. 어제 밤에 UStream으로 Angelhack 행사를 보다가 가입했다고 했다. 나도 한 때 LA에 살았었고, 르돈도 비치에서도 잠시 살았던 적이 있어서 옛 생각이 나기에 서핑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끊었다. 내일 아침엔 또 누구와 연결될까? 기대된다.

ShareBrowse (http://sharebrowse.com/)

부모님,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터넷을 가르쳐 주다가, 또는 인터넷의 정보를 찾아주다가 속이 터진 적이 있는가? 난 있다. ShareBrowse는 그것을 해결해주는 서비스이다. 화면을 공유하는 서비스야 무척 많다. 그렇지만 양쪽 다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설정도 몇 단계인데다 어떤 때는 잘 되지도 않아서 셋업하다가 시간이 다 가는 경우가 있다. ShareBrowse는 정말 간단하다. 설치가 필요 없이, 세션을 시작한 후 링크 하나만 상대방에게 보내면 즉시 브라우저가 양쪽에 공유된다. 커서를 움직이는 게 상대방에게 보이고, 링크를 클릭하면 양쪽에서 페이지가 바뀌고, 스크롤하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보인다.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을 발표한 라피(Raphie)가 15살 고등학생이라고 해서 모두들 깜짝 놀랐다. 게다가 낮에는 인턴십을 하면서 2주만에 만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을 더 놀라게 했다.

ShareBrowse 실행 화면

ShareBrowse를 만든 15세 고등학생 라피 (Raphie). 현재 스타트업에서 인턴중이라고 함.

MailMoat (https://mailmo.at/)

구글 출신 엔지니어 두 명의 인상적인 팀이었다. Sandeep Jain은 카네기 멜론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고, Jonathan Kennell은 MIT에서 컴퓨터 공학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요즘 이메일에 들어 있는 내용을 추출하고 분석해서 의미 있는 정보를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많이 나와 있다. TripIt이 대표적인데, 이메일 계정을 입력하면 항공편 예약 정보를 추출해서 내 여행 일정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보여주고, 아이폰으로도 항상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내 이메일 주소와 암호를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MailMoat는 이메일에 OAuth를 적용해서, 개발자들이 지정된 이메일만 선택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사용자도 어떤 정보가 넘겨지는지를 제어할 수 있게 한다.

Fly.io (http://angelhack3.hackathon.io/teams/view/441)

오직 눈알을 움직이는 것과 깜빡임만을 이용해서 화면 위의 커서를 조작할 수 있게 한다. 앞에 나와 데모를 했는데, 꽤 정교한 조작이 가능했다. 신체를 이용해서 커서를 움직이는 기술은 다양하게 나와 있는데, 오직 눈만을 이용해서 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창업자 중 한 명인 Ritik Malhotra는 UC 버클리 대학 학생인데, 이전에 ‘페이팔 마피아‘글에서 소개 했던 피터 씨엘의 20/20 프로그램에 선정되었기에 지금은 휴학한 상태라고 했다.

이번 행사의 최종 우승은 Appetas와 GiveGo에게 돌아갔다.

Appetas (http://appetas.com/)

클릭 몇 번이면 레스토랑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게 해 주는 서비스이다. 꽤 괜찮은 웹사이트 하나가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위치를 구글 맵으로 보여주고, 리뷰도 포함된다. 물론 기호에 맞게 커스터마이징도 가능하다.

GiveGo (http://givego.co/)

운동을 통한 기부 캠페인을 아주 쉽게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이다. 이런 방식의 캠페인은 미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방암 퇴치를 위한 마라톤’을 하기로 했다고 하자.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마라톤에서 달리겠다는 서약과 함께 주변 사람들에게서 기부금을 모은다. 이렇게 해서 모은 돈은 유방암을 연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에게 전달된다.

GiveGo를 이용하면, 꼭 마라톤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이런 캠페인을 쉽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참여시킬 수 있다. 캠페인을 시작하면 페이스북에 뜨고, 참여하기 원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2마일 달릴 때마다 1달러를 기부하겠다’는 식으로 서약할 수 있다. 이렇게 한 후 달리면 된다. Strava와 같은 앱과 연동이 되어, 얼마나 달리는지는 자동으로 측정이 된다. 그 사람이 20마일을 달리면 10달러의 기부금이 모이는 것이다.

녹화된 행사 전체를 아래에서 비디오로 볼 수 있다.

  • 파트 1
  • 파트 2 (앞서 설명했던, 15세 고등학생이 자신의 제품을 발표하는 장면이 44:30 지점부터 나온다)
  • 파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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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파워 그룹, 페이팔 마피아 (2)

이전 글에 이어, 이번에는 페이팔 마피아의 주요 멤버들과 그들이 한 일을 소개한다.

1. 피터 씨엘(Peter Thiel)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 피터 씨엘(Peter Thiel)

앞의 글에서 설명했듯이, 그는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였다. 페이팔이 이베이에 매각되던 시점에 $68 million (약 800억원) 정도를 벌었다(이 자체는 아주 큰 액수는 아니다). 그가 한 중요한 역할 덕분에 그는 마피아의 ‘대부’라 불리기도 한다.

2004년 8월, 마크 저커버그가 투자를 받기 위해 찾아왔을 때 50만 달러를 투자해서 당시 10%의 지분을 확보했고(이 장면은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도 등장한다: 유투브 비디오), 그 주식은 현재 시가로 2조원어치가 넘는다[]. 또한 파운더 펀드 The Founders Fund 라는 스타트업 투자 회사를 만들어 이 회사를 통해 Quantcast, Yelp, Slide, LinkedIn, Palantir 등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성공적인 회사에 투자했다. 지금은 또한 자산 규모가 2.2조원에 달하는 헷지 펀드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20 under 20″라는 씨엘 펠로우십 Thiel Fellowship 프로젝트이다[참고: 비즈니스 인사이더]. 대학생들만 지원할 수 있으며, 이 프로그램에 선정되면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하는 조건으로 무려 10만 달러(1억원)를 투자받는다. 2011년에 1기, 2012년에 2기 24명이 선정되었는데, 엊그제는 1기 중 한 명이 만든 회사가 성공적으로 엑싯(exit)했다는 기사가 테크크런치에 실렸다.

씨엘 펠로우십 2012년 최종 선정자들. 이들은 학교를 중퇴하고 사업을 시작하는 조건으로 각자 10만 달러를 받게 된다.

2. 맥스 레브친(Max Levchin)

맥스 레브친

페이팔의 핵심 기술을 만든 천재 엔지니어이다. 일리노이 공대 출신의, 현재 36살의 그는, 페이팔 매각 후 회사를 나와 Slide.com을 만들었고, 이를 구글에 $182 million (약 2000억원)에 매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구글의 실패한 인수 사례로 인용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옐프(Yelp)에 무려 $1 million (약 11억원)을 투자했는데, 훗날 옐프가 상장하면서 큰 이익을 거두었다. 그 외에도 핀터레스트(Pinterest), 유누들(YouNoodle), 위페이(WePay) 등 10개가 넘는 회사에 투자했다. 현재는 Kaggle이라는 대용량 데이터 분석 회사의 Chairman이다[].

3. 엘론 머스크(Elon Musk)

엘론 머스크(Elon Musk)

엘론 머스크만큼 자신의 꿈에 ‘무식할 만큼’ 매진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사실 그는 페이팔에서 밀려났던 사람이다. 자신이 세웠던 인터넷 은행 X.com과 피터 씨엘과 맥스 레브친이 세운 회사 컨피니티 Confinity 가 합쳐져 새로 만들어진 회사 페이팔의 CEO가 된 이후, 페이팔이 윈도우즈 시스템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맥스와 큰 충돌을 일으켰다. 결국 맥스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이후 페이팔을 떠났다. 맥스 또한 그 갈등 때문에 회사를 떠날 생각까지 했었다고 회상한다(주: Founders at Work).

페이팔을 떠난 후 그가 세운 회사는 전기 자동차 회사 테슬라 모터스(Tesla Motors)이다. 디자인이 너무나 멋진 10만 달러짜리 전기 자동차 테슬라. 누구나 그 차를 보면 군침을 흘리지만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차 가격도 차 가격이지만, 전기 충전소가 많지 않아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 테슬라는 보다 저렴한 (6만 달러) 모델인 Model X를 내놓았고, 지금은 전기 충전 스테이션을 여기 저기서 흔히 찾을 수 있으며(샌프란시스코 시내 전역과 주차장에서 무료 충전 스테이션을 찾을 수 있다), 닛산에서 만든 전기 자동차, LEAF도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 자동차, Model X

경기 하강과 함께 엄청난 적자가 나는 것을 보고, 저러다 회사 망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실제로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다임러 Daimler 의 투자, 주식 상장과 미국 정부의 대출 덕분에 살아났다고 한다). 하지만 테슬라는 지금 전기자동차의 대명사가 되었고, 미국 주요 도시에서 전시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그의 이름이 다시 회자된 것은 SpaceX라는 거대한 민간 우주선 프로젝트 때문이다. 수년이 지난 후, 그의 프로젝트는 멋지게 성공했고, 미국 우주선 개발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한때 전 인류에게 꿈을 안겨 주었던 NASA는 이제 한 물 갔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는 트위터 계정의 프로필 사진을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으로 설정해 놓았는데, 마치 ‘나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의미하는 듯하다.

엘론 머스크의 트위터 계정 (@elonmusk).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 놓았다.

4. 스티브 챈(Steve Chen)과 채드 헐리(Chad Hurley)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두 사람이다. 페이팔의 엔지니어였던 그들은 회사를 나가 유투브를 만들었으며, 이를 구글에 $1.6 billion에 매각했다. 페이스북 초기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페이스북 이펙트”에 따르면, 스티브 챈은 유투브를 창업하기 직전 페이스북의 엔지니어로 일했었다. 요즘은 무얼 하는지 조용한데,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나온 뉴스를 보니 딜리셔스 회생시키려 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회사를 구글에 매각한 직후 스스로 찍었던 짧은 동영상이 유투브에 올라가 있다. 행복함을 애써 감추려는 듯한 표정이다.

5. 리드 호프만 (Reid Hoffman)

리드 호프만 (Reid Hoffman)

이 사람을 빼놓고 실리콘밸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종종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넓고 깊은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으로 인용되는데, 링크트인 창업자이기 이전에 페이팔의 고위 임원(EVP)이었고 투자가였다. 그가 지금까지 투자한 50개 이상의 회사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다(참고: CrunchBase 프로필). 피터 씨엘과 함께 매우 초기에 페이스북에 투자하면서 페이스북 성공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많이 했었다.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성공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존경을 받는 것 같다. 최근 그가 쓴 책, ‘The Startup of You(당신이라는 스타트업)‘을 읽었는데, 거기서 자신의 네트워킹 스토리와 함께 페이스북에 투자했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2004년 당시 마크 핑커스(Mark Pincus)와 친하게 지냈었는데, 페이스북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자 (아마 페이스북에 이미 투자했던 피터로부터 소개받았던 듯하다) 자신에게 할당된 지분의 절반을 마크에게 떼어주었다. 그래서 그와 마크가 각각 5만 달러를 투자했고, 그 가치는 현재 수천억원에 이른다(주: Who Owns Facebook). 2007년, 마크 핑커스가 징가(Zynga)를 설립하자 즉시 그 회사에 투자했고, 나중에 Zynga가 나스닥에 상장하며 또 큰 돈을 번다.

6. 제레미 스토플만(Jeremy Stoppleman)

그는 페이팔의 엔지니어였는데, 페이팔을 나와 옐프(Yelp)를 창업했고, 앞서 블로그에서 소개했듯(주), 옐프는 나스닥에 상장되었다. 옐프와 제레미 스토플만에 대해서는 밸리인사이드의 이전 글, “옐프, 미국 최대의 지역 리뷰 사이트“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다.

7. 데이브 맥클루어(Dave McClure)

페이팔의 마케팅 디렉터였던 그는, 현재 500 Startup이라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의 CEO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창원님의 글 “500 스타트업 이야기“에 잘 정리되어 있다.


한국의 사례

‘한국의 페이팔 마피아’로 불릴 만한 사례는 테터앤컴퍼니이다. 노정석 대표가 창업한 이 회사는, 2008년에 구글에 인수된 이후 김보경, 한영, 차경묵, 정윤호 대표 등 5명의 창업자를 배출했는데, 가장 최근에는 김창원 대표가 구글에서 나와 타파스미디어를 설립했다.

내가 있었던 게임빌에서도 창업자들이 많이 나왔다. 돌이켜보면, 당시 상황이 페이팔 초기와 비슷했다. 페이팔은 1999년 1월 1일에 만들어졌고, 게임빌은 2000년 1월 11일에 만들어졌다. 게임빌이 2000년 4월 첫 게임을 출시한 후, ‘서울대 벤처 동아리’출신 송병준 대표가 만든 회사라는 소식이 수많은 신문에 인용되었고, 서울 공대 및 경영대에 포스터를 붙인 후에 서울대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게임빌 문을 두드렸었다. 그렇게 해서 게임빌에 합류한 사람 중 몇몇은 게임빌에 남아 회사를 성장시켰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게임빌을 거쳐 다른 회사에 가거나 창업을 했다.

1) 정성은, 최영수

게임빌에서 오랜 시간 일했던 이 둘은 2009년에 위버스마인드라는 영어 교육 회사를 만들었다. 회사의 첫 작품은 워드스케치(Word Sketch)인데 그림을 이용해서 단어를 외우면 더 쉽게, 더 오랫동안 기억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단어 하나 하나마다 그림을 그려 단어 암기용 단말기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최근에는 뇌새김 토크를 출시했다.

2) 문성훈

게임빌에서 초기에 모바일 마케팅을 담당했던 그는 모바일 게임 회사 엔소니를 창업한 후, 이를 보라넷에 매각했다. 엔소니는 모바일 RPG 게임 장르에서 확고한 인지도를 구축했고, 최근 스카이레이크에서 3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였다.

3) 박정우, 송일규

이 둘 역시 게임빌에서 기획자, 개발자로 일하다가 에버플이라는 모바일 게임 회사를 만들었는데, 최근 게임빌을 통해 퍼블리싱한 데스티니아는 출시 첫 날 앱스토어 RPG 장르 1위를 차지하며 게이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편 게임빌의 개발자였던 정주영씨는 훗날 로티플의 창업 멤버가 되었고, 이 회사는 2011년 말에 카카오톡에 인수되었다.

제 2, 제 3의 페이팔 마피아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비젼이 있는 사람 주변에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들이 모여 역사에 남을 회사를 만든 후, 나가서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는 사례는 듣고 또 들어도 재미있다.

참고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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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파워 그룹, 페이팔 마피아 (1)

2012년 5월 22일.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또 한 번 미국 역사에 기록될 업적을 남겼다. 최근 보급형 모델인 Model X를 출시한, 혁신적인 전기 자동차 회사 테슬라(Tesla)의 창업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돈을 무려 $100M(약 1,100억원) 투자해서 SpaceX라는 민간 우주선 회사를 만들었는데, 그 회사에서 만든 우주선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우주 기지에 도착한 것이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많은 미국인들의 트위터와 방송을 통해, 그의 꿈이 실현되는 장면을 감격스럽게 지켜보았다. 그는 ‘페이팔 마피아‘ 중 한 명이었다.

SpaceX의 Falcon 9/Dragon 발사 장면. SpaceX는 세계 최초의 민간 우주선 회사이다 (출처: Flickr)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 이미 언론과 책에서 여러 번 다루어졌고, 너무나 유명해진 이야기이지만, 그동안 내가 모은 정보를 직접 한 번 정리해보고 싶어 이 글을 시작한다. 그 속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고,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이야기할 때 이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페이팔 마피아’라는 용어와 그들의 스토리는 2007년에 포춘지에서 페이팔 출신 투자자, 창업가들의 사진과 함께 그들의 성공을 다루는 기사를 실으면서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포춘지에 처음 실렸던 ‘페이팔 마피아’들. 샌프란시스코 토스카 카페에서. 갱단 복장을 하고 있다. 맨 앞의 두 사람이 피터 씨엘과 맥스 래브친이다.

페이팔 마피아가 탄생한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처음 그들이 만나게 된 과정이다. 그 이야기는 페이팔 창업자인 맥스 래브친(Max Levchin)이 일리노이 공대를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이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Founders at Work“이라는 책에 실린 그와의 인터뷰에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보안(security)’ 기술에 무척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교에 있을 때 이미 세 번 창업을 했다. 1998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대신, 그는 또 다른 창업을 위해 스탠포드 옆 팔로 알토(Palo Alto)의 친구 집으로 이사한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며, 그리고 그의 창업에 도움을 줄 사람이 누구일까 찾기 위한 기대감에 차 있었을 것이다. 스탠포드대에서 이런 저런 강의를 들어보던 중 그는 피터 씨엘(Peter Thiel)을 만난다. 당시 헷지펀드 매니저였던 피터는 스탠포드에서 여름 학기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수업은 별로 인기가 없어서 수강생이 겨우 6명 뿐이었다. 이 수업이 훗날 페이팔을 만든 두 공동창업자가 만나게 된 역사적인 공간이었다. 내가 즐겨 듣는 스탠포드의 Entrepreneurial Thought Leaders 강연에서 피터와 맥스가 함께 나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비디오]. 이에 따르면, 당시 피터는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하고 있는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고, 그 물결 속에 자신을 위한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시카고에서 교육받은 똑똑하고 예리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창업을 위해 실리콘밸리에 이사 온 맥스 레브친이 그에게는 흥미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맥스는 피터와 몇 번 따로 만나 자신이 가진 두 개의 사업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오늘날 페이팔의 성공을 만든, 이메일을 이용해서 돈을 보내는 아이디어와는 사실 거리가 멀었다. 그는 기업용 보안 기술에 관한 두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피터에게 이야기하자 피터는 그 중 하나의 아이디어가 더 마음에 든다며, 자신의 헷지 펀드를 통해 맥스의 회사에 몇 십만 달러 정도를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맥스는 용기를 얻어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CEO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피터에게 돌아가서 이야기했다.

“This investment is a great thing, but I have no one to run the company. I’m just going to write the code and recruit the coders.” And he said, “Maybe I could be your CEO.” Jessica Livingston. Founders at Work: Stories of Startups’ Early Days (Kindle Locations 121-122). Kindle Edition.

“당신이 투자해 준다니 고마운데, 이 회사를 운영할 사람이 없어요. 저는 코드를 만들고 코딩할 사람을 찾는 일만 하고 싶거든요.” 그러자 피터가 이야기했다. “내가 당신 회사의 CEO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출처: Founders at Work, Kindle Edition)

그렇게 해서 피터는, 훗날 이베이(eBay)에 무려 $1.5 billion (약 1.8조원)에 매각된 회사 ‘페이팔’의 CEO가 되었다. (설립 당시 그들의 회사 이름은 컨피니티 Confinity 였다. 훗날 엘론 머스크가 만든 인터넷 은행 X.com과 합병하면서 이름이 페이팔로 바뀌었다.)

여기서, 피터 씨엘의 백그라운드를 보면 재미있다. 소위 ‘실리콘 밸리스러운 이력’은 아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에서 트레이더로 일했고, 스탠포드 법대를 졸업한 후에는 변호사로 일했으며, 전 교육부 장관 윌리엄 버넷의 강연 라이터(Speech Writer)로 일하기도 했다. 아마존에서 1996년에 그가 공동 저작한 책을 발견했는데, 제목이 “The Diversity Myth: Multiculturalism and the Politics of Intolerance at Stanford(다양성의 미신: 스탠포드의 다문화주의와 무관용의 정치학)”이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추구했던 ‘다문화주의’가 가져 온 문제점들을 비판한 내용이었는데, 1쇄만 출판되고 만 데다 독자 리뷰가 전혀 없는 것을 봐서는 그다지 영향력이 없었던 책인 것 같다. 그가 맥스 래브친을 만난 때는 이 책을 출판하고 2년이 지난 후였다. 똑똑하고 야심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맥스가 아니더라도 다른 훌륭한 창업가를 만나서 기회를 얻었을 테지만, 그 순간에 맥스를 만난 것은 그에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둘이 공동 창업한 회사의 첫 제품은 16Mhz밖에 안되는 프로세서를 가진 팜 파일럿(Palm Pilot)에 정보를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였다. 그들은 팜 파일럿과 같은 모바일 기기가 곧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의 소프트웨어가 기업의 민감한 정보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데 쓰이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업들이 모바일 기기 도입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바꾸고, 또 바꾸었다. 기업 대신 소비자들이 암호나 신용 카드 번호와 같은 중요한 정보를 팜 파일럿에 저장할 수 있도록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었고, 그러자 ‘돈’을 저장할 수도 있겠다는 아이디어에 다다랐다. “돈을 안전하게 저장하고 전송하기”. 그들의 미래를 바꾼 중대한 전환(Pivot)이었다.

그 뒤는 역사이다. 그들은 이 아이디어를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에게 설명했고, 팜 파일럿을 이용해서 돈을 주고 받는 것이 미래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투자자들은 실제로 그들의 팜 파일럿에서 맥스와 피터의 팜 파일럿으로 $4.5 million (약 50억원)을 보냈다. 흥미롭게도, 아이폰과 페이팔 앱을 이용해서 쉽게 돈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된 지금에도, 이렇게 돈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어쨌든, 당시 그들은 이 돈을 이용해서 자신의 인맥 가운데 있는 똑똑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훗날 실리콘밸리의 전설이 될 ‘페이팔 마피아’ 멤버들은 이렇게 해서 모였다. 특정 회사 출신들이 나와서 창업하고, 투자하고, 성공하는 케이스들은 참 많지만(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야후 출신들도 많이 나와 창업했다), 페이팔 출신 중에 유난히 눈에 띄게 성공한 사람이 많은데다, 그 성공 뒤에 페이팔 출신들끼리의 밀접한 관계가 이어졌기 때문에 이들의 스토리가 더 유명해졌다.

다음 글에서는 페이팔 마피아의 주요 멤버들에 대해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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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기업 공개(IPO)를 한 날

오늘은 실리콘밸리, 그리고 세계 IT 역사에서 오래 기억될 날이다. 페이스북이 거래 등록 기준상, 미국 증시 역사상 가장 높은 기업 가치로 나스닥(NASDAQ)에 데뷔한 날이기 때문이다. 창업 이래 계속된 투자를 통해 끝없이 오르던 기업 가치는, IPO 직전에 무려 $100B (110조원) 이상으로 올라갔으며, 기업 공개 첫 날인 오늘, 그 가치를 지켰다. 38달러로 상장한 주식은, 미국 동부 시간으로 오전 11시경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본사에서 버튼을 누름으로서 거래를 시작하자마자 10%가 뛰었으나, 오후에 하락하며 38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오늘 구글 주가가 무려 3.64퍼센트 하락하는 등 나스닥 주식 대부분이 하락한 것을 고려하면 플러스로 마감한 것만으로도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장 마감 이후 현재 회사 가치는 무려 $108.92B (약 120조원)이다. 한편, 오늘 하루 거래된 주식의 수가 무려 4.6억에 달해, 기업 가치 뿐 아니라 거래량으로도 최고 기록을 세웠다.

페이스북 오늘 하루동안의 주가 변동과 거래량 (출처: Google Finance)

거래 시작 버튼을 누르기 전 카운트다운을 하는 순간의 비디오는 유투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페이스북 직원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멘로 파크 본사에 모여 카운트다운을 누르는 순간을 기다리며 서로 기뻐하는 모습이 감격적이다. 그 버튼을 누르는 순간, 수많은 투자자와 직원들이 백만 장자가 되었으며 마크 저커버그의 바로 옆에서 돕던 셰릴 샌드버그 역시 billionaire가 되었다.

페이스북 거래 시작 버튼을 누른 후 환호하는 장면. 마크 저커버그 바로 왼쪽, 쉐릴 샌드버그의 행복한 표정이 눈에 띈다.

한편, 2011년 1월 10일에 테크크런치에 소개되었던 아래 인포그래픽은(클릭하면 크게 보인다), 골드만삭스에서 $50B의 가치로 $500M을 투자하기까지 투자가들이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를 얼마로 메겼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당시에는 골드만삭스도 너무 비싸게 주고 사는 게 아닌가 했는데, 오늘 상장으로 인해 그 때보다 기업 가치가 두 배로 상승했으니 골드만삭스는 약 1년여 만에 무려 $500M (약 5천 5백억원)의 차익을 남긴 것이다. 2004년에 피터 씨엘(Peter Thiel)이 가장 먼저 $500K를 투자해서 지분의 10%를 소유한 것(그 당시 그가 샀던 6억원어치 주식의 가치는 현재 수 조원에 달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5B 기업 가치로 $240M을 투자하면서 페이스북 회사 가치가 크게 올라갔던 것과(당시에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지불했다고 생각했다), 야후가 2006년에 $1B에 사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던 것, 그리고 홍콩 재벌 리카싱이 2007년 말 경에 $15B 기업 가치로 $60M을 투자한 것 등이 눈에 띈다.

페이스북 기업 가치 변동 그래프 (주: TechCrunch)

마크 저커버그 자신은 오늘 $1.2B 어치를 팔아 28살의 나이에 무려 1.4조원이라는 거액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포브스에 따르면, 120 million 개에 해당하는 옵션을 주당 6센트에 행사하게 되면 $1~$2B의 세금을 내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세금을 커버하기 위해 주식을 파는 듯하다). 그리고도 아직 남은 주식의 가치가 20조원이 넘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중 한 명이 되었다. 게다가 마크 저커버그를 제외한 페이스북 직원들의 주식 가치 평균액이 무려 $4.9M (약 55억원)이라고 한다.

오늘이 페이스북 주식을 소유한 모든 사람들에게 축제의 날이지만, 페이스북에 투자할 기회를 놓친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우울한 날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정리한 월스트리트 저널의 한 기사에 따르면, 팔로 알토의 사무실 건물을 소유한 Pejman Nozad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션 파커(Sean Parker)가 2005년에 그에게 접근해서, 그의 사무실을 빌리는 대신 페이스북 주식 5만 달러어치를 살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만약 받아들였더라면 그 가치는 현재 $50M(550억원) 이상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과연 그 높은 기업 가치를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많다. 페이스북의 현재 매출로는 이 가격을 정당화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업 공개 후에 더 많은 매출을 낼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100B이라는 엄청난 가치를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주식 가격의 적정성을 가늠하게 해주는 P/E Ratio (Price to earnings ratio)가 무려 100:1이다. 참고로 Google 은 20:1이고, 이 시대의 가장 수익률이 높은 애플도 16:1인데 말이다. 게다가 세계 70억 인구 중 무려 9억명이 이미 이용하고 있는 있는데, 과연 얼마나 가입자가 더 증가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인터넷은 꿈도 못꾸는, 하루 1.25 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절대 빈곤 인구가 2008년 기준으로 무려 13억명에 달한다는 것과, 아이와 노인층의 페이스북 사용 인구가 적다는 것 등을 고려하면 회원 수 증가는 얼마 가지 않아 한계에 부딪치지 않을까?

한편, 제네럴 모터스(GM)는 지난 5월 16일, 페이스북 광고를 해봤는데 별로 효과 없었다고 발표해서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의 매출 성장률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는 GM이라는 브랜드가 페이스북 디스플레이 광고를 통해 큰 효과를 보기 어려워서 그렇지 않았나 싶지만.

어쨌든, 마크 저커버그는 무려 9억 명의 삶을 바꿔 놓았으며 세상을 보다 투명한 곳으로 만든 ‘위인’이다. 내가 어렸을 때 봤던 위인전에는 주로 전쟁 영웅이나 대통령이 주로 등장했다. 그러고 보면, 왜 위대한 사업가는 위인전에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떻게 보면 전쟁 영웅이나 대통령보다도 세상에 더 크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들인데 말이다. 앞으로 자라나게 될 아이들은 마크 저커버그의 이야기를 위인전에서 찾게 되지 않을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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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노트, 그리고 창업자 필 리빈(Phil Libin)의 이야기

지난 5월 3일, 에버노트가 $70M(약 77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이번에 투자를 통해 새로 책정된 회사 가치가 무려 $1B (1.1조원)이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의 회사 가치가 $1B인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에버노트의 가치는 저평가된 것처럼 느껴진다. ‘내 삶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 애플리케이션‘ 리스트 중 첫 번째가 에버노트였다.

에버노트는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노트 정리를 위한 소프트웨어이다. 노트 정리를 도와주는 소프트웨어는 셀 수 없이 많이 있고, 간단하게는 메모장이나 워드를 써도 되지만, 에버노트는 스마트폰과 동기화가 된다는 점, 그리고 손으로 노트를 쓴 후 사진 찍어서 올리면 인식이 되어 검색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보이스 메모도 쉽게 남길 수 있다는 점 등 노트 정리를 위해 가장 필요한 기능들로만 최적화되어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사용자 수가 무려 2500만명이며, 그 중 100만명은 유료 버전을 사용하고 있다.

영어권 국가에서 큰 성공을 거둔 후, 아시아 나라 중에서는 일본에 먼저 진출했고,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 밸리인사이드에 에린의 인터뷰를 기고했던 백산(Twitter: @sanbaek) 씨는 이번 여름에 에버노트에서 인턴십을 하기로 되어 있다. 하게 될 일 중 하나가 한국 시장을 위한 전략 수립이라고 한다. 한편, WSJ의 오늘자 (5월 6일) 기사에 따르면, 에버노트 전체 사용자 중 중국인이 4%인데, 곧 중국에 서버를 설치해서 중국 시장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에버노트 실행 화면. 이렇게 손으로 글을 쓴 다음에 폰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면 검색이 된다. 즉, "remember" 또는 "everything"으로 검색하면 이 메모가 나온다.

에버노트 본사가 집에서 약 5분 거리에 있어 퇴근할 때 종종 보게 된다. 1층에 있는 사무실인데 한쪽 벽 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사무실 내부가 환하게 보인다. 지나갈 때마다, 내가 매일 즐겨쓰는 이 제품을 만든 회사가 바로 그 곳에 있다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든다. 한편으로는 정말 유용하게 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에버노트에 돈은 하나도 내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에버노트 무료제품은 월간 메모량 제한이 60MB인데, 나는 주로 텍스트 위주로만 쓰고 있어서 아무리 써도 60MB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0년 겨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때에 와인 몇 병을 사 들고 무작정 찾아간 적이 있다. 가서 문 앞의 한 직원에게 “저는 에버노트를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는데 돈을 하나도 내지 않고 있어요. 미안한 생각이 들어 와인으로 보답하려고 합니다.” 라고 말했더니 활짝 웃으며 마침 사무실에 있던 VP(임원)들을 불러 소개해 주었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명함을 받았는데 Alex라는 이름이 유난히 많길래 특이해서 물어보니, 러시아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알렉산더의 이름을 딴 Alex는 러시아에서 아주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이름이다.

마운틴 뷰 에버노트 본사 (출처: BusinessInsider.com)

창업자이자 CEO인 Phil Libin은 ‘100년 가는 기업’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가 작년 10월 12일에 스탠포드대에서 “평생을 바쳐서 하는 일에 엑싯 전략은 없습니다 (No Exit Strategy for Your Life’s Work)“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팟캐스트로 두 번이나 너무 재미있게 들었기에 여기에서 소개한다.

에버노트 창업자 & CEO, 필 리빈 (Phil Libin)

어린 시절: 러시아에서 태어나 8살 때 미국으로 이민하다

제가 살면서 무엇을 달성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왜 창업가가 되는 것이 그것을 달성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는지 오늘 설명해 보겠습니다.

다섯 살 때였어요. 제가 아직 러시아에 살던 때였죠.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는데, 그 곳이 너무 좋아서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집에 안 가겠다고 했더니, 여행이 끝났다고 하는거에요. 어머니가 다시 말했어요.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단다.” 그래서 다시 물어봤죠. “이 세상도 끝이 날까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언젠가는.”이라고 대답했어요. 그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어요. 언젠가 세상의 끝이 올 것이라는 생각 말이에요.

8살 때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고등학교 때는, 완전 너드(nerd: 뭔가에 심취해서 주변 친구들과 잘 못 어울리는 사람)였어요. 심지어 체스 팀도 저랑 놀아주지 않았죠 (웃음). 컴퓨터 클럽 친구들은 상대를 해주더군요. 그 때 다양한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리고 계속 생각했죠. ‘세상의 종말은 무엇으로 인해 올까? 바이러스? 은하계의 파괴?’

우리가 무엇을 하든, 세상은 종말이 올 것임을 알고 나자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혜성에 의해 멸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인류가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스스로 종말을 가져오는 길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햇어요. 그래서, 기술을 이용한다면 종말을 조금 미룰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자.’ 이것은 충분히 큰 꿈이었어요. 다만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 불가능했죠. (웃음) 계속 너드(nerd)로 지냈어요. 대학 졸업하고 나서 직업을 찾았고, ATG라는 회사에 취직했어요. 이 회사가 얼마 전에 오라클에 인수되었더군요. 그 회사는 정말 끝내주는 곳이었어요. 똑똑한 사람들이 가득했죠. 솔직히, 그 전까지는 제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 회사에서 저는 평균 이하였고, 처음엔 싫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즐거워지더군요. 배울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앞으로 항상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한 환경에서 지내자. 그래야 내가 성장할 수 있다.

그 원칙을 항상 실천해왔어요.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요. 지금 제가 스탠포드에서 여러분 앞에 서 있잖아요? 저는 스탠포드에 떨어졌어요, 그러니 따지고 보면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은 저보다 똑똑한 거죠.

창업: 세상의 무지함을 줄이기 위해 회사를 시작하다.

그리고 그는 친구 네 명과 함께 회사를 시작했다. 이름은 ‘엔진 5′. 사업에 대해서도 몰랐고 투자가 뭔지도 몰랐다. 뭔가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 때쯤 제 꿈이 구체화되었어요. 즉, 제 꿈은 ‘세상에 존재하는 무지함을 줄여 보자 (Reduce stupidity from the world)‘는 것이었습니다. 두 명은 중간에 떠났는데, 지금 분명 크게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회사를 만드는 아이디어는 한 가지였다. ‘No Assholes (멍청이들이 없는 곳)’. 즉, 이 세상의 바보들이 줄어들도록 하자는 것. 회사 안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

노키아로부터 프로젝트를 맡았어요. 노키아가 비녯(Vignette)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스토리지 서버(storage server)를 이용했는데, 우리의 역할은 그 서버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10억원이 넘는 비싼 장비였어요. 근데 쓸모가 없었죠. 비싸기만 하고 하는 일은 전혀 없는 서버였는데 노키아에서 그 제품을 산 거에요. 노키아 CEO가 그 쪽 회사 사람들과 골프를 쳤다나 뭐라나.”

교훈: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이야기하자 (Be direct about what you want)

어쨌든, 어렵게 프로젝트를 끝냈다. 그리고 나서 동료가 말했다. “Vignette에 이메일을 한 통 보내면 어때? 우리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이게 이제 작동을 하게 만들었는데, 그들의 제품은 정말 꼬졌다고.”

처음엔 웃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편지를 써서 보냈어요. 물론 좀 완곡한 표현을 써서요.

그로부터 3주 후, 필은 Vignette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들은 필의 회사를 사고 싶다고 제안했다. 당시 12명짜리 회사를 $25.7M(약 280억원)에 사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들은 모두 부자가 되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던 거에요. 상품이 꽝이라는 것을. 그래도 잘 팔리니 품질 개선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겠지요.

두 번째 창업: 보안 회사, 그리고 실리콘 밸리로 이사

회사를 매각하고 나서,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다.

보안 소프트웨어 회사였는데,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우리는 분명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별로 흥미가 없는 (don’t get excited) 거에요. 생각해보세요.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아무 보안 사고가 나지 않자 고객이 찾아와서 돈을 쓸데 없이 낭비했다고 후회하는 것이죠.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하면 흥분되는(excited) 그런 것. 그리고 나서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실리콘 밸리 안에 있기 위해서.

동료인 앤드류에게 물었어요. 사람들이 정말 좋아할만한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중국식 아침식사(Chinese Breakfast) 사업이냐고 묻더군요.

에버노트(Evernote)를 만들자. 우리 중 그 누구도 현재 존재하는 노트 정리 소프트웨어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어. 우리가 아이디어를 정말 잘 구현한다면, 뭔가 의미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야.

엑싯 전략 없음 (No Exit Strategy)

그렇게 해서 에버노트가 탄생했다.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더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덜 무지해지도록. 그로 인해 인류의 멸망이 늦춰지도록.

자기 자신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면 흥분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엑싯을 하겠는가? 100년짜리 회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저는 제 인생의 꿈을 좇고 있습니다. 훨씬 재미있지요. 당신이 회사를 팔고 싶어 한다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지요. 그 회사와 사랑에 빠져 있지 않다는 것이니까요. 이제는 누가 우리 회사를 사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에, 우리가 어떤 회사를 사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해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Skitch라는 회사를 찾아냈다. 맥에서 아주 간편하게 화면을 캡쳐하고 그 위에 설명을 단 후 사람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게 하는 툴인데, 정말 잘 만들었다. 내가 아주 자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이기도 하다.

창업가가 되고 싶다고요?

창업가가 되고 싶다구요? 저는 사실 창업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목표는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어요. 단순히 창업가가 되는 것이 목적이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라구요? 그럼 당신은 계산을 잘못 하고 있는 겁니다. 회사의 95%는 망합니다. 은행가(banker)나 좋은 회사의 엔지니어가 되는 편이 기대값으로 따지면 더 많은 돈을 법니다. 힘을 가지고 싶어서라구요? 즉, 조직도에서 가장 위에 있기 위해서요? 웃기는거죠 (That’s ridiculous). 사장은 사실 제일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에요. 미디어, 직원들, 투자자, 고객 모두가 보스가 됩낟. 그러면, 좀 더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싶어서라구요? 9시부터 5시까지 회사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이 싫어서요? 예, 창업을 하게 되면 당신이 시간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즉, 하루 24시간동안 일을 하게 됩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당신의 목표라면, 창업을 하십시오. 지금보다 더 좋은 때는 없습니다. 지금은 기크(Geek: 수학, 과학, 컴퓨터 공학 등을 전공한 사람을 놀려서 표현하는 말)들이 돈을 버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앱스토어 덕분에 예전과는 달리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 당신 시간의 95%를 할애할 수 있습니다. 정말 멋진 앱을 만들어 올리면, 내일 바로 전 세계 사람들이 당신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전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인프라스트럭쳐도 잘 되어 있고, 많은 오픈 소스를 이용해서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 지금이 가장 창업하기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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